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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15일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 궁평 2지하차도 참사’ 현장 (KBS 자료화면)

■ 1년 전 오늘, 14명 목숨 앗아간 '오송 지하차도 참사'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7월 15일 새벽 4시 10분. 미호강이 흐르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미호천교 일대에 '홍수 경보'가 발령됐습니다.

충북 청주에는 전날부터 '호우 경보'가 내려진데다, 사흘 동안 누적 강수량이 300mm를 넘는 집중 호우가 내린 상태였습니다. 이날 새벽에도 시간당 최대 38mm의 폭우가 기습적으로 쏟아져 미호강 수위가 빠르게 차올라 '홍수 경보'가 발령됐습니다.

하지만 미호강 범람을 막을 '제방'은 없었습니다. 인근에서 다리 확장 공사를 하던 시공사가 기존의 자연 제방을 무단으로 훼손하고, 장마철이 임박해서야 흙을 대충 쌓아 올린 '임시 제방'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법에서 정한 규격도, 기능도 갖추지 못한 임시 제방은 결국 화를 불렀습니다.

이날 새벽 급격히 차오르는 미호강을 보고 놀란 시공사와 감리단 관계자들이 오전 6시 50분쯤부터 뒤늦게 임시 제방에 방수포를 치고 흙을 추가로 쌓아 올렸지만, '깨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었습니다.

지난해 7월 15일 새벽 미호강 임시 제방을 긴급 보수하고 있는 공사 관계자들.

현장을 지켜보던 감리단장 최 모 씨는 오전 7시 4분과 56분쯤, 충청북도경찰청 112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인근 주민 대피'와 '지하차도 통제'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전 7시 51분쯤부터 제방 위로 강물이 넘치기 시작했고, 20분 뒤에는 제방의 흙이 무너졌습니다. 터진 제방 사이로 1분마다 1,140㎥에 달하는 엄청난 강물이 쏟아져 나와 주변의 도로, 농경지를 집어삼켰습니다.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2 지하차도'에도 오전 8시 27분부터 강물이 흘러들기 시작했습니다.

9명의 승객이 탄 시내버스를 포함해 수십 대의 차량이 이런 사실을 모른채 지하차도로 진입했습니다.

시내버스가 출입구로 나오려던 오전 8시 34분, 거센 물살이 지하차도로 밀려왔고 차들은 뒤로 밀려나면서 물에 떠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차도 안에서 탈출하지 못한 운전자와 승객들은 119에 신고를 하고, 차량 지붕 위로 올라가거나 지하차도 구조물을 붙잡으며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오전 8시 51분, 지하차도가 강물에 완전히 침수되면서 이런 절규마저 사라졌습니다.

14명의 피해자와 17대의 차량은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7월 15일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 궁평 2지하차도 참사’ 현장. (KBS 자료화면)

■ "관련 기관 총체적 부실이 화 키워"… 40명 기소

참사 발생 이후, '책임 소재'를 두고 각종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청주지방검찰청은 7월 21일부터 따로 수사본부를 꾸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1년이 지난 현재 충청북도와 청주시, 행복도시건설청, 금강유역환경청, 미호강 제방 공사 시공사와 감리단, 경찰, 소방 관계자 등 모두 40명과 법인 2곳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관계 기관의 '총체적 부실'이 빚어낸 참사라는 정황이 하나씩 확인되고 있습니다.

먼저 미호강의 기존 자연 제방을 무단 절개하고, 이를 방치했다가 장마철이 임박해서야 부실한 '임시 제방'을 쌓은 시공사 현장소장 전 모 씨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지난 5월 31일 1심에서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감리단장 최 씨에게는 같은 혐의로 징역 6년이 선고됐습니다.

법원은 오송 참사가 '자연 재해'가 아니라, 이들이 제방을 훼손하면서 미호강 범람으로 화를 키운 '인재(人災)'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규격에 맞게 임시 제방을 쌓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제방의 규격과 기능이 법에 명백하게 규정된 만큼 '임시 제방'이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제방 훼손 등을 방치·묵인하고 재난 상황 대비를 소홀히 한 혐의를 받는 행복청, 금강유역환경청, 시공사, 감리단에 대한 재판은 잠정 연기됐습니다. 시공사 측에서 현장소장에게 중형을 선고한 판사에게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법관 기피 신청'을 했기 때문입니다.

경찰 관계자 14명은 감리단장의 112 신고에도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거나, 집중 호우에 대비한 상황 근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김교태 전 충북경찰청장 등 지휘부는 재난 대응을 소홀히 한 정황을 감추기 위해 허위 공문서를 만든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두 차례 열린 공판에서 "고의가 없었다"면서 대부분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소방 관계자 2명은 대규모 재난 현장을 지휘하는 '긴급구조통제단'을 참사 이후에 가동하고도, 마치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처럼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참사가 난 지하차도와 미호강의 관리 주체인 충청북도와 청주시 공무원들은 집중 호우에 대비한 사전 점검과 미호강 범람 이후의 대응을 부실하게 한 혐의로 피고인 신분이 됐습니다. 특히 충청북도 공무원들은 홍수 경보 이후에도 지하차도를 비추는 CCTV를 모니터링하거나, 미호천교 수위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검찰은 설명했습니다.

지난 8일, 오송 지하차도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진행된 희생자 추모 도보 순례.

■ 아직 끝나지 않은 진상 규명·재발 방지 대책

참사 발생 1년이 됐지만, 재판에 넘겨진 각 기관의 최고 책임자들은 아직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특히 김영환 충청북도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이상래 전 행복도시건설청장은 참사 직후 중대재해처벌법상 '시민재해' 혐의로 고발됐지만, 1년 가까이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지난 3월부터 5월 사이, 이들을 소환해 조사를 마쳤지만 기소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청주지방검찰청 박영빈 검사장은 지난달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대시민재해는 기존에 전례가 없고, 일반 산업 재해와도 다른 유형이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시민사회단체 등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최고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은 물론, 제대로 된 진상 규명도, 재발 방지 대책도 무엇 하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지하차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진 시내버스 기사의 아들 이중훈 씨는 최근 열린 진상 규명 촉구 결의대회에서 "국가는 더 이상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고 관심도 없다"면서 "5년이든, 10년이든, 100년이든 이런 무능하고 무책임한 책임자들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참사가 발생될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이 씨는 또, "안전한 제방을 만들지도 않았고, 홍수 재난 문자에도, 미호천이 범람할 것 같다는 수많은 신고 전화에도 그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도 거론되고 있지만, 다른 정치적 이슈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사가 났던 오송 궁평 2지하차도는 1년이 지나도록 재개통되지 않고 있습니다. 충청북도 등 관계 기관이 안전 시설을 보강하겠다고 했지만 일부 보완해야 할 점들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미호강 범람을 막기 위해 새로 쌓고 있는 제방은 지난달 22일에 내린 적은 양의 비에도 일부 흙이 유실됐습니다.

비단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감사원의 실태 조사 결과, 전국 159곳의 지하차도가 근처 하천 등에서 홍수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통제 기준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참사 1년이 지났지만 재발 방지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고, 진상 규명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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