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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토함산 일대 3곳서 진행 확인
폭우·지진 등 외부 충격 땐 지반 무너져
전문가들 “복원·복구 작업 서둘러야”
925 지방도로 방향으로 나 있는 황용동 산밀림 현장. 녹색연합 제공


지난 5월 산사태가 대규모로 발견됐던 경북 경주 국립공원 토함산 일대 3개소에서 땅밀림 현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땅밀림은 산사태보다 위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되며, 폭우·지진과 같은 외부 충격과 만나면 지반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특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견된 땅밀림이 도로와 마을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어 위험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15일 녹색연합과 경주 무장산, 함월산, 토함산 일대를 돌아본 결과 토함산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과 동쪽에 3개 지점에서 땅밀림이 확인됐다. 경북 경주시 황용동 산 116(1번)에서 1만2231㎡, 116-5(2번)에서 2731㎡ 면적의 땅밀림이 발견됐고 문무대왕면 범곡리 산 286(3번)에서도 4852㎡가 진행 중이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세 곳이 5㎞ 반경에 밀집해 있어 연쇄 붕괴도 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땅밀림은 지하수가 차오르면서 약해진 땅이 비탈면을 따라 대규모로 서서히 무너지는 현상을 말한다. 평소엔 서서히 진행되지만, 폭우가 내리거나 지진으로 충격이 가해지면 급격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 표층만 무너지는 산사태와 달리 지반이 통째로 쓸려 내려가 위력과 피해가 산사태보다 100배가량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살표 모양으로 찢어진 황용동 산밀림 현장. 녹색연합 제공


토함산 일대 땅밀림은 도로와 마을을 향하고 있어 특히 우려된다. 황용동 산에 발생한 두 개의 땅밀림의 유로를 살펴보니 한 개의 계곡으로 모인 뒤 925 지방도로로 향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1번 땅밀림 발생지역의 하단부는 도로로부터 약 350m 지점 떨어져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지만 경사가 심해 도보로 오르는 데 1시간20분쯤 소요됐다. 땅밀림 전문가인 박재현 경상대 산림융복합학과 교수는 산밀림 현장을 보며 “경사도가 35도를 넘는다”면서 “무너지기 시작하면 도로에 다다르기까지 2분이 채 안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폭우나 지진이 발생하면 1만5000㎡에 가까운 면적에서 무너져 내린 흙과 돌덩이들이 언제 도로를 덮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단부에서 바라본 황용동 땅밀림 현장. 이홍근 기자


황용동 산지는 이미 땅밀림으로 인한 산사태가 진행 중이었다. 지름 20㎝의 작은 돌조각부터 2m가 넘는 바위까지 다양한 크기의 돌들이 부서진 채 계곡을 메우고 있었다. 돌은 불안하게 놓여 발을 디딜 때마다 무너져 아래로 굴러갔다. 서 위원은 “모두 산사태의 현상”이라면서 “일반 산지엔 이렇게 돌 조각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도로를 등지고 바라본 계곡 우측엔 토석류가 쓸고 지나가며 생긴 단층 사이로 끊어진 나무뿌리가 드러나 있었다. 밑동이 하늘을 향하게 꺾이고 부러진 나무들도 여럿 보였다.

계곡에 쏟아진 토석류. 이홍근 기자


등반이 어려울 정도로 바위가 어지럽게 쏟아져 있다. 이홍근 기자


토함산 정상에서 문무대왕면 범곡리 마을로 이어지는 곳에도 땅밀림이 발견됐다. 이곳은 지난 5월에 확인된 24개소 산사태 발생지역 중 가장 큰 규모의 대형 산사태 피해가 발생한 곳 바로 옆으로, 최대 1m 이상 지층이 가라앉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방댐이 설치되어 있어 일정량까지는 쏟아지는 토사를 막을 수 있지만, 용량을 초과하는 규모의 산사태가 일어나면 마을을 덮칠 우려도 있다.

김 교수는 “이 지역은 땅밀림이 많이 일어날 수 있는 셰일층(점토층)이 있어 더 위험하다”면서 “풍화가 심한 곳과 점토층이 뿐리되면서 (점토층을 타고) 쭉 떨어져 나갈 위험이 있는 그런 상태”라고 말했다.

문무대왕면에 마을 방향으로 진행 중인 땅밀림. 녹색연합 제공


범곡리 마을에 설치된 사방댐. 이홍근 기자


전문가들은 당장 이번 여름부터 시급한 대책 마련과 복원·복구 작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위원은 “비가 엄청난 위력으로 쏟아지고, 예보를 능가하는 국지성 집중호우도 수시로 다가오고 있다”면서 “땅밀림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땅밀림이 1cm만 확인돼도 아래 마을 전체를 이주시킨다. 한국도 이에 준하는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먼저 사고가 우려되는 지역에 사방댐을 설치해 피해를 막고, 안정성 검토를 한 뒤 물을 빼내야 땅밀림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균열이 일어나면 그 사이로 물이 들어가 미끄러운 진흙이 생기고, 이로 인해 땅밀림이 가속화하는 만큼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짧게는 보름이면 할 수 있는 작업”이라면서 “지자체와 공단, 산림청의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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