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생존 동료 해병 ‘1주기’ 추모 입장문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 가려지길”
해병대 채상병의 1주기를 하루 앞둔 18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묘역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지난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고 채아무개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 생존한 병사가 “채 상병이 떠나고 1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오히려 더 뒷걸음질 쳤다고 생각한다”며 “진실이 밝혀지고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이 가려지길 바라고 있겠다”고 전했다.

군인권센터는 19일 생존병사 ㄱ씨가 채 상병 순직 1주기를 맞아 전한 추모 입장문을 공개했다. ㄱ씨는 생존병사들의 입장에 대해 “매번 같은 말을 하는 것 외에 제가 더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다.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제부터는 제가 아니라 제 작은 용기로 전했던 이야기에 응답해야 할 사람들의 차례”라고 밝혔다.

다음은 생존병사 ㄱ씨의 추모 입장문 전문. 채 상병의 실명은 ‘채 상병’으로 고쳐 적었다.

채 상병이 떠나고 1년이 지났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곳곳에 폭우가 쏟아지고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민지원을 나가 수해 복구를 위해 고생하시는 군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수해를 입으신 분들의 조속한 회복과 복구 작업에 투입된 분들의 안전을 바랍니다.

남 일 같지 않은 광경들을 보며 1년 전 물 속에서 빠져나오던 순간이 떠오르곤 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서 채 상병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어쩌면 그게 나였다면, 그렇다면 나는 누굴 원망했을까, 혹시 구하지 못한 나의 책임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쉽게 지워지질 않습니다. 제게 채 상병의 일이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채 상병의 명복을 빕니다.

몇달 전, 채 상병 어머니를 뵙고 왔었습니다. 아픈 마음 내색 안 하시고 제 건강을 계속 챙겨주시던 어머니 모습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 뒤로 경찰에 아들의 희생에 관여한 지휘관들이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탄원서를 제출하셨다는 뉴스도 보았습니다. 모두가 1년을 7월 19일에 갇혀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은 힘들다고 가지 않으려는 해병대를 자원해서 간 저희와, 그런 저희를 노심초사 걱정해주시던 부모님들이 왜 이런 벌 아닌 벌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여전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많은 분께서 채 상병 1주기를 맞아 생존병사들의 입장을 궁금해하시며 인터뷰를 요청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응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전역 이후로 제가 겪었던 일을 언론에, 수사기관에, 시사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임성근 사단장으로부터 제가 북한 사이버 공격과 같은 행태를 한다는 저격도 당해봤습니다. 그래도 제 용기가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상황은 늘 제자리걸음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 뒷걸음질 쳤다고 생각합니다. 물속에 빠진 저를 구해주셨던 수색조장까지 검찰로 넘긴 경북경찰청은 끝끝내 임성근 사단장을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꼼꼼하게도 지켜줬습니다. 저도 보고 듣는 것이 있어 예상했던 결과지만 허탈하고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특검법을 통과시켜달라는 호소문도 써봤지만 대통령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바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매번 같은 말을 하는 것 외에 제가 더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바뀐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수처에서 수사 중인 임성근 사단장 고소 사건의 처리 결과를 기다리고, 무엇 때문에 수사가 이렇게 엉망이 되었는지 박정훈 대령님의 재판을 지켜보고, 특검이 생겨서 수사 결과 진실이 밝혀지고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이 가려지길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아니라 제 작은 용기로 전했던 이야기에 응답해야 할 사람들의 차례입니다.

내년 채 상병 기일에는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채 상병을 추모하고, 제 솔직한 마음과 감정들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채 상병이 그때까지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해 7월19일 오전 경북 예천군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채아무개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을 당시 다른 해병대 동료의 모습. 연합뉴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3350 윤건영 "문다혜 제주도 별장? 공유숙박 사업장인데... 검찰 의도 불순"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49 [속보] "북한, 또 쓰레기 풍선 부양… 경기북부 이동할 수도"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48 [단독] 윤석열 ‘퇴임 뒤 사저 경호시설’에 139억 책정…전임 2배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47 기시다, 윤 대통령에 '사도광산 등재 동의 감사'‥'퇴임여행이냐' 비난도 쏟아져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46 김정은 보트 타고 수해지역 돌더니…"北간부 무더기 처형한 듯"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45 정부 연금개혁안에 與 “의미있는 진전”…野 “연금 삭감될 것”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44 3층집에서 불…90대 할머니 안고 뛰어내린 30대 손자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43 불나자 90대 할머니 안고 3층서 뛰어내린 '용감한 손자'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42 [단독] “아이 낳고 싶은데”…벌써 바닥난 '서울시 임신 준비사업' 예산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41 尹 대통령, 체코 원전 수주 유공자 등에 추석 명절선물 전달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40 연금개혁안 놓고 “형평성 개선”·“세대 갈등 조장” 의견 분분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39 국적 속인 ‘중국 스파이 의혹’ 필리핀 전 시장, 인니에서 체포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38 첫 원내대표 연설 "대통령 헌법 지키고 있나"‥야당은 박수·여당은 야유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37 수요일밤마다 문 닫는 이대목동 응급실‥"주요 응급실 25곳 혼자 당직 위기"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36 전기차 캐즘에…포스코퓨처엠, 中과 1.2조 전구체 합작공장 철회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35 국민연금 보험료율 27년 만에 대폭 인상‥"50대는 빨리·20대는 천천히"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34 현대건설 사옥 돌진한 차량…“재개발 불만” 60대 [영상]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33 “지난해 수능·6월 모평보다 쉬웠다”…최상위권 변별력 관건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32 "불날까봐" 깎아줘도 안 사는 전기차, 없어서 못 파는 하이브리드 [박일근의 이코노픽] new 랭크뉴스 2024.09.04
43331 응급실에 군의관 투입한다지만…야간·휴일진료 차질 여전(종합) new 랭크뉴스 2024.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