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 내 작업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북한 고위급 외교관이 지난해 11월 망명한 사실이 16일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이날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의 리일규 정무참사(52)가 아내, 자녀와 함께 지난해 11월 국내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리 참사는 이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망명 사실을 공개했다.

리 참사는 쿠바에서 두 차례 근무한 이력이 있는 북한 외무성의 대표적인 ‘쿠바통’으로 평가된다. 리 참사는 2016년 탈북한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당시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이후 국내로 들어온 최고위급 외교관으로 알려졌다.

리 참사가 망명한 지난해 11월은 한국과 쿠바가 수교를 맺기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되던 때다.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국인 쿠바는 지난 2월 한국과 전격 수교했다. 이런 상황이 리 참사의 망명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리 참사와 북한에서 잘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밝힌 태 전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일규 참사가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마지막으로 수행한 가장 중요한 업무는 한국과 쿠바 사이의 수교 저지 활동이었다”며 “평양의 지시를 집행해 보려고 애를 써봤으나 쿠바의 마음은 이미 한국에 와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고 했다.

정부가 과거 아프리카 등의 국가와 수교를 맺으려 할 때도 북한 측의 저지 시도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수교를 체결한 국가가 한국과 수교를 맺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게 해외 주재 북한 외교관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인 것으로 전해졌다.

태 전 의원은 리 참사에 대해 “북한 외무성에서 김정일, 김정은도 알아주는 쿠바 전문가”라고 평가하며 “김정은에게 올라가는 중남미 지역 문제와 관련한 많은 문건을 그가 직접 작성했다”고 했다.

태 전 의원은 리 참사가 청천강호 억류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표창장을 받았다고도 전했다. 2013년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쿠바에서 미사일과 전투기 부품 등을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다가 적발됐을 때 리 참사가 파나마 측과 교섭에 나섰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가 풀리면서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무장지대(DMZ)에 불모지를 조성하고 지뢰를 매설, 대전차 방벽을 세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육로를 통한 탈북을 막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해외에 근무하는 외교관들은 이같은 통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번에 북한 외교관의 망명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19년 7월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같은 해 9월 류현우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이후 5년 만이지만 엘리트 계층 탈북민은 계속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교관·해외주재원·유학생 등 엘리트 계층 탈북민은 10명 내외로 2017년 이후 최대 규모였다.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제정하고 탈북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 발간하는 등 북한 인권 문제와 자유주의를 고리로 한 통일론을 강조하고 있다. 리 참사와 같은 고위급 공무원의 망명은 이런 통일론에 힘을 실어주는 사례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북한 주민들은 대한민국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여러분과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고 ‘사람과 사람의 통일’이 이뤄질 때 ‘진정한 자유통일’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유새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