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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15일 이태원 참사 결심 공판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로 검찰이 징역 7년을 구형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마지막 공판이 열린 15일 오후 서울서부지법에서 유가족들이 희생자 김의진씨의 어머니 임현주씨의 말을 들으며 눈물 흘리고 있다. 김영원 기자

‘퍽, 퍽, 퍽’ 지난 15일 이태원 참사 재판이 열리는 서울서부지법 303호 법정. 숨 막히는 공기 속 보라색 조끼를 입은 참사 유가족이 주먹으로 가슴을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난해 1월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기소되고 같은 해 3월부터 시작됐던 재판이 1년4개월 만에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유가족들은 박 구청장을 보면서는 울분을 토하고, 검찰이 최종 의견을 밝힐 때는 울음을 쏟아냈다.

이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선 검찰과 박 구청장 등 용산구청 피고인들의 치열한 다툼이 이어졌다. 지방자치단체의 이태원 참사 예방·대응에 관한 형사적 책임을 묻는 재판부의 첫 판단을 앞둔, 마지막 재판이었다. 유가족들은 재판이 시작되자 박 구청장을 보며 “마스크를 벗어달라”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고, 이로 인해 소란이 일었다. 재판부는 “소란이 우려된다”면서도 “마지막 재판이니 부탁드린다”는 피해자 대리인 요청으로 기존 11석보다 더 많은 좌석을 유가족에 내어주기도 했다.

검찰은 75페이지의 피피티(PPT)를 준비해 최종의견을 밝혔다. 검찰은 관련 법령에 따라 지자체장인 박 구청장이, 핼러윈 데이엔 좁은 골목길에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이태원 지역 특성을 반영한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는데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아 직원들이 재난 발생을 대비하고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도 봤다. 검찰은 “박 구청장은 이번 사고를 막을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 중 한명이다. 각종 법령과 매뉴얼에 따라 지역 내 재난에 대한 컨트롤타워로 인파의 집중에 따른 사고를 막았어야 했다”며 과실과 그로 인한 발생 결과가 “너무나 중대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구청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담담한 목소리로 공소사실을 읊던 검사는 최종의견을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검사가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바라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계실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할 땐 유가족들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검사는 “정말 많은 사람이 사망했고 다쳤다. 참사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었다. 사고 발생 방지 의무가 있던 구청과 경찰의 귀책으로 발생한 사고였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구청장 쪽 변호인은 131페이지의 피피티로 맞섰다. 그는 핼러윈 데이를 대비해 별도의 안전관리 계획을 세운 전례가 없고, 그런데도 두 차례 대책회의를 개최한 뒤 11개 부서가 부서별 추진계획을 수립해 가능한 사전조치를 다 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실효적인 안전대책과 거리가 멀다고 (검찰이) 지적하는데 ‘실효적 대책’이 뭔지 모르겠다”고도 말했다. 당일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조처는 “인파 유입을 차단하거나 밀집된 군중을 해산시키는 것이 유일했다”며 구청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도 했다.

방청석에 앉은 유가족들은 답답한 듯 주먹으로 가슴을 치거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 구청장 쪽 변호인이 박 구청장의 무죄를 주장하며 내보인 현장 사진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변호인이 1시간에 걸친 변론을 마무리하며 “박 구청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령상 근거가 없는 게 명백하다”고 무죄를 주장하자, 유가족들은 “부끄럽지도 않으냐”며 소리쳤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에 대한 마지막 공판을 마친 뒤 법원 밖에서 “박 구청장이 제대로 대처했다면 살릴 수 있었는데”라며 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먹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유가족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던 변론도 있었다. 최원준 전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 쪽 변호인은 ‘나비효과’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그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 즉 사소한 사건이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며 “수십년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사가 있었는데 유독 2022년 5월 기존과 다른 변화가 있었다. 용산으로 대통령실이 이전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인은 검찰이 공소사실에서 ‘국가’를 지웠다며, 하위 공무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변론을 이어갔다. 유가족들은 “옳소”라며 변론을 지지했다. 변호인이 “국가 최고 권력자가 피해자들에게 명복을 빌고 사과해야 한다”며 변론을 마무리할 땐 “맞는 말이다”라며 방청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변론이 끝난 뒤 각 피고인에겐 최후진술 기회가 주어졌다. 마스크를 낀 박 구청장은 작은 목소리로 “용산구청장으로서 참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는데 유가족은 “이쪽을 보고 얘기하라”고 소리쳤다. 박 구청장은 끝내 방청석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박 구청장 쪽 변호인이 재판 도중 웃는 모습을 보고 유가족은 “왜 자꾸 히죽히죽 웃느냐”고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유가족 발언을 앞두고 충돌을 우려한 재판부가 피고인들을 먼저 내보내자 법정에선 큰 소동이 벌어졌다. 법정 경위가 따라나서려는 유가족을 제지했고 박 구청장 등 피고인들을 감싸며 퇴장했다. 앞서 박 구청장은 유가족과 마주치지 않으려 재판 시작 1시간 반 전 경호원에 둘러싸여 입장하기도 했다. 법원 밖에선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 피고인과 변호인, 울면서 그들을 쫓는 유가족이 한참을 뒤엉켰다. 모두가 떠난 자리엔 끝내 주저앉아 통곡하는 유가족뿐이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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