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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19일 해병대 특수 수색대가 실종 장병 수색을 하고 있다. 채 상병은 나중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제공


해병대 채모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가 겨우 살아난 생존장병 A씨는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악몽을 꾼다. 수색 도중 강 하류에까지 떠밀려 가는 꿈, 다른 누군가는 구조로 살아났지만 자신은 급류에서 못 빠져나오는 꿈, 때로는 전쟁이 나서 주변에 주검이 가득한 꿈을 꾼다. A씨는 꿈에서 죽어가는 동료를 살리려고, 자신이 살려고 몸부림친다.

A씨는 꿈에서 여전히 ‘살려달라’ 외치는 채 상병을 만나면 깊은 트라우마에 빠져들어 허우적댄다. 사고 당일 입은 내상, 사건 직후 생존병사들이 직면한 군의 행태, 1년이 지나도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 맞물려 병세는 좀체 나아지질 않는다.

경향신문은 21일 A씨 측으로부터 받은 자료들과 그를 대리하는 강석민 변호사의 인터뷰를 종합해 사건 발생 이후 A씨가 겪은 상황을 재구성했다.

사고 후 영결식에 동원된 장병들…“최소한의 배려가 없었다”

지난해 7월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 중 해병대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A씨를 비롯해 지난해 7월19일 수색 현장에 파견된 장병들은 삽과 고무장화만 받고 물에 들어갔다. 당시 물 깊이는 골반 아래까지 차올랐다. 유속이 강해 절로 몸을 숙여야 했다. 물살이 세다고 상부에 건의도 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A씨는 물에 휩쓸릴 무렵 다행히 장화가 벗겨져 살았다고 기억한다.

현장 파견 장병들은 사고 다음날 부모를 만났다. 독립 공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군 관계자, 복수의 부모, 생존장병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 공개된 자리에서 ‘물살이 센데 왜 들어갔느냐’는 부모들 물음에 장병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장병들은 부모가 물어도 대답할 수 없는 처지에 억울함과 답답함이 몰려와 한 자리에서 모두가 울었다고 한다.

생존 장병들에 대한 군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는 채 상병 영결식 당일인 지난해 7월22일에도 나왔다. A씨 측에 따르면, A씨를 비롯해 사고 후유증으로 정신적 혼란을 겪던 병사들은 영결식 당일 빗속에 도열해야 했다. 사단 영결식이 끝나고 간 현충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병사들은 현충원 한복판에서 도열한 상태로 비를 맞았다. 일부 병사들은 현장을 찾은 국회의원을 비롯한 외부인들에게 우산을 씌워줘야 했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본 A씨는 ‘주객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넘어 실망스럽고 아연한’ 감정마저 들었다고 한다.

사건 직후 군도, 사회도 생존병사들의 아픔을 돌보는 데 미진했다.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 수사는 확대하고, 정치권 관심도 커졌지만 생존병사들과 가족들이 겪는 아픔은 누구도 챙기지 않았다. A씨 대리인인 강석민 변호사는 “군은 부모들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이유로 생존병사들과의 형식적 자리만 만든 뒤 이 병사들을 영결식에 동원시켰다. 생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전혀 없었다”며 “사회가 생존자들을 외면했다더라도, 적어도 군은 이들 병사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했다. 군으로부터 내팽개쳐져 있다는 생각이 A씨의 분노와 트라우마를 더욱더 깊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군은 ‘지원했다’ 말하지만…생존병사 측 “한참 미진했다”

‘생존해병’ 고발대리인 강석민 변호사가 지난 7월18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백상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국방부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최근까지도 당시 현장에 파견갔던 복수의 장병들을 상대로 여러 지원을 해왔다고 말한다. 군의 자료와 생존장병·가족의 증언을 종합하면 지원 조치는 미흡하다.

경향신문이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종합하면, 국방부는 ‘생존 장병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을 예방하고자 정신건강 현장지원팀을 파견해 소속 장병(대대 총원) 대상 정신건강 상태 평가를 실시했다’고 했다. 평가 결과에 따라 정신과 진료 및 입원 치료, 상담, 정신건강 관리 교육 등을 지원했다고도 했다. 대대 총원을 대상으로 숲 치유 프로그램(심신 안정 프로그램)도 했는데, 위탁진료비 건을 포함해 소요한 예산이 1045만2910원이라고 한다.

A씨 측은 전역 이전 청구 위탁진료비 중 일부만 지원받았을 뿐, 국방부가 밝힌 다른 지원들은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사고를 겪은 직후의 조치도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생존병사들이 사고를 겪은 직후 처음 대면한 것은 병원 관계자가 아닌 군 수사관이었으며, 진술서를 작성한 뒤에야 상담관과 면담을 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강석민 변호사는 “사고를 겪은 장병들을 먼저 병원에 데려가 입원 후 관찰이든 필요한 조치는 다 해야 했다. 이들을 곧장 소속대대로 보낼 것이 아니라 안정감 줄 수 있도록 병원에서 관찰하도록 해야 했고, 필요한 신체검사도 다 진행을 해야 했다”며 “군이 말한 다양한 심리적 프로그램 지원도 A씨는 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사건이 정치적으로 은폐되려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임성근 전 해병대 2사단장이 19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거부한 채 자리에 앉아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A씨는 지난해 10월 전역 직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찾아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했다. 같은 날 공수처에서 고소인 조사도 받았다.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은폐되는 것 같다’고 말해왔던 A씨는 임 전 사단장에 대한 고소가 이뤄진 이후에야 일부의 진실이라도 전달될 수 있어 속이 시원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A씨 진술조서에 따르면, 그는 이 사건의 책임이 임 전 사단장에 있다고 공수처에 밝혔다. 그는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으로 수중수색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말이냐’는 검사의 물음에 ‘맞다’고 했다. ‘사단장이 수중수색을 지시했음에도 적정한 안전조치를 강구하지 않았다는 말이냐’는 물음에도 ‘그렇다’고 했다.

경북경찰청은 임 전 사단장이 채 상병 사망사건의 원인이 된 ‘수중수색 지시’에 책임이 없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일련의 수사 상황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왔던 A씨와 그 가족들의 심경은 어떨까? 강석민 변호사가 말했다. “안 그래도 A씨 어머니께서 ‘황당하고 눈물이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A씨의 심경까지는 대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임 전 사단장에 대한 처벌은 A씨의 손을 떠난 문제라고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A씨는 여전히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어려운 상황이다. 의식적으로나마 이 이슈에서 떨어지려고도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강 변호사가 덧붙였다. “아직도 사건 당사자들이 겪은 충격보다도 사건을 둘러싼 다른 의혹들이 너무 부각되고 있죠. A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사고 이후 당시에 A씨 등이 겪었던 아픔, 군의 문제점 등이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된 시점에 좀 더 알려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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