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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가수가 드러낸 ‘추구미’…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
|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어반자카파의 멤버인 가수 조현아가 솔로로 컴백한 음악프로그램 <뮤직뱅크> 화면. KBS 유튜브 갈무리


최근 온라인을 달군 영상이 있다. 어반자카파의 멤버이자 가수 조현아가 오랜만에 솔로로 컴백한 ‘줄게’ 무대 영상이다. 이 무대는 의상, 표정 연기, 라이브 실력, 음악이 모두 당황스럽다는 반응으로 유명해졌다. 이렇게 어떤 콘텐츠 하나가 유명해지면 댓글 창에는 누가 더 웃기게 조롱하는지 대결이 벌어진다. 콘텐츠만큼이나 조롱하는 댓글도 화제를 모은다. 대상을 비웃고 조롱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유명인이 망신당하는 모습을 오락으로 소비하는 것을 ‘휴밀리테인먼트(humilitainment)’라고 한다. 창피(Humili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줄게’ 무대와 함께 거론되는 ‘깡’ 열풍이다. 2017년 발매되었던 비의 노래 ‘깡’은 밈으로 승화되면서 2020년 역주행했다. 유명인이 망신당하고 조롱받는 것을 보는 행위는 자신보다 상황이 더 나쁜 사람들을 떠올리며 상대적으로 위안을 얻는 ‘하향 비교’의 효과가 있다. 미디어의 노출로 비현실적인 상향 비교(자신보다 상황이 좋은 사람들과 비교하는 행위)가 기준이 되어버린 시대에 휴밀리테인먼트는 입맛을 쫙 당기는 양념이다.

‘줄게’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이 무대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이유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오랫동안 방송에서 노래와 작곡 실력을 입증했던 조현아가 라이브와 무대 매너 측면에서 매우 아마추어 같았다는 점이다. 흔들리는 음정이나 불안한 호흡, 어색한 시선 처리 같은 요소들이 베테랑 가수의 그것이라기에는 낯설어 보인다. 누군가는 연습 부족을 지적하고, 누군가는 안 하던 스타일이라서 신발이나 안무, 의상 등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본다. 둘 다 베테랑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실수고, 연차가 찬 가수가 자신감 때문에 오히려 라이브에서 망했던 역사는 숱하게 많다. 두 번째는 음악과 가사가 촌스럽고 이상하다는 것. 음악과 가사는 어느 정도 취향의 영역이기도 하다. 같은 프로듀서에 비슷한 결로 언급되는 헤이즈의 ‘빙글빙글’이나 지수의 ‘꽃’ 역시 난해하다는 반응과 ‘중독성 있다’는 반응이 엇갈렸고 챌린지가 인기를 끄는 등 예상치 못한 흥행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세 번째, 기획 자체가 조현아와 안 어울린다는 의견은 ‘헤메코(헤어, 메이크업, 코디)가 이상하다’, ‘자기객관화가 안 됐다’는 반응으로도 갈음할 수 있다. 화려하고 색감 있는 의상을 예쁘지 않다고 지적하거나, 무대에 함께 선 댄서들의 옷차림이 지나치게 소박해서 더 튄다는 지적도 높은 추천 수를 얻는다. 즉 미감이 거슬린다는 뜻이다. 조현아는 1인 기획사라서 이 헤메코가 다 본인 취향이라는 주장은 그를 기획의 피해자로 동정할 가능성마저 봉쇄한다. 이것이야말로 ‘줄게’ 무대가 가장 큰 조롱을 받는 이유이다(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 있긴 한데, 후술한다). ‘줄게’를 둘러싼 조롱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는 악령… “‘자기 객관화’가 안 된 여자가, ‘어울리지 않는 옷과 메이크업을 하고’, 종국에는 ‘추구미’를 구현하는 데 실패한 것을 들켜서 우스꽝스러워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공포를 반영한다.

불안정한 라이브와 시선 처리

촌스러운 가사 언급도 있지만

최대 조롱 사유는 ‘안 어울린다’


‘그 정도 아닌데’ ‘아줌마 같다’

자기 객관화 실패한 여성 향한

은은한 멸시와 날선 비판들

욕망의 직접 표출은 금기시된다


당신은 공감성 수치를 느끼는가

이건 정말 그만큼 조롱거리일까


‘추구미’는 ‘추구하는 미(美)’의 줄임말로, 내가 원하거나 좇는 이미지나 모습, 스타일링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신조어이다. 미적 이상향부터 자신이 원하는 삶의 태도까지 아우르는 표현이다. 자기 자신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고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초상은 외모 가꾸기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베스트(Best)’와 ‘워스트(Worst)’를 파악하고, 최상의 상태를 ‘실패 없이’ 획득하지 못하면 어울리지 않는 색깔을 탐했다는 이유로 ‘톤그로’라는 조롱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조롱이 현실에서 일어난다기보다, 미디어에서 적극적으로 유통되면서 개인의 내면에 작동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울리는 색깔과 헤어스타일, 옷까지 찾아주는 퍼스널 ○○ 진단이 유행하고, 얼굴 특징에 맞춰 머리를 손질해주는 미용실 영상이 SNS에서 바이럴된다. 맞춤형 진단을 통해 외모의 아름다움이 최대치에 도달하면, 댓글 창의 반응은 마침내 진짜를 찾은 것처럼 환호한다. 음…? 어딘가 비슷한 냄새가 난다. 그렇다. 이것은 지금의 당신은 진짜가 아니니, 살에 파묻힌 진짜 자신을 발굴하라는 다이어트 산업의 메시지와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이러한 외모 가꾸기 기획의 최종 목표는 추구미와 이를 체화하는 육체가 일치하는 단계이다. 혹은 추구미와 타고난 조건이 다를 경우, 이를 수용하고 순순히 타고난 조건에 따르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기. 이러한 수용이 외모 가꾸기의 차원에서 ‘자기 객관화’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추구미의 흥미로운 점은, ‘들키면’ 안 된다는 데 있다. 스스로 내 추구미가 어떻다고 말은 할 수 있지만, 보통 선망의 단계거나 ‘타고난 미가 추구미와 다른데,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는 메타인지를 전제할 때 허용된다. 타인이 ‘나’의 추구미를 알아챈다는 것은 곧 그 추구미와 주체가 완전히 일치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들키고 그런데도 획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키는 일은 수치심을 자극한다.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최적의 스타일링을 하지 않은 대상에게 ‘추구미는 ~인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하다’고 말할 때 거기에는 은은한 멸시가 깔린다. 조현아가 30대 여성이라는 점도 한몫한다. ‘줄게’ 무대를 조롱하는 댓글에서 조현아와 동갑인 다른 여성 아이돌을 언급한다거나, 아줌마 같다고 비난하는 식이다. 자신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꾸미는 여성은 언제나 조롱의 대상이었다.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를 탐낸 자에 대한, ‘자기 객관화’에 실패해서 ‘주제 파악’을 못한 자에 대한 태도는 여성의 욕망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과도 닮았다. 자신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여성은 미움받는다. “그 정도는 아닌데?”라는 반응이 대번에 따라붙으며 주체적으로 욕망을 향유하는 행위를 검열한다. 여성의 욕망은 세련되게 포장해서 드러낼 때만 용인되는데, 그 방식이란 대개 수동적이고 굴절되어 있다.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는 채로, 타인의 욕망을 원한 적 없음에도, 욕망의 대상이 되기. 이 분야의 대표가 바로 ‘소녀’라는 기표이고 인터넷 세상에서는 ‘은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박범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은교>에서 은교 역을 연기한 김고은은 넘쳐나는 자신의 매력을 관음하는 시선과 무관하다는 듯 천진난만하다. 하지만 자신이 은교 같다고 생각했다는 인터넷 게시판의 익명 글은 두고두고 ‘은교 여시’라는 이름으로 놀림받는다. 어떤 이미지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물밑에서 치열한 ‘자기 관리’를 통해 타인이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야지, 본인이 직접 날것으로 드러내거나 티가 나서는 안 된다는 규범은 수초처럼 음침하게 여성의 발목을 옭아맨다. 그리고 감히 도달하지 못할 경지를 욕망한 여성을 조롱하고 비난하도록 조장한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관심 경제에서는, 휴밀리테인먼트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비의 깡 신드롬은 ‘1일 1깡’, 팬이 작성한 ‘비에게 바라는 시무 20조’ 등이 화제가 되면서 어느 순간 긍정적인 놀이로 전환되었으니까. 비는 이를 계기로 뜸했던 방송에 다시 등장하고, 과자 광고까지 찍었다. 하지만 모두가 비처럼 망신당하는 상황을 전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여성 연예인에게는 더 가혹한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연예인에 대한 환호와 ‘쌤통 심리’가 젠더화되어 있음을 지적한 김현경은 이처럼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는 감정을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명명했다. 조현아는 데이팅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해 남아선호사상 발언을 했다가 반발을 산 적 있다. 논란이 되자 그 자신이 차별당하며 살았던 가정사를 털어놓으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경하게 맞대응했다. 이로 인해 이미지가 나빠졌고, ‘줄게’ 무대에는 ‘남자만 밥 더 많이 주는 식당 사장님 같아요’라거나 ‘남미새’라는 댓글이 많은 좋아요를 얻었다. 조현아의 발언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가수를 조롱하는 것은 성차별에 대한 관심이나 문제의식과는 무관한 구실이다. 도덕적 흠결은 조롱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당하기도 한다. ‘쌤통이다’라는 생각이 들며, 죄책감이 덜어지고 나쁜 사람을 심판한다는 효능감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조롱에는 자신이 비친다. 여성 연예인이 망신당하는 것을 볼 때의 재미는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왜 누군가는, 혹은 ‘나’는 어떤 여성의 욕망이 가시화되었을 때 공감성 수치를 느끼는 것일까. 어떤 행동은, 정말 그만큼 조롱당할 만한 것일까.

참고자료 : 김현경, ‘아이돌을 둘러싼 젠더화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의 문화정치학-<아이유 사태>를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보 80호, 한국언론정보학회, 2016.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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