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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1일 오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입법청문회가 진행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왼쪽)이 위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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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사단장이 사표를 낸다고 그래 가지고 ○○이가 전화 왔더라고. 그래 가지고 내가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내가 브이아이피(VIP)한테 얘기를 하겠다(고 ○○이에게 말했다).” (2023년 8월9일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와 공익제보자 ㄱ씨의 통화 녹취)

“제가 VIP라고 한 건 (김건희) 여사님을 제가 지칭하는 겁니다.” “○○○(공익신고자)과 대화한 건 여사님이고 우리 해병대에서 얘기하는 VIP는 해병대 사령관이다.” “(…) 제가 (VIP에게 구명 로비를) 한 것처럼 부풀려서 얘기한 부분입니다.”(이종호 전 대표 15일 JTBC 인터뷰)

최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이자, 과거 김건희 여사의 증권계좌 관리인으로 알려진 이종호 전 대표의 통화 녹취와 언론 인터뷰가 공개되며 ‘VIP 구명 로비’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구명 로비’ 의혹은 이 전 대표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을 위해 VIP에게 로비를 했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통상 공직사회에서 VIP는 대통령을 지칭하다 보니, 야당은 이 전 대표의 통화 녹취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윤 대통령이 관여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 전 대표의 통화 녹취가 사실이라면, 이는 수사 외압 의혹의 시작점인 ‘VIP 격노설’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VIP에 대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또는 김 여사라고 하는 이 전 대표의 오락가락한 해명도 의혹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VIP란 표현은 보통 공무원들이나, 대통령실 참모 등이 대통령을 지칭할 때 주로 쓰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역대 정부를 돌아보면 이 표현이 공론장으로 나오는 순간 늘 정권의 ‘그림자’가 드러나곤 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공식 호칭이 있는데 왜 VIP라는 용어 사용은 계속되는 것일까요. 이 전 대표가 말하는 VIP는 누구일까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8일(현지시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 도착해 도열병의 거수 경례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VIP지시사항’ ‘VIP말씀’ ‘VIP 업무보고’ ‘VIP 관심사항’

“VIP께서…” “VIP 뜻이 그렇다는데…” ‘V의 의중은…”. 정부 부처 공무원이나 대통령실 참모들을 만나면 흔히 듣게 되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대통령을 모시는 ‘내부자들’의 은어처럼 사용됩니다. 공문서에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각 부처가 작성하는 예산안 설명자료를 살펴보면 종종 ‘VIP 지시사항’이라는 표현으로 예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눈에 띕니다.

언제부터 VIP라는 호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는 불명확합니다. 다만 과거 권위주의 정부를 상징하던 ‘각하’라는 호칭이 사라진 뒤 사용 횟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기록원 누리집에서 VIP를 검색하면 2000년 이후부터 이 표현을 사용한 정부문서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VIP 지시’로 검색해보니 1981~1990년 1건, 1991~2000년 3건, 2001~2010년 29건, 2011~2020년 29건의 문서가 생산된 걸로 나타납니다. 대통령 비서실이나 경호처 말고도 각 부처에서 ‘VIP지시사항’, ‘VIP말씀’ ‘VIP 업무보고’ 등의 이름을 가진 문서를 생산했습니다.

역대 정부를 보면 VIP는 단순히 대통령을 지칭하는 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권력’의 상징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민간인 불법 사찰로 문제가 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자신들이 역할을 ‘VIP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초기 청와대와 해양경찰청의 녹취록을 보면, 급박한 상황에도 청와대는 현장 영상을 보내라고 수차례 독촉하면서 “VIP보고 때문에 그런데…”라고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VIP 지시’ ‘VIP의 뜻’이라는 표현이 수시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한 병원의 진료기록에 표시된 VIP가 누구냐는 의혹이 일었고, 해당 병원은 VIP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위법의 경계 언저리에 있는 대통령의 지시를 전할 때, 대통령의 뜻을 강조할 때, 대통령의 권력을 앞세울 때 VIP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 것입니다.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발단인 ‘VIP 격노설’에서도 VIP는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한 사실관계 진술서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2023년 7월31일)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 주재 회의 간 해병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김 사령관은 해당 발언을 부인 중입니다.)

지난해 7월19일 오전 경북 예천군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채아무개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을 당시 다른 해병대 동료의 모습. 연합뉴스

진짜 VIP는 누구인가

“이 씨의 말 한마디에 VIP는 해병대 사령관이 됐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됐다가, 김건희 여사가 되었습니다.”(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 16일 브리핑)

이씨의 통화 녹취와 해명에, 야당은 VIP 구명 로비 의혹의 진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로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와 더불어 특검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6일 브리핑에서 “V1 윤석열 대통령의 수사 외압이 V2 김건희 여사에 대한 청탁 의혹으로 번지며 초유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커지고 있다. 결국 진실을 밝힐 수단은 특검뿐”이라고 했습니다.

특검이 도입될지, 그래서 진실을 밝혀낼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역대 정부는 진정 VIP로 대접받아야 할 국민이 아니라, 한두 사람의 VIP를 지키고 그의 뜻을 앞세우려고 할 때마다 늘 위기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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