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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먹거리 생태계]
<상>고물가에 국내산 둔갑 기승
국산·수입 식자재값 차이 커지자
지난해 3598곳 적발···13% 증가
온라인선 864곳으로 183% 껑충
적발된 업체 올 형사고발은 '0건'
느슨한 단속·낮은 처벌 불법 조장
[서울경제]

전남 담양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 씨는 최근 원산지 표기 위반으로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단속에 적발됐다. A 씨는 “다른 재료의 원산지를 적는 과정에서 타이핑 실수로 표기를 헷갈리게 썼다”고 핑계를 댔다. A 씨처럼 최근 한 달간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공표된 원산지 위반 품목은 부세·참돔·고등어·낙지·명태 등 열개가 넘는다.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 법적으로는 최대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현실은 대부분이 20만~30만 원에 그친다. 서울 서초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60대 B 씨는 “요즘 매달 적자 행진인데 손님들이 1000원 인상에도 예민해 가격을 쉽게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수입산에 대한 유혹도 있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국내산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고물가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원산지 표시 위반 식품이 시장에 크게 늘면서 먹거리 안전뿐아니라 국내산을 사용하는 자영업자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원산지를 속여 파는 비양심 업체가 늘고 있지만 대부분 형사 고발 대신 평균 수십만 원에 불과한 과태료 처분에 그쳐 낮은 처벌 수위가 불법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특별사법경찰들이 수산물 원산지 표시 집중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뉴스1


17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국림수산물품질관리원이 김종민 새로운미래 의원실에 제출한 ‘식품접객업·통신판매업 원산지 표시 위반 현황’ 자료에 따르면 농수산물 위반(거짓·미표시) 적발 업체는 2019년 3273개소에서 지난해 3598개소로 13% 늘었다. 코로나19로 단속이 어려워 줄어들었던 원산지 표시 위반 건수가 다시 급증세로 돌아서면서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특히 최근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식품 판매가 급증하면서 통신 판매 식품의 원산지 표시 위반은 같은 기간 315개소에서 894개소로 183%나 급증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서울시에서 올해 5월 말까지 원산지 표시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13곳의 음식점(일반음식점, 휴게음식점, 집단급식소) 중 단 한 곳도 고발 처분을 받지 않았다.

최근 5년간으로 범위를 넓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고발 건수는 각 6건, 5건, 5건, 1건, 7건으로 매년 한 자릿수에 머물렀고 나머지는 모두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같은 기간 전체 행정처분 건수는 130건, 49건, 50건, 23건, 43건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년 열에 아홉 이상은 소액의 과태료로 불법을 무마한 셈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원산지 위반에 대한 20만~30만 원 과태료는 사실상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최소 100만 원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원산지 위반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지도·점검 실적은 감소세다. 서울 시내 음식점을 대상으로 한 원산지 지도·점검에 따른 단속 건수는 2019년 130건에서 2023년 43건으로 줄었다. 지도·점검이란 지자체와 농·수산물품질관리원 등 유관기관들이 합동으로 도·소매점, 통신판매점, 음식점 등을 방문 점검해 위반 사항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같은 기간 전체 식품접객업소(음식점·주점·제과점)에 대한 단속이 2645개소에서 2396개소로 10% 안팎 줄어드는 데 그쳤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감소 폭이 컸다.

당국의 부실한 단속과 함께 국내산과 수입산의 과도한 가격 차이 역시 원산지 둔갑을 부추긴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농림수산품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분기 110.06이었으나 올 1분기에는 122.21로 1년 만에 급등했다.

서울경제신문이 서울 서초구·동작구·영등포구·종로구 등 도심 식당가 일대를 둘러본 결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식자재 가격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동작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C 씨는 “김 값이 100장에 6000~7000원에서 올해 1만 3000원 수준으로 2배 이상 올랐다”며 “소고기마저 국내산을 사용하면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산지를 속인 상품까지 시중에 나돌면서 자영업자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원산지 위반은 식당뿐 아니라 키즈카페·군부대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농수산물품질관리원 충남지원은 올 2월 군부대에 조달하는 식품 업체에 돼지고기 222톤을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한 혐의(농수산물 원산지 표시 위반)로 축산물 유통 업체 관계자를 검찰에 넘겼다. 올 4월에는 대전·세종·충남 지역 키즈카페 97곳을 대상으로 집중 점검을 실시한 결과 쌀·닭고기·돼지고기 등 원산지를 거짓 표시한 업체 4곳과 미표시한 업체 6곳이 적발됐다. 특히 성장기 유아·어린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키즈카페까지 ‘가짜 국내산’이 쓰이면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상기후와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원산지 둔갑의 원인이 된 국내산과 수입산 간 가격 차이는 농축수산물 등 1차 산업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반찬인 김치는 중국산에 밀려 국내산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입식품정보마루에 따르면 지난해 김치 수입량은 28만 7180톤으로 2년 전에 비해 18% 늘었다.

전문가들은 원산지 위반 증가세를 억누르기 위해 단속 강화와 함께 수입산보다 비싼 국내산을 사용해도 자영업자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원산지 표시는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의무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규제하는 한편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려는 자영업자들이 활로를 모색하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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