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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연꽃테마파크를 드론으로 담았다. 이윤정 기자


자연 속에도 닮고 싶은 삶이 있다. 연꽃이 그렇다. 진흙탕에서 자라나지만 때 묻지 않은 꽃을 고고하게 피워낸다. 마치 고된 세상사에도 꿋꿋하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연꽃의 자태는 고상하고 품위 있다.

경기 시흥에는 550여년 전부터 연꽃을 피워낸 연못이 있다. 이 연꽃이 마을 전체로 퍼져 ‘연꽃 마을’이라 불렸다. 시흥시는 이곳에 연꽃을 테마로 공원을 가꿨다. 연꽃이 피어난 길은 산책로가, 연이 자라나는 못은 생태계를 품는 터전이 되고 있다.

시흥 연꽃테마파크. 이윤정 기자


“문익점의 목화씨처럼 중국서 가져온 연꽃씨”

시흥 관곡지를 드론으로 담았다. 이윤정 기자


시흥 연꽃테마파크의 시작은 ‘관곡지’다. 가로 23m, 세로 18.5m 규모의 관곡지는 그리 큰 연못은 아니지만, 시흥 하중동 일대를 연꽃으로 물들였다. 씨앗은 조선 전기 학자이자 중추원 부사였던 강희맹(1424~1483)이 뿌렸다. 그는 세조 9년(1463)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새로운 품종의 연꽃을 보게 됐다. 하얀 꽃잎의 끝부분만 붉은빛으로 넌지시 물든 ‘전당홍’이었다. 국내에서는 못 보던 연꽃을 본 강희맹은 연꽃 종자를 가져와 집 앞 연못에 심었다. 3년 만인 1466년 이 일대는 전당홍이 가득한 마을이 됐고, 마을은 연이 가득한 성 ‘연성(蓮城)’으로 불렸다. 지금도 ‘연성동, 연성초, 연성중’ 등 마을 곳곳에서 지명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관곡지 연꽃. 이윤정 기자


관곡지를 찾은 7월 초 꽃망울이 하나둘 꽃잎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연못 한가운데는 아름드리나무를 심어 운치를 더했다. 현재는 안동 권씨 문중에서 관곡지를 관리한다. 강희맹의 사위 권만형이 연지와 주변 토지를 받았고, 이후 안동 권씨 화천군파에 대대로 내려왔다. 관곡지에서 안동 권씨 화천군파 35대손인 권일씨를 만났다. 그는 “선조였던 강희맹 선생은 지금으로 치면 ‘장관’ 정도”라며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가져왔듯 강희맹 선생은 우리나라에 없는 연을 들여오려 했다”고 설명했다. 관곡지를 포함해 한옥, 정자, 정원, 묘소 등이 모두 문중 땅이고 한옥에는 자신과 종갓집이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곡지를 품은 한옥. 이윤정 기자


관곡지도 사유지이지만 연꽃이 피는 시기면 문을 열어 방문객을 맞았다. 선조가 뿌린 연꽃의 아름다움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권씨는 “연못을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니 불편하기도 하고”라면서도 “그래도 선조 덕에 아름다운 풍광을 나눌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했다.

각양각색 연꽃, 푸른 연잎의 향연

시흥 연꽃테마파크. 이윤정 기자


관곡지 담장 너머로는 광활한 연밭이 펼쳐진다. 19.3㏊(약 5만8000평) 논에 연꽃테마파크를 조성했다. 100종이 넘는 각양각색 연꽃과 푸른 연잎이 일렁이며 장관을 연출한다. 연꽃은 7월부터 피기 시작해 8월에 절정을 이룬다. 개화가 늦은 해에는 9월까지 연꽃을 만날 수 있다. 연꽃테마파크는 야생화정원, 잔디광장, 자생화식물원, 생태놀이터, 열대연단지, 화연단지, 화초덩굴하우스, 관상용호박터널, 둠벙, 연근생산단지, 관곡지, 조류탐조대, 시흥시농업기술센터 등으로 이뤄졌다.

시흥 연꽃테마파크를 드론으로 담았다. 이윤정 기자


원래 이곳은 호조벌로 불렸다. 호조벌은 약 300년 전 조선 경종 때 개펄에 둑을 쌓은 간척지다. 1970년대 경지 정리를 하면서 곧고 길게 뻗은 농로가 벌판을 가로지르게 됐다. 재배단지 주위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있어 시민들이 쉬어가기 좋다. 연꽃철이 지난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한다.

호조벌. 이윤정 기자


연꽃테마파크는 단순히 사람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갖 동식물이 보금자리를 이루고 있다. 생태연못(둠벙)에는 붕어, 개구리, 미꾸라지, 우렁이 등 어류와 꽃창포, 물카라, 디얼바타, 가시연 등 수생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수서생물이 생태계를 유지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생태학습 공간이 되기도 한다. 먹거리가 풍부한 호조벌에는 저어새, 왜가리, 중백로, 개개비, 오리, 쇠물닭 등 텃새와 철새들이 공존하며 살아간다.

중백로가 연꽃 옆을 지나가고 있다. 이윤정 기자


고즈넉한 한옥과 아늑한 관곡지, 너른 들판과 푸른 연밭, 알록달록 연꽃과 각양각색 새들은 장관을 연출한다. 그래서 출사를 온 사람도 많다. 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 나들이를 온 한 시민은 기자의 카메라 기종을 유심히 살피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연꽃,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죠?” 아직 꽃잎을 앙다문 연이 많아서였다. 하지만 수줍게 봉오리만 맺힌 연꽃도, 이미 생을 다해 떨어진 꽃잎도 기품이 있어 보였다. 진흙탕에서 싹트지만 꽃, 잎, 열매, 줄기, 뿌리까지 버릴 게 하나 없는 연의 생 자체가 고결해서 아닐까.

시흥 연꽃테마파크. 이윤정 기자


☞알고가세요
시흥 연꽃테마파크와 관곡지 입장료는 없다. 단, 관곡지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조용히 관람해야 한다. 하절기(4~9월)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방하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곡지 바로 앞까지 가는 대중교통 편이 없어 인근에서 공유차 쏘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지하철 1호선 소사역에서 내려 인근 쏘카존에서 공유차를 빌리거나, 서해선 신천역 또는 시흥시청역 인근 쏘카존을 이용하면 된다. 중소형차 기준 4시간 대여료는 2만원 정도다.

시흥 연꽃테마파크. 이윤정 기자


시흥 연꽃테마파크 흰뺨검둥오리. 이윤정 기자


시흥 연꽃테마파크. 이윤정 기자


중백로가 연밭 위로 날아오르고 있다. 이윤정 기자


연밭 속 중백로. 이윤정 기자


시흥 연꽃테마파크. 이윤정 기자


시흥 연꽃테마파크. 이윤정 기자


시흥 연꽃테마파크. 이윤정 기자


시흥 연꽃테마파크. 이윤정 기자


시흥 연꽃테마파크. 이윤정 기자


시흥 연꽃테마파크. 이윤정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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