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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로데오역 피부·미용 의원 19곳 중 12곳 조사
원장 12명 중 5명이 필수과 전문의 출신
“수요 넘치는 곳에 의사 유입은 당연”
“의사 늘어나도 비(非)인기과 문제 해소 어려워”

압구정로데오역 한양아파트 앞 사거리에서 학동사거리까지 500m 골목에 있는 피부 미용 시술 의원 19곳을 점으로 표시했다. 이 중 진료 중인 12곳 가운데 9곳의 대표 원장이 전문의였다./그래픽=손민균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데오역 4번 출구 뒷골목은 청담동 피부과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눈에 보이는 건 온통 보톡스, 필러, 리프팅, 쁘띠성형 같은 문구이다. 피부·미용 의원들이 내 건 안내판인데, 정작 간판엔 ‘피부과’라는 단어는 없다. 병원 간판에 피부과라고 쓰지 않는다는 건 피부과 전문의가 없다는 뜻이다.

청담동에서는 어떤 의사들이 피부·미용 시술을 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의원이라고 하면 다들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반의들이 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청담동 뒷골목을 메운 의원 10곳 중 4곳의 원장은 전문의였다. 그것도 사람 생명과 직결돼 ‘필수의료’로 분류되는 내과·외과·신경과가 많았다. 의료계는 이를 두고 “의사 수를 늘려도 모두 돈 되는 피부·미용 의원으로 갈 것”이라고 정부의 의대 증원을 비판했다.

“전문의가 연 동네병원, 75%가 피부⋅미용”
17일 오후 압구정로데오역 사거리에서 학동사거리까지 500m 골목에서 피부·미용 시술을 하는 의원 19곳 중 12곳이 진료를 하고 있었다. 영업 중인 의원을 방문해 대표 원장의 전공을 알아보니 일반의는 3명에 그쳤다. 나머지 9명은 전문의들로 외과 3명, 내과 전문의 1명, 신경과 전문의 1명, 가정의학과 전문의 4명이었다.

전문의를 따려면 인턴 2년, 레지던트 4년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압구정 피부·미용과 거리에 있는 전문의들은 어렵게 딴 자신의 전공을 살리지 않고 주름을 펴주는 주사와 미용 레이저를 쏘고 있다는 뜻이다. 한 의원은 “오늘은 레이저 시술 외에 다른 진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현실은 수치에서도 나타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서울 강남의 압구정⋅신사⋅청담동 지역 의원 727개 가운데 전문의가 개원한 의원은 433곳이었고, 이 가운데 324곳이 피부⋅성형을 진료 과목으로 걸었다. 전문의가 개원한 동네병원 10곳 중 7곳은 피부⋅미용을 한다는 뜻이다.

일반의가 운영하는 의원들을 살펴보면, 의학전문대학원을 나와 곧장 개원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압구정만의 얘기도 아니다. 서울, 경기, 울산 등 8개 지역에 13곳의 피부 클리닉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병원은 홈페이지에 원장 이력을 공개하는데 피부과 전문의는 단 2명뿐이었다. 원장 중에는 서울 대학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출신도 있었다.

“의사 수 늘려도 필수과는 안 간다”
의료계는 ‘의사 수가 늘어나더라도 필수의료로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한다. 서울 강남의 피부·미용 의원 바람은 그 근거로 제시된다. 의사 수를 늘려도 필수 의료가 아니라 피부·미용 분야로 의사들이 몰려간다는 것이다. 인턴 과정을 마치고 바로 피부·미용 의원을 개원했다는 젊은 의사는 “피부·미용 개원가 시장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다 보니 하루라도 일찍 진입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른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으로 불리는 인기과는 소득이 많고,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등 필수과는 소득이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다. 2021년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산부인과 전문의 연평균 임금은 2억 3700만원, 응급의학과 2억 3400만원, 흉부외과 2억 2600만원, 외과 2억 2400만원 등으로 전체 28개 진료과 전문의 연평균 임금 2억 3700만원과 같거나 밑돌았다.

내과 레지던트로 있다가 최근 사직한 전공의는 “의대 정원을 늘리면,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선택하지 않고 더 기피할 것”이라며 “환자는 수가 한정됐는데, 의사를 늘리면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은 수술 경험치가 줄고, 생존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경외과 전문의는 “필수의료 과목은 진료·수술을 할수록 적자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인력을 채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 수를 늘려서 필수의료 의사를 확충한다고 해도, 전공을 살려 일할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 흉부외과 전문의는 “필수의료를 전공해 봐야 경영난에 의료소송 분쟁에 휘말릴 위험도 큰길 대신 위험 부담이 적은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수의료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필수의료는 응급의료·외상·암·심뇌혈관질환·중환자·중증감염병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 관한 의료서비스나, 임산부·신생아·소아 질환 등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문제 또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의료서비스를 뜻한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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