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부부는 - , 남남은 +


“혼인신고 급하지 않다. 사계절은 서로 겪어보고 하라.”

부부가 함께 생활하기 전 몰랐던 생활 방식이나 성격 차이를 맞춰보기 위한 ‘적응 기간’을 가지라는 인생 선배의 조언쯤으로 여겼다. 반면 요즘은 매우 실리적 이유로 혼인신고를 늦추는 젊은 부부가 늘고 있다.

‘경제공동체’ 개념이 강화되며 1인 가구 형태로 청약, 세금 그리고 대출의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행정 신고인 혼인신고를 지연하는 것이다. 관련 신조어도 탄생했다. 소위 혼인신고로 인한 제도상 불이익을 ‘혼인신고 페널티’ 그리고 결혼 후에도 혜택을 위해 미혼으로 남는 것을 ‘위장 미혼’이라 부른다.

부부돼도 절세비율 1.5배 그쳐…재테크로 지연 신고

지난해 결혼한 서경원씨(35·가명)와 강민정씨(31·가명)는 한집에 사는 부부지만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신혼집 마련을 위해 대출을 알아보다 자금을 융통할 묘안(?)을 찾았다. 남편 서씨가 생애 최초 디딤돌 대출(최저 연 1.2%)로 집을 마련했고 아내 강씨가 청년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최저 연 1.8%)을 받아 남편 명의 집의 세입자가 됐다. 낮은 금리로 두 번의 대출을 받은 이들은 여유 자금 2억원으로 무주택자 아내 명의로 갭투자를 할 만한 아파트를 물색 중이다.

부부이자 전세계약 관계인 이 기묘한 재테크는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혼인신고를 미룰 작정이다. 세금, 대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신혼부부보다는 미혼 2인의 조합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강씨는 “법적 부부 관계가 아니니 은행에서는 우리 관계를 알 리 없다”며 “최대한 대출 혜택을 이용하고 아기가 태어난다면 그때 혼인신고를 생각해 볼 것”이라고 계획을 전했다.

반면 직장인 정인욱씨(35·가명)는 2021년 결혼 후 곧바로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집을 구하려니 ‘지나치게 정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 지원 3대 서민 구입 자금을 하나로 통합한 저금리 구입자금대출인 ‘내 집 마련 디딤돌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부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2021년 당시 디딤돌 대출 자격은 미혼의 경우 연소득 6000만원 이하지만, 기혼이면 부부 합산 연소득이 7000만원을 넘지 않아야 했다. 당시 그의 연소득은 4500만원, 아내의 연소득은 4300만원으로 부부 합산 8800만원이라 미혼이라면 받을 수 있었던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현재 디딤돌 대출은 신혼부부의 경우 부부 합산 연소득 기준이 8500만원이고, 추후 1억원 이하로 완화될 예정).

“디딤돌 대출을 못 받게 돼 결국 매매를 포기하고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봤는데 당시 기준으로 신혼집 전세자금 대출 자격이 부부 합산 소득 6000만원 이하라 그조차도 받지 못했어요. 결국 이율이 높은 일반 대출로 신혼 전셋집을 마련했죠. 그야말로 ‘혼인신고 페널티’란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5월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결혼 후 혼인신고까지 걸린 기간이 2년 이상인 비율이 2014년에서 2020년까지 5%대를 유지하다 지난해 기준 8.15%로 증가했다.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사실혼 관계이자 경제공동체로 지내는 통계 외 커플의 수를 포함하면 이 수치는 더욱 높아진다.

공인재무설계사이자 부동산 경매 전문가인 최봉철씨는 지연 혼인신고의 가장 큰 이유를 “부부일 때와 1인 가구일 때 각종 제도에서 얻는 혜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길게는 3년 이상, 짧게는 1년 이상 혼인신고 지연이 젊은 부부들에게 일종의 재테크 방법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씨는 재테크에 적극적인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지연 혼인신고’가 절세와 대출 혜택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 세금 측면에서만 보면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1인 가구로 남는 것이 절세에 유리하다고 한다.

“금전적인 측면에서 혼인신고의 최대 단점은 주택 취득세 증가입니다. 혼인신고 전 각각 1주택 보유였으나 혼인신고 후 1가구 2주택이 되어버리고 그러다 주택을 하나 더 보유하면 취득세 중과로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어요. 반면 혼인신고를 지연할 경우 각각 1주택으로 취득세 중과가 적용되지 않아요.”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취득세율은 조정지역의 경우 1주택은 1~3%에 그치지만 2주택일 때 8%, 3주택일 때 12%로 늘어난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주택임대소득세도 미혼 조건이 유리하다.

최봉철씨는 “1인 가구가 부부로 만나 2인 가구가 되면 혜택이나 절세 비율이 그에 맞게 2배가 아닌1.5배에 그쳐 정상적으로 혼인신고를 하는 이들은 미혼보다 혜택이 줄어든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출산해도 신고 ‘노’…한부모 혜택 빈틈 노려

재테크를 넘어 각종 지원금 혜택을 받기 위해 결혼 후 출산을 했음에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미혼모로 남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최근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결혼 2년차 남성이 임신한 아내가 여전히 혼인신고를 거부한다는 사연을 올려 작은 파란을 일으켰다.

이유는 ‘미혼모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남편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자 아내는 “친언니나 주위 친구 몇 명도 그런 식으로 지원금을 받고 있다”며 특별히 이례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해당 글에는 어린이집 입소 우선순위가 되기 위해, ‘한부모 특례 급여’로 육아휴직 급여를 유리하게 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지연하는 예가 있다는 댓글도 등장했다.



대출 혜택 절세 효과 위장 미혼

세금 도둑 알뜰 전략 그 어디쯤


혼인신고 지연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양분된다.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절세와 혜택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실리적 선택’이라고 보는 이도 있고, 정부나 지자체 정책의 빈틈을 노리는 ‘세금 도둑’이라 보는 이도 있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지식검색 서비스 지식인에 ‘혼인신고 없이 출생신고’를 검색어로 입력하면 ‘한부모 임대 아파트’나 ‘한부모 가정 지원금 조건’에 관한 질문이 파다하다. 동시에 아이를 혼외자로 출산했을 때 호적상 표기나 불이익을 묻는 이도 많았다. 실제로 한 커뮤니티에서는 혼인신고를 지연해 한부모 혜택을 부정수급하는 주변인들에 대한 다양한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지원금을 받아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집도 봤다” “저렴한 임대 아파트를 얻어 남편과 살면서 아이 둘 학급지원비, 방과후 지원비, 생리대와 쌀까지 받는다”는 글도 있다. 심지어 한 누리꾼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 특례 제도를 위해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한부모 가정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하는 지인도 있다”고 털어놨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공무원은 “주민등록등본을 떼보면 같이 사는 것이 다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직접 집을 방문해보면 남자 신발은 싹 치워놓은 상태”라며 “제도상 눈감고 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 말했다. 그는 “복지지원금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이들의 행위는 다른 미혼모의 지원금을 뺏는 것”이라며 “악용이 만연하니 부정 사례 신고 포상제라도 시행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남겼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 아이는 친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친모의 성을 따서 자녀로 기재된다.

미신고 땐 재산 분할·양육비 문제 등 손해 볼수도

이창승 행정사에 따르면 어머니의 성을 따르다 생부가 인지신고를 하면 자동으로 아이의 성은 아버지의 성으로 바뀐다. 가족관계증명서 일반에는 이런 변동 사항이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

그는 “단, 국가장학금을 받거나 공무원 시험 등 정부나 관공서가 요구하는 가족관계증명서 상세 서류에는 변동 사항과 그 일자가 명확히 기재된다”고 설명했다.

만약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살다가 헤어질 경우, 법적으로 두 사람은 사실혼으로밖에 인정받을 수 없다. 따라서 재산 분할, 위자료 혹은 양육비 문제로 한쪽이 막심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두상달 가정문화원 이사장은 “‘반반결혼’이라는 신조어처럼 요즘 부부는 가족공동체보다는 경제공동체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며 “결혼은 물리적으로 함께 생활하는 것뿐 아니라 정서적·감성적 그리고 제도적 묶임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고 강조했다. 또한 “느슨한 관계는 결국 나로 존재하고픈 개인주의며 이는 언젠간 갈등이 생기고 누군가 상처받기 마련”이라면서 “타산적인 결합이라면 차라리 혼자 사는 편이 위험 부담이 적지 않으냐”며 일부 세태를 우려했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3438 현대차 8월 美 판매 작년보다 22% 증가…"역대 최고 실적"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37 "어차피 휴학할 거 입대할래"…의대생들, 군의관 포기하고 현역 택하는 이유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36 현대건설 정문에 ‘쾅’…운전자는 ‘단군 이래 최대’ 한남3구역 조합원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35 여 “모든 세대에 공평” 야 “국민 갈라치기”…국회 합의 가시밭길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34 기금소진 시점 늦추는 데 ‘방점’…“미래세대 연금 깎일 수도”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33 내는 돈 9% → 13% 받는 돈 40% → 42%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32 응급센터 찾은 윤 대통령 “예비비 편성해서라도 지원하겠다”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31 청문회 통과 의례된 질문 “일제시대 당신의 국적은?”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30 해리스측 "의무화 지지 안한다"…전기차 정책도 과거공약서 후퇴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29 조롱받기 싫어 국회 불참한 윤 대통령은 “사랑합니다”에 기뻤을까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28 엔비디아 주가 폭락하자 코스피도 추락… 2600선 붕괴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27 독사 잡으려고 들여왔다가 ‘날벼락' 맞은 일본…3만 마리까지 번식한 이 동물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26 해변 3㎞ 반경 곳곳에 기름 떼가…한국인 인기 여행지 ‘이곳’에 민원 쏟아졌다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25 “배달비 수수료 폭탄인데, 고작 하루 800원 지원?” 아우성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24 정진석 “조롱·야유 언어폭력 난무하는 국회에 어떻게 대통령 가시라 하나”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23 US스틸 “일본제철에 매각 무산되면 공장 폐쇄”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22 ‘노조 파괴 SPC 햄세트 거부하겠습니다’…민주당 보좌진들 발끈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21 변종 엠폭스 진원 민주콩고 5일 첫 백신 도착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20 "尹대통령, 받기 싫은데 스토커처럼 추석 선물 보내" 野 의원들 SNS 인증 new 랭크뉴스 2024.09.05
43419 [단독] 만취운전 차량 인도 돌진‥50대 가장 중태 new 랭크뉴스 202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