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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습 사건도 놀이로 삼는 밈 세계
때론 지나치지만 가끔 도움도 된다
일요일 아침 일찍 폰으로 국민일보 홈페이지를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피습 뉴스. 놀랍지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정치 갈등이 내전 수준으로 치달은지 오래다. 정치인을 향한 극단적인 구호와 욕설을 초등학생들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몇시간 뒤. 어느 목사님이 카카오톡으로 이런 그림을 보내왔다.



“그를 강하게 하소서, 주님. 그를 보호하는 천사의 군대를 보내소서, 아버지.”

이전부터 있던 그림이었지만, 예언과도 같은 장면이 돼 버렸다.

총격 사건이 벌어진지 하루도 되지 않아 트럼프가 나오는 수많은 밈(meme)이 등장했다. 밈이란 일종의 유행어 같은 개념이다. 그림이나 문구를 만들어 즐기는 온라인 장난이다. 자기 귀를 잘랐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에 트럼프를 집어 넣은 그림이 이번 사건의 재미난 밈이었다. (재미? 맞다. 비극적이고 아찔한 사건이지만 온라인 밈 세상에선 놀이의 대상이다.)



트럼프는 고흐와 악연(?)이 있다. 대통령 시절 구겐하임 미술관에 고흐의 그림 ‘눈 내리는 풍경’을 백악관에 걸도록 빌려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 당한 적이 있다. 이번 사건 직후 제프리 건들락이라는 더블라인 캐피털 대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미국 정치계의 반 고흐”라고 X에 썼다.


맞수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과 트럼프의 건재함을 비교한 그림도 있었다. 트럼프는 총탄에도 맞섰는데, 바이든은 계단에도 쓰러진다는 내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을 올린 사람은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하는 X 사용자다. 트럼프는 반이스라엘 시위 유학생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 심슨가족도 다시 등장했다. 트럼프가 사망한 장면이 심슨가족에 있었는데, 이번엔 예언이 맞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저격범이 중국 쇼핑몰 테무에서 싸구려 총을 사서 그렇다는 조크도 있었다. 심슨가족은 2000년 3월 방송된 에피소드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전임) 대통령이 되는 미래를 그려서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트럼프 사망 장면은 실제로 방송된 적이 없다고 한다.



트럼프가 귀를 뚫고는 환히 웃는 그림도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정치 일정을 미뤄두고 ‘레이건’의 회복을 기원했다는 패러디도 나왔다. 바이든이 얼마 전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행사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푸틴(러시아 대통령)이라고 불렀던 헤프닝이 떠오른다.



‘자본주의는 잠들지 않는다’는 글귀와 함께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개그9에 올라온 사진이다. 총탄에 맞은 트럼프가 성조기 앞에서 주먹을 흔드는 사진을 티셔츠로 만들어서 파는 장삿속을 보여준다. AP기자가 찍은 이 사진은 AP뉴스에 저작권이 있다. 어쨌든 티셔츠는 물론이고 미국 역사에 남을 사진이다.

트럼프는 정치에 진출한 이후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기를 자처했다. 복잡한 사안을 선과 악으로 단순화하는 선동 능력이야 어느 정치인이든 갖춘 기본적인 기능이지만, 옹알이 같은 말투나 술취한 듯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허리띠를 팅겨 낼 기세인 드레스셔츠 차림, 손가락 두개를 모아 동그라미를 만드는 시그니쳐 포즈까지, 그는 마치 SNL에 출연한 듯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눈길을 끌고, 화제가 되고, 팬을 만드는 것이 부와 권력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이다.



인터넷 밈은 사건과 인물을 가벼운 농담으로 다룬다. 지나칠 때도 있지만 때론 그 가벼움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트럼프 저격 사건의 밈에 그의 건강이나 미국 사회의 양극화를 걱정하는 분위기는 없다. 모두가 가슴 쓸어 내린 사건을 놀이 대상으로 삼는 모습은 철없어 보인다. 그래도 밈 놀이는 미국 사회가 패닉에 빠지지 않게 평상심을 지켜주는 듯도 하다. 트럼프 자신에게는 좌충우돌 캐릭터에 총알도 이긴 괴짜란 캐릭터가 더해졌다. 밈 놀이가 트럼프를 마치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만들고 있다. 조롱과 희화화를 일삼던 밈 플레이가 이젠 트럼프 지지를 더 강하게 만드는 셈. 아이러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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