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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충남 홍성군에 주택을 갖고 있던 A 씨. 그의 집 옆에는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직경 1m짜리 배수로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2020년 8월 3일, 수도권과 강원, 충청 지역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위기 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을 발령했고, 그날 자정 기준으로 전국에서 12명이 숨지고 21명이 실종되거나 다쳤습니다.

A 씨의 집이 있던 홍성군에도 집중 호우가 내렸습니다. 집 옆의 배수로에서 물이 넘쳤고, A 씨의 주택도 침수되고 말았습니다.

장마 이후 농어촌공사의 준설 공사가 이뤄졌고, 배수로 내부에는 누가 설치했는지 모르는 직경 40㎝의 이중벽관이 설치돼 있었단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 "배수로 넘친 책임 져라" Vs "무허가 건물이니 배상 안 해"

A 씨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정상적으로 관리해야 할 배수로가 넘쳐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물에 젖은 가전제품과 가구를 폐기하고 주택을 수리해야 하는 등 막대한 재산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1,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이 사건 배수로에 설치된 이중벽관이 배수로의 흐름을 방해했다는 주장을 부인하며, 침수 사고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불가항력적 사고라고 맞섰습니다.

또 A 씨가 이중벽관을 설치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침수된 주택은 무허가 건물이므로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만약 배상하게 된다면 홍성군으로부터 지급받은 재난지원금 200만 원을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해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 법원 "배수로에 설치·관리상 하자…천재지변 아냐"

1심 법원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심을 맡은 대전지방법원은 농어촌공사의 관리 책임을 인정하고 400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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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재판부는 "침수사고 당시 배수로 내부에 설치된 이중벽관이 배수로 단면적을 감소시키고 물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해 결과적으로 물이 넘친 것"이라며, "(공사는) 농업생산기반시설인 용수로·배수로의 유지와 안전관리를 할 경우 장애물을 제거해 통수장애 요인 제거에 유의해야 하고, 월류의 위험 우려 구간 조사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공사가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 사건 배수로 내부에 배수를 방해하는 장해물이 설치되어 있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등 방호조치를 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으나, 이를 다하지 않은 설치·관리상의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사가) 주기적으로 이 사건 배수로 내부에 유수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는지 여부를 점검해야 할 것이나, 사고 전에 이런 조치를 취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천재지변이라 불가항력이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민법 제758조(공작물등의 점유자, 소유자의 책임)
①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소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농어촌정비법 제18조(농업생산기반시설의 관리)
① 농업생산기반시설관리자는 농업생산기반시설에 대하여 항상 선량한 관리를 하여야 하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농업생산기반시설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 "무허가 주택이라도 배상…재난지원금 공제 안 돼"

법원은 손해배상 액수는 제한했습니다.

재판부는 "침수 피해 발생과 동시에 소실된 재산은 피해 증명이 어렵고, 손해의 내용이 대부분 동산(부동산이 아닌 가전제품, 가구 따위의 물건 등) 피해와 관련되어 손해액에 대한 객관적인 감정이 어렵다"면서 "침수사고 발생일로부터 이미 약 3년이 지나 증거가 소실됐다"면서 재산상 손해액을 300만 원, 위자료를 100만 원만 인정했습니다.

다만 법원은 "공사는 (A 씨의 주택이) 무허가 건물로서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주택이 재산권 침해에 대한 보호의 객체에서 제외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재난지원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재해의 사후대책을 강구함으로써 피해자의 복구를 돕고 피해자의 생활이나 경영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사회보장적 성격의 제도"라며 홍성군이 A 씨에게 지급한 재난지원금을 손해에서 공제해야 한다는 공사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해당 소송은 지난해 말 2심에서 확정됐습니다.

백인성 변호사·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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