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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하니]
손흥민의 성공,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 덕분일까?
손흥민 선수(왼쪽)와 아버지 손웅정씨. 연합뉴스

‘논쟁하니’ 일곱번째 주제는 ‘손흥민 선수의 성공, 아버지 손웅정씨의 혹독한 훈련 덕분일까?’입니다. 손웅정 손(SON) 축구아카데미 감독이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되면서 손씨의 지도 방식에 대한 논쟁이 거셉니다. 손씨는 아들 손흥민 선수에게도 어릴 적부터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손씨는 “흥민이를 많이 팼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손흥민 선수의 성공은 이런 교육방식 덕분이었을까요? 긍정과 부정으로 나뉜 두 스포츠 지도자의 견해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이래서 ‘찬성’ 입니다

“엘리트 체육 ‘극한의 담금질’ 불가피”


고병훈 | 여자핸드볼 전 국가대표 감독

필자는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핸드볼 대표팀 감독이었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 구기종목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금메달을 딴 순간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생방송 인터뷰를 했고, “각고를 이겨낸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각고(刻苦)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뼈에 새기는 고통’이다.

우리보다 평균 키가 10㎝ 이상 크고 힘도 좋은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 경쟁하려면 오직 훈련, 훈련 밖에 없었다. 신장의 열세는 스피드로, 힘의 열세는 전술로 만회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강인한 체력을 키워야 했다.

우리는 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무려 20개월 전인 1987년 새해 초부터 태릉선수촌에 입촌해 구슬땀을 흘렸다. 24살 최고참부터 18살 막내 선수까지 하나로 똘똘 뭉쳤다. 선수들이 가진 기량과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은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낸 선수들은 마침내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88서울올림픽 결승전에서 러시아(당시 소련)를 21 대 19로 물리치고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한 방송에서는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을 이렇게 소개했다. “각고의 훈련 끝에 완벽한 세트플레이와 번개같은 속공이 가능했다. 450그램의 공에는 15명의 힘을 모을 수 있었고, 치명적인 부상을 낳을 수 있는 상대의 무서운 슛도 몸을 날려 막을 수 있었다. 비인기 종목이라는 푸대접 속에서 오히려 투지를 키울 수 있었다.”

손웅정씨. 연합뉴스

요즘 체육계,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손웅정씨의 아동학대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오랫동안 엘리트 스포츠 현장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 사건을 보면서 과연 스포츠의 올바른 지도 방법, 효과적인 지도방법은 무엇일지 스포츠 지도자들은 현장에서 많이 고민할 것으로 여겨진다.

스포츠 지도란 종목과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종목과 단체종목은 지도방식이 다르다. 또 국가대표를 양성하는 엘리트 스포츠냐, 일반인들의 취미 활동인 생활체육이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자율이 강조되느냐, 아니면 불가피하게 강압적 지도가 강조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최대의 역량을 끌어올려야 하는 엘리트 스포츠 세계에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혹독한 훈련은, 선수들 자신은 물론 그 주변 가족들도 충분히 인지한다고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손웅정 축구아카데미 아동학대 사건은 지도자와 그 가족간의 지도현장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가 빚어낸 안타까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엘리트 선수가 되고자 하는 중학생 축구 선수는 일본 오키나와 전지 훈련 도중 경기에서 졌다는 이유로 코치들에게 엎드린 자세로 맞아 피멍이 들었다고 주장한다. 손웅정씨는 분명히 시대의 변화와 법에서 정하는 기준을 따르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지도하다가 이런 일을 빚었다. 하지만 손씨가 입장문에서도 밝혔듯이 “운동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저 소중한 아이들을, 남들과 똑같은 기분으로 남들과 똑같은 노력만 하는 그저 그런 선수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는 마음을 이해한다.

손흥민 선수처럼 은퇴한 피겨스타 김연아 선수도 어릴 적 어머니의 혹독한 훈련이 나중에 공개돼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 극한의 고통 속에 훈련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손흥민 선수 역시 동양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기적을 일궈냈고, 김연아 선수 역시 피겨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1988년 당시 한국 여자핸드볼도 뼈에 새기는 고통이 없었다면 전무후무한 올림픽 금메달의 역사를 쓸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손웅정씨 아동학대 사건을 보면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신뢰와 소통의 부족이다. 88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낸 여자핸드볼 선수들은 극한의 한계에 도전해야하는 훈련 당시에는 필자가 누구보다 미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만나면 도란도란 옛 추억을 정답게 얘기한다. 감독과 선수 간에 신뢰와 소통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손씨가 선수 가족들에게 훈련 상황을 미리 고지하고 충분히 소통하는 환경을 조성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반대’ 입니다

“‘관리∙강압’ 아닌 ‘자율’로도 성공 많아”


김태일 | 여자프로농구 전 금호생명 감독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축구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은 ‘오대영’이라는 불명예스런 한국 이름을 얻었다. 월드컵을 1년 앞둔 2001년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한테 0-5로 졌고, 같은해 8월 체코와의 원정 평가전에서도 0-5로 지면서 붙은 별명이다. 그러나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들이 훈련할 때면 웃음꽃이 만발했다. 강인한 체력 훈련을 게임으로 만들어 서로 경쟁하며 즐기다 보니 육체는 힘들지언정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필자는 이 모습을 보며 미국에서 농구 유학을 할 때 생각이 났다. 누구나 그랬지만 필자 역시 학창시절에는 지도자의 구타와 체벌에 시달렸다. 반면 미국 선수들은 농구를 즐겼다. 지도자의 강압에 못이겨 억지로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량을 키우기 위해 자율적으로 훈련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1994년 프로야구 엘지(LG) 트윈스는 이광환 감독의 자율야구로 정상에 오르며 새바람을 일으켰다. 이 감독은 경기에서 이긴 뒤 인터뷰를 할 때면 언제나 “저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선수들이 스스로 다 알아서 한 것”이라며 겸손해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자율야구’를 자랑하는 것이었다.

당시 스포츠계에선 ‘관리야구’냐, ‘자율야구’냐가 논쟁거리였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정웅씨의 아동학대 논란을 보면서 새삼 이 논쟁이 떠올랐다. 스포츠계의 체벌과 폭언, 폭행 사건은 잊을만 하면 한번씩 터진다. 그 뿌리에는 ‘타율’이 있다. ‘관리’하지 않으면 조바심이 난다.

손웅정씨는 “흥민이도 많이 때렸다”고 고백했다. 축구계 선배이자 아버지로서 자식을 최고의 선수로 성장시키기 위한 혹독한 훈련 과정에는 부자지간의 애정과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이 전제된 욕설과 체벌이라 할지라도 어린 선수들은 마음의 상처와 정서적 학대를 느낄 것이다. 부자지간도 이러한데 혈육 관계도 아닌 선수가 지도자에게 체벌을 당했다면 분노와 반발 등 실제 느끼는 감정의 폭은 훨씬 클 것이다.

손흥민 선수. 공동취재사진

아버지가 혹독하게 훈련시킨 덕분에 손흥민 선수가 지금의 성과를 이뤘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위험천만한 인식이다. 더 나아가 폭언과 폭력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강압적 훈련이 아니었다면, 구타와 체벌이 동반된 방식이 아니었다면 손흥민 선수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는 1994년 엘지 트윈스 우승과 2002년 히딩크호의 4강 신화가 입증한다.

필자가 운동 선수로서, 스포츠 지도자로서 오랫동안 현장에서 경험한 것 중 하나가 이른바 밑천이 약한 지도자가 거친 언행과 폭행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도자로서 이론과 실전의 깊이가 있어야 기본기, 개인기, 전술 등 상황에 따른 설명과 소통도 가능해진다. 체벌과 구타는 본인 스스로의 분노 조절과 감정 제어가 잘 안되는 성향의 지도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감독으로서 성과에 대한 초조함과 불안함이 강압적인 지도와 폭언, 폭행으로 이어진다.

좋은 지도자는 선수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훈련방법을 많이 연구한다. 지루하고 힘든 훈련 시간이 지도자와 선수간의 유쾌한 시간으로 바뀐다면 ‘히딩크의 훈련방식’처럼 훈련 성과는 배가 될 것이다.

물론 어느 스포츠 종목이건 선수로서 성공하기 위해선 각고의 피나는 노력과 힘든 훈련의 역경을 이겨내야 성공 신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강압적인 체벌과 폭력이 수반돼선 결코 안된다.

이런 점에서 여자프로농구 등 우리나라 프로스포츠계에 아직도 일부 남아 있는 ‘합숙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 프로야구 몇몇 구단에서 터졌던 감독의 선수 폭행과 선배의 후배 폭행 등 구타 사건은 모두 합숙훈련 도중 일어났다. 프로 선수가 집에 가지 않고 시즌 내내 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한다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합숙은 관리와 강압을 의미한다. ‘자율’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가뜩이나 시대가 변했다. 과연 엠지(MZ) 세대 선수들에게 20~30년 전 지도방식이 통할까? 이번 사건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다 벌어진 비극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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