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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소멸·고령화에 사업성 낮아진 생보사들
생명보험사 KB라이프생명은 요양전문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를 두고, 업계 최초로 요양시설을 운영 중이다. 이 회사의 요양시설 서초빌리지(사진)는 일정 수준의 자기부담금을 낸 요양급여 수급 대상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KB골든라이프케어 제공


인구 소멸과 고령화로 직격타를 맞은 산업 중 하나가 생명보험업종이다. 인구가 줄수록 가입자(수익)는 감소하고, 수명이 길어지면 보험지급(지출)이 늘어나는 ‘장수 리스크’가 재무제표에 실시각 반영되기 때문이다. 수익성을 고민하던 생보사들은 요양시설 등 실버산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부는 규제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민간의 돌봄 서비스 진출에 호응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고품질 요양 서비스를 기대하는 고령층 수요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가뜩이나 높은 민간 의존도를 계속 강화하는 방향성에 대해선 우려가 나온다.

15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생보사의 신규계약액은 5년 전인 2018년(302조7699억원)보다 20%가량 감소한 243조9458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해는 월평균 신계약이 19조6473억원(11월까지 기준)으로, 그간 유지됐던 20조원선이 처음으로 붕괴됐다. 한해 신규 가입액을 합친 신규계약액이 준다는 건 그만큼 생보사의 수익원이 감소하고, 장기적으로 보험사의 자산 운용 기능이 취약해진다는 의미다.

수익원은 줄어드는 데 가입자의 수명이 길어지는 고령화는 생명사의 자본을 갉아먹고 있다. 올 초 개정된 경험생명표에 따르면 생명보험 가입자의 평균수명은 남성 86.3세, 여성 90.7세다. 5년 전보다 각각 2.8세, 2.2세 늘어난 것으로 보험사 지출도 덩달아 커졌다. 2020년 13조1216억원에 그쳤던 생보사 생존급여금은 2023년 16조2826억원까지 치솟았다. 연금수급을 개시한 가입자들이 오래 사는 만큼 나가는 지출이 늘었다는 이야기다.

월 200만원대 부담에도 요양시설 대기 폭주
부지매입 조건에 생보사들 군침만
복지부, 관련 규칙 개정 작업 시작

성장판이 닫힌 생보사들은 고령화를 탈출구로 삼았다. 실버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선두에 선 기업은 KB라이프생명이다. 이 회사는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를 두고 2019년부터 서울 송파구 위례와 서초구에서 요양시설을 오픈했다. 이 사업은 소위 대박을 쳤다.

시설비용이 자기부담금만 최소 월 90만~300만원에 달할 정도로 높은데 대기자가 6월 기준 4700명에 달한다. 서초가 80명, 위례가 120명으로 정원이 합쳐 200명인 시설에 서류를 갖추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넘쳐난 것이다. KB라이프생명 관계자는 “가까이서 부모를 모시고 싶어하는 보호자들이 도심형 요양시설을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성을 확인한 경쟁사들도 분주하게 요양시설 운영을 준비 중이다. 신한라이프는 요양시설 부지를 매입, 내년 개소를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시니어리빙TF를 출범시켜 사업성 검토에 들어갔다.

하지만 요양시설이 보험사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자리 잡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있다. 10인 이상 노인요양시설을 설치하기 위해선 토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이다. 입소 노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 규제를 걸어놓은 것인데, 이 때문에 KB나 신한처럼 직접 부지를 매입하지 않는 이상 시설 운영은 불가능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영리적으로 볼 때 고객 수요가 있는 곳은 결국 서울 도심과 수도권인데 여기에 부지를 매입한다는 건 상상 이상의 돈이 든다는 것”이라며 “신사업이 흑자로 전환하기까지 최소 5년은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도 부지 매입에 따른 초기투자 비용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요양시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 님비 현상 때문에 가뜩이나 사업을 추진하는 게 쉽지 않은데, 땅까지 사야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관련 규칙에 대해 어떤 방침을 내놓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보건복지부는 보험사의 숙원이었던 요양시설 임차 운영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해 관련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시민사회 “돌봄서비스의 민간 의존 우려”
요양시설도 산후조리원처럼 비싸지나

시민사회와 학계에선 우려가 높다. 임대가 완전 허용될 경우 개인 사업자들이 무분별하게 진출해 운영의 안정성이 더 떨어질 수 있다. 업계에선 2주 기준 450만원을 훌쩍 넘을 정도로 치솟은 서울 산후조리원의 모습이 요양 산업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뜩이나 공공 돌봄이 취약한 상황도 보험사의 요양시설 진출을 마냥 반기기 어렵게 만든다. 지난해 복지부의 국회 제출 자료를 보면 2021~2023년 새로 문을 연 장기요양기관 9355개소 중 국공립 비율은 0.3%인 20개소에 불과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지난해 성명을 통해 “금융자본의 장기요양 시장 진입 교두보 역할을 할 요양시설 임대허용 정책은 정부의 국정과제인 커뮤니티케어에도 역행하는 것으로 폐기돼야 한다”며 “노인 요양의 안정성 부실화, 과도한 시설화 등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가 수도권에 요양시설을 만들면 서비스 질은 좋아지더라도 각종 비급여 서비스를 동원해 장기요양 수가를 뛰어넘어 결국 돈 있는 노인만 누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저소득 노인들이 안정적으로 이용할만한 요양 시설 확충 논의가 함께 진행돼야 맞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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