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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부모 떠난 마늘밭…70대 며느리 홀로 수확
지난 5월 17일 오후 경남 남해군 설천면 덕신마을에서 김정선(78) 할머니가 홀로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지난 5월 17일 오후 경남 남해군 설천면의 한 마늘밭. 0.03㏊(약 100평)규모 밭에서 김정선(78) 할머니가 홀로 마늘을 수확하고 있었다. 오후 내내 쭈그려 앉아 마늘을 뽑았지만, 해 질 무렵까지 일을 마치지 못했다. 연신 “아이고” 소리를 내던 김 할머니는 “예전 같으면 한두 시간 하면 끝인데, 몸이 성한 데가 없어 온종일 바닥을 기면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10여년 전만 해도 0.66㏊(약 2000평) 규모로 마늘을 재배했다. 당시에는 시부모와 남편·자녀 등 3대가 함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장수마을’로 유명한 설천면 덕신마을에서 102살까지 사셨다는 그의 시어머니는 그 나이에도 가위로 마늘 꼭지도 떼주고 뿌리도 자르며 일을 거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마늘밭에는 며느리인 김 할머니 혼자만 남았다.

김 할머니는 “시어머니, 시아버지, 그리고 우리 영감(남편) 다 돌아가시고 자식들도 취직하면서 마을을 떠났다. 마늘은 손이 많이 가서, 나 혼자서는 이것밖에 못 한다”며 “이제 내도 힘들어서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했다.



하나둘 눈감는 장수마을…“고령에 힘들어 마늘 안 해”
2007년 5월 남해군 덕신마을을 찾은 미국 하와이대 캐서린 브라운 교수(앞줄 오른쪽)가 올해 100살이 된 김소아 할머니에게 하와이산 쿠쿠이 열매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주며 장수를 축하하고 있다. 뒤에서 손뼉을 치는 사람은 왼쪽부터 한동희 노인생활과학연구소장, (한 사람 건너) 리타 바레라스 하와이 장기요양프로젝트 팀장, 오가와 다케오 아시아·태평양 액티브에이징 대표. [중앙포토]
박경민 기자
2007년 미국과 일본 등 세계 장수 학자들이 그 비법을 알아보기 위해 덕신마을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곳에는 113가구 249명이 살았다. 하지만 현재 마을 주민은 173명(107가구)남았다. 한 주민은 “몇 년 새 어르신이 많이 돌아가셨다. 얼마 전에도 100세 어르신 장례를 치렀다”며 “자녀가 마을로 이사와 농사를 짓진 않으니, 휴경지도 많고 빈집이 많다”고 했다.

실제 6~7년 전만 해도 마을 앞 농경지 가운데 70~80%가 마늘밭이었다. 지금은 약 20%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진균(66) 전국마늘생산자협회 남해군지회장은 “고령화에 지역 대표 농산물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마늘 농사는 기비(基肥·파종 전 주는 거름)하고, 파종하고, 겨울철 보온을 위해 비닐로 씌우고(피복), 틈틈이 풀 뽑고, 약 치고, 수확 뒤에는 볕에 말려 선별하는 등 과정이 복잡해 어르신이 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남해마늘, 3분의 1로 ‘급감’…손쉬운 시금치는 ‘껑충’
지난 5월 15일 경남 남해군 설천면의 한 마늘밭에서 고령의 어르신들이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보물섬 남해 마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남해군에 따르면 이 지역 마늘 재배 면적은 2004년 1548㏊에서 지난해 490㏊로 줄었다. 올해는 전년보다 50㏊ 감소한 약 440㏊로 파악되고 있다. 20년 전 재배 면적의 28.42%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마늘 농가 수도 7619농가(2004년)에서 3639농가(2023년)로 반 토막이 나면서 생산량도 2만164t에서 5635t으로 크게 줄었다. 남해 농가의 70세 이상 농민 비율도 18.80%(2000년)에서 40.89%(2020년)로 급증했다.

지난 5월 15일 경남 남해군 설천면 덕신마을 입구. 도로변에 벌마늘이 된 마늘을 줄줄이 걸려 있다. 안대훈 기자
경남 남해군 한 농가에서 재배 중인 시금치. 연합뉴스
남해군에서는 마늘 대신 시금치를 기르는 농가가 늘고 있다. 시금치는 재배 기간(4~5개월)이 마늘(8~9개월)보다 짧고 농사짓기도 비교적 쉽다고 한다. 20년 전 255㏊(2004년)에 불과했던 시금치 면적은 올해 약 900㏊로 증가했다. 현재 마늘 재배 면적의 2배다.

남해군 마늘팀 관계자는 “농경지가 최소 900평은 돼야 수확기에라도 기계를 도입하는데, 남해는 대부분의 마늘밭이 300평 내외”라며 “게다가 어르신이 기계 다루는 법을 새로 배우기도 어렵다”고 했다.



인건비·자재비↑…제주, 마늘 대신 양파·브로콜리 심어
지난 5월 9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500평(1653m²) 마늘밭에서 전옥자(75)씨 등 11명이 마늘 수확 작업을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산 마늘도 10년 새 절반으로 줄었다. 제주농협에 따르면 마늘 재배 면적은 2013년 2733㏊에서 지난해 1113㏊로 60% 가까이 사라졌다. 생산량도 같은 기간 약 4만t에서 1만9000t으로, 2만1000t(52.5%)이나 감소했다.

제주 서귀포시에서 0.16㏊(약 500평) 마늘밭을 일구고 있는 전옥자(75)씨는 “아저씨(남편)까지 돌아가신 후 약 8000평이던 마늘밭 중 500평만 직접 농사를 짓는다”며 “이 와중에 올해 마늘의 70~80%가 벌마늘화(비상품) 돼 제값 받기도 어렵다”고 했다. 제주에서는 마늘 대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양파나 콜라비·브로콜리 등을 심는 농민이 있다.

농민 김대진(78)씨는 “10여년 전 하루 10시간 기준 5만원이었던 인건비가 올해는 최소 11만원으로 2배 이상이 됐다. 새참비·간식비도 따로 줘야 한다”며 “마늘 농사를 지어도 이익이 거의 없다. 마늘밭을 줄이고, 양파와 브로콜리·콜라비를 심고 있다”고 했다.

지난 3월 18일 제주 서귀포시의 한 밭에서 농민들이 조생종 양파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마늘 면적도 ‘반 토막’…“국내산 마늘 못 먹을지도
김경진 기자
2만4700통계청에 따르면 1980·90년대 최고 4만9000여㏊에 달하기도 했던 ‘전국 노지(露地) 마늘 재배면적’은 올해 2만3291㏊에 그쳤다. 2000년 4만4941㏊에서 2만1650㏊가 사라졌는데, 이는 마늘 주산지인 경남·경북·충남·전남·제주 지역 현재 재배 면적을 모두 합친 것(1만9697㏊)보다 많다.

경남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 이문호 박사(농업경제학)는 “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이 농업이다. 국내산 마늘을 더는 먹지 못하고, 수입해서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입에만 의존하다 외교 문제나 전쟁 등으로 수입량이 확 줄면 국내 가격이 폭등할 우려도 있다”며 “주로 김치에 들어가는 마늘·고추 등 양념 채소는 안 먹는 사람이 없는 만큼 식량 안보 차원에서 적정 수준의 생산량이 유지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5월 9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500평(1653m²) 규모 마늘밭에서 발견된 벌마늘(비상품 마늘). 최충일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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