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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대기자
로마제국은 ‘3세기의 위기’를 겪었다. 49년 동안 26명의 군인 황제가 부침(浮沈)했다. 대부분 암살당하거나 자살했다. 15일 만에 목숨을 잃은 부자(父子) 황제도 있었다. 요즘 여야 모두가 “탄핵”을 거론하고 있다. 한국에 ‘21세기의 위기’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남미처럼 되는 것 아니냐고들 한다.

현직 대통령에게 덮어씌운 5개의 탄핵 사유는 한결같이 무리하다. 지지율이 낮고 국민들이 미워하니 몰아내겠다는 건 폭력이다. 191석의 거대 야권은 140만 명을 돌파한 국회 탄핵 청원을 무기삼아 이번 주 탄핵 청문회를 연다. 김건희 여사 모녀도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한다. 상대의 헛발질 덕분에 ‘여의도 대통령’으로 등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문재인 집권 모델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권력 진공상태에서 조기에 청와대를 무혈 접수했다. 탄핵 폭탄을 맞고 분열한 집권당은 패잔병이었다. 전투력도, 의지도 없었다. 여당 대통령 후보는 패전처리용 투수였다. 미스터리였던 문재인 후보의 자질과 역량은 급조된 대선에서 제대로 검증될 수 없었다.

이재명, 탄핵·조기집권 노리나
김 여사 등장…억지탄핵 기 살려줘
사과하고 조사받는 것이 사는 길
윤 대통령 ‘법 앞의 평등’결심해야

11개 혐의로 4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 전 대표의 희망사항은 무엇일까.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돼 피선거권이 박탈되기 전에 윤 대통령이 탄핵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집권세력은 또다시 전의(戰意)를 상실한 패잔병으로 전락할 것이다. 하지만 다수 국민은 이 시나리오를 거부하고 있다. 그의 당 대표 연임에 대한 반대 여론이 51%, 찬성은 35%라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그는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의 칼을 휘둘렀다. 비판 세력을 축출하고 전근대적 단일대오의 신정(神政)체제를 구축했다. 흠결투성이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뒤흔들었다. 집권하면 적폐 청산으로 나라를 두 쪽 낸 문 정권의 뒤를 따를 것이다.

윤 대통령은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 차기 대표를 뽑고 총선 참패의 분위기를 쇄신해야 할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김건희 여사 문자 공개 이후 진흙탕 싸움판이 됐다.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네 후보지만 그들이 어떤 정책과 비전을 갖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김 여사의 이전투구만이 장안의 화제다. 이 와중에 비선(秘線)이 움직였고, 댓글부대의 공작 흔적도 들켰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 검사 탄핵 등 무리수는 파묻히고 있다. 김 여사의 돌연한 정치 개입은 “대통령은 도대체 뭐하는 거냐”는 분노를 불렀고, 탄핵 나팔수들의 기를 살려주고 있다. 191석의 야권 탄핵 열차는 경적을 울리며 질주하는데 집권당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비극의 전조(前兆)다.

이제 ‘여사 문제’는 민생 현안인 의료개혁, 연금개혁, 세제개혁보다 위중한 현안이 됐다. 기가 막힌 일이다. 반세기 전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의 지혜가 아쉽다. 아들 지만군이 중학생일 때 대통령이 “강사를 초빙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여사는 “과외 수업이 돼서 정부 방침에 어긋난다”며 펄쩍 뛰었다. 그리고 직접 가르쳤다. 대통령의 술과 여자 문제로 화가 나서 가출한 적도 있었지만 놀라운 절제력으로 청와대 안에서 야당 역할을 했다. 측근의 부패와 권력 남용에 대해 서민의 입장에서 분노했고, 사실 여부를 조사한 뒤 남편에게 전달했다.

당시 경찰, 군 수사기관, 중앙정보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7000여 명이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주장했다. 대통령은 경찰 정보과가 친인척 비리를 감시하게 했다. 장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매일 아침 형사가 집에 찾아와 아예 같이 지냈고, 외출할 때도 따라다녔다. 장인은 “내가 영수한테도 전화를 제대로 할 수 없는데… 독립운동한 것도 아닌데 왜 맨날 형사가 따라붙냐. 사위놈이 날 감시하는구나”라고 역정을 냈다(『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 조갑제, 기파랑). 무한책임을 가진 대통령과 배우자라면 이 정도의 비상한 각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 여사가 비열한 공작에 넘어가 300만원짜리 명품백을 받은 사건이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공언했지만 ‘용산’의 비협조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면에 이 전 대표 부인 김혜경씨는 측근의 법인카드 유용에 관여한 혐의로 조사받았다.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다.

윤 대통령이 화난 민심을 달래려면 김 여사의 자숙이 필요하다. 김 여사는 한 전 비대위원장에게 사과했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잘못을 인정한다면 마음이 상한 국민에게 사과하고 검찰 조사에 응해야 한다. “대선 정국에서 허위 기재 논란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10% 빠졌고…”라는 둔사(遁辭)는 정권의 양심을 마비시키는 독이다. 진정한 사과라면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선 안 된다. 윤 대통령은 눈 딱 감고 ‘법 앞의 평등’을 결심해야 한다. 그런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달려든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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