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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통보제. 이제 아기가 태어나면 의료기관은 산모의 이름과 아기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통보합니다. 심평원은 다시 지방자치단체에 이 정보들을 넘깁니다. 한 달 내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지자체장이 신고 의무자를 독촉하고, 그래도 안 되는 경우엔 법원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모두 출생 신고가 된다고 하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산모들은 병원에 가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위험한 병원 밖 출산을 막기 위해 익명으로도 출산을 할 수 있는 '보호출산제'가 함께 도입됐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임신


사실상 아동 유기를 국가가 합법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정부는 사회·경제·심리적 어려움에 처한 '위기 임산부'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고 합니다. 각자 사정이 있으니 혼인 여부도, 나이도, 소득 기준도 고려하지 않고 일단 도와 아기를 최대한 직접 키우게끔 설득하겠다는 겁니다.

"암울한 미래가 보였어요. 나는 이제 끝인가? 어떻게 해야 되지?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 같다..."

당시 21살이던 이지민(가명) 씨가 처음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 남자친구와 혼인 신고를 하고, 아이를 책임지기로 지민 씨는 마음먹었습니다. 임신 36주차까지, 부른 배를 두꺼운 외투로 감추고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넉넉잖은 형편에 수십 번 입양을 고민했습니다.

보금자리로 삼은 반지하 단칸방은 보증금 1백만 원에 월세 30만 원. 벽엔 곰팡이가 잔뜩 슬어 이사가 시급했습니다. 하루 한 번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워, 정기 산전 검진을 가면 양수가 부족하다는 의사의 걱정어린 말을 듣기 일쑤였습니다. 그 검진조차 진료비를 아끼려 4주에 한 번 잡힌 예약을 미루고 미뤘다고 합니다.


지민 씨는 아이를 낳고 이듬해,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남편과 결국 이혼을 했습니다. 손안에 들어 온 양육비는 고작 1백만 원. 이후로 전 남편은 잠적해 아예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어려운 형편에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퇴짜맞기 일쑤였습니다. 지민 씨는 24세 이하 청소년 미혼부·모, 청소년부부를 일컫는 '청소년 부부'기도 했지만, 이를 아는 공무원은 적었습니다.



지원 늘리겠다더니‥ "시설 들어가라"


위기 임산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건 당장 먹고살 것과 깨끗하고 안전한 살 곳일 겁니다.

새로이 생기는 국가의 직접적 금전 지원은 100만 원, 140만 원 '무기명 선불 카드'입니다. 이전에 모든 임산부들에게 지급되던 100만 원 임신·출산 바우처를 위기 임산부들은 실명을 못 밝혀 쓸 수 없었는데, 이걸 익명으로 받을 수 있게 하고요. 출산 후 숙려 기간 동안 지낼 수 있게끔 하기 위해 140만 원을 더 준다는 겁니다. 하지만 240만 원에, 과연 아기를 키울 결심을 내릴 수 있을까요?

정부는 또 이전에는 여러 기관의 번호로 나눠져 있던 상담 전화를 '1308'로 합쳤습니다. 24시간 상담을 확실히 진행되게끔 하고, 해당 임산부가 전화를 거는 각 지역 상담기관에서 도와주겠단 건데요.

<위기임산부 상담 전화 1308>
- 익명 비밀 상담
- 24시간 운영, 발신 기지국 위치 기반으로 전국 16개 지역상담기관에서 수신


그런데, 이 상담기관에 사회보장급여와 사회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집행할 능력이 있진 않습니다. 결국, 이미 있는 지원들에 연결을 해 주어 위기 임산부들이 좀 '덜' 헤맬 수 있게 해 준다는 겁니다. 요건을 맞추고, 길게는 석 달씩 걸리는 심사를 기다리는 건 아직 온전히 임산부의 몫인 거죠.

주거지원 역시 기존에는 소득 등으로 제한했던 한부모 가족시설 입소 기준을 아예 없앤 게 전부입니다. 그동안 미혼모들을 지원해 온 민간단체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안이라고 지적합니다.

[보건복지부 제공]

"엄마들은 대체로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싶어 합니다. 시설이라고 하면 거부감이 있으니까, 시설이 아닌 곳을 구비해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설밖에 안 된다고 하면, 대안이 없다고 생각해요. 선택지가 없는 거잖아요."

-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아기 아빠는요? 출생 증서에도 안 적히는 생부


보호출산을 신청한 산모는 출산 뒤 아기와 함께 지내며 직접 양육할지 고민할 수 있는 최소 일주일의 숙려 기간을 갖게 됩니다. 그래도 양육을 포기하면 산모는 출생증서를 남기고 떠나고, 아기는 시설로 가거나 입양됩니다. 출생증서 양식에는 부모의 나이·주민등록번호·건강상태·거주지역·질병·장애 등 인적사항을 비교적 자세히 적게끔 되어 있습니다. 출생증서와 함께 친모의 사진과 산모수첩 등이 봉투에 담겨 보관되죠.

그런데, 친부의 정보는 사실 적어도 그만, 안 적어도 그만입니다. 필수가 아니어서 친모가 작성을 원치 않으면 안 써도 되는 겁니다. 심지어 본인의 정보가 출생 증서에 적혀 보관된다 한들, 생부에게는 별다른 통보가 가지 않습니다. 아이가 성년이 된 뒤 정보공개 청구를 했을 때 처음으로 알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산모 혼자 오롯이 부담을 진다는 비판과 함께, 친부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죠.


위기 임산부 상담·지원의 중앙기관을 맡고 있는 아동권리보장원에 이 문제를 물어봤습니다.

"끝내는 친부도 알게 되는 게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임신 출산이라는 게 위기 임산부의 책임만이 아니라 남성의 책임까지도 같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같이 논의하는 상담을 충분히 진행할 계획입니다. 적어도 출생 증서에 기록된다면 남성도 알 수 있도록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법도 개정을 하고, 이후에 그런 부분들을 좀 보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






제도 아닌, 아기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 유기 조장


지난해 초, 아기를 낳자마자 서울 관악구 '베이비 박스'를 찾은 미혼모 박희영(가명) 씨는 임신 당시 '죽을 결심을 못 해서' 아기를 데리고 온 거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와 헤어질 마음으로 찾아오고도 영하의 날씨에 한참을 문밖에서 고민했다고 합니다.

"도착하자마자 상담사 선생님께서 고생했다고, 너무 고생했다고 그 말 한마디 먼저 해주시는데 혼자 애 낳고 혼자 임신하고 그런 상황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너무 북받치는 거예요. 한참 울다가, '아기를 보내겠다. 못 키우겠다. 부모님한테 말도 못한다' 그랬더니 선생님들께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아기 용품이랑 분유랑 전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집에 왔는데 계속 머릿속에서 그 생각이 맴돌다가, 도움을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혹시나 해서 전화를 해봤죠."


희영 씨는 결국 아기를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아기 아빠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빚만 남기고 연락이 두절된 데다, 지인 집과 보증금 없는 월세방을 전전하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문턱 낮은 지원이 위기 임산부들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보호출산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쉽게 아기를 버리는 엄마들이 많아질까요? 정부의 지원이 산모들에게 보호출산을 최후의 선택으로만 고려할 수 있게끔 하기를 바라며, 지난 2021년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두고 간 한 산모의 편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온전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처럼 너를 행복하게 키울 수 없다는 현실과 정말 많이 싸우다가, 결국 너를 이렇게 보내게 되었어. 힘들게 사는 나를 보며 너는 언제고 힘든 환경을 탓하며 원망하는 순간이 올 테고, 나는 그런 너를 보며 잠적한 네 아빠를 떠올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나 또한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지만 너만은 온전한 울타리가 있는 가정에서 행복하고 보호받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 취재 : 공윤선·유서영
* 영상취재 : 손지윤·강종수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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