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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파업 나선 노동자들
삼전 “작업환경 기준 준수…일방 주장일 뿐”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8인치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생리휴가, 연차유급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다 수작업이 많아 강한 노동강도로 퇴행성관절염, 손목터널증후군, 하지정맥류 등 육체적 질환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들의 실제 손가락.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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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파업 6일차인 13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8인치 반도체 생산라인’ 파업 참여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엄지 관절이 튀어오른 손가락 사진이 올라왔다. “손가락이 기형이 되고 있어요”라는 메시지도 함께였다. “손가락만 봐도 ‘8인치’ 라인 훈장”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손가락은 물론 하지정맥류, 족저근막염,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등 다른 질병 관련 사진과 증언이 뒤따랐다. 단체대화방에서는 고강도 노동과 불합리 경험을 나누며, ‘이번엔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을 나눴다.

14일 전삼노에 따르면, 파업 첫날인 8일 ‘8인치 라인’ 가동률은 기존 80%에서 18%로 떨어졌다. 이곳의 20~40대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재해’를 달고 일해온 이들은 한겨레에 ‘임금 인상’, ‘휴가 추가’보다 “우리를 부품 취급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삼성전자 쪽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작업환경 기준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며 “파업으로 인한 생산 실적 차질은 없고, 향후에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8인치 생산라인은 ‘8인치 웨이퍼(반도체 생산을 위한 원판)’로 자동차·가전 등에 쓰이는 레거시(구형) 반도체를 위탁생산(파운드리)하는 라인이다. 다른 12인치 생산라인은 대부분 공장 천장에 웨이퍼 묶음(랏·LOT·웨이퍼 25장)을 운반하는 자동화장치(오버헤드 호이스트 트랜스포트·OHT)가 설치돼 있지만, 낡은 8인치 라인에는 사람이 직접 나른다.

“사람을 갈아넣는 공정”

새벽 6시, 오후 2시, 밤 10시를 기준 3교대로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이 라인에서 30대 여성노동자 ㄱ씨는 15년째 일하고 있다. ㄱ씨를 비롯한 ‘제조 여사원’ 노동자들은 3~5㎏ 무게의 랏을 손으로 꺼내 설비에 집어넣고, 설비가 작업을 마치고 뱉어낸 랏을 다음 설비에 집어넣는 일을 8시간 내내 서서 반복한다.

8인치 생산공정 노동자들에게 손가락 변형, 하지정맥류, 허리디스크 등의 질병이 나타나는 것은 이런 고강도 노동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ㄱ씨는 “중간에 1시간 식사시간이 있지만, 설비는 계속 돌아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줘야 한다”며 “너무 바빠 마음 편히 밥을 먹기도, 화장실 가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25년째 일하는 ㄴ씨는 “방광염을 심하게 앓은 뒤 출근 전에는 물도 마시지 않고 커피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고 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총파업 결의대회가 지난 8일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에이치(H)1 앞에서 열리고 있다. 김영원 기자 [email protected]

회사가 정한 생산물량이 있고, 교대조마다 생산실적이 평가되기 때문에 정신적 압박도 상당하다. ㄱ씨는 “임신한 동료들이 야간근무에서 제외됐는데도 인력충원을 해주지 않아 업무량이 급증했다. 이후 번아웃 때문에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주변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동료들도 굉장히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라인 근무자의 건강 증진을 위해 근골격계 예방운동센터, 건강증진실 등을 운영 중”이라며 “산안법에 따른 근골격계 부담 작업의 기준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8인치 라인의 관련 발병률이 높다는 주장은 확인된 바 없고 관련 산업재해 신청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낮·밤이 바뀐 채 일하는 교대제 노동자들에게 휴식은 필수다.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휴가는 ‘언감생심’이다.

2010년에 입사해 8인치 생산라인에서 대부분 일한 ㄷ씨는 “다른 부서에서는 의무연차를 소진해야 한다고 하지만, 연차 일정을 정할 때 사다리 타기를 해야했다”고 말했다. 15년차 사원 ㄹ씨도 “신입사원이 들어와도 교대근무에 적응하지 못해 퇴사하는 경우가 많아 인력은 늘 부족상태”라며 “연차를 사용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면 가위바위보를 해야한다. 정말 후배들 보기 민망하고 미안하지만, 그날 연차를 사용하기 위해선 가위바위보를 이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반면 삼성전자 쪽은 “연차 사용에 제약이 있다는 것은 일부 근로자의 일방적 주장”이라며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황유미의 후배들”

전삼노 관계자는 “설비 자산의 감가상각기간이 끝났을 정도로 설비가 오래돼, 회사 입장선 설비 문제없이 생산된다면 수익성도 높다”며 “레거시 반도체 수요도 꾸준해 설비개선 대신 인력투입만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쪽은 “파업으로 인한 생산차질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겨레가 인터뷰한 이들은, 적어도 8인치 생산라인의 절반 이상이 파업에 참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회사 쪽은 ‘파업 참가 홍보행사’ 등에 참여한 조합원 숫자가 줄어들고 있음을 들어 참가자가 줄고 있다지만, 현장에 나가지 않고도 파업에 참가하는 이들은 많다고 입을 모았다. ㄹ씨는 “지금처럼 원래 나오던 인력의 4분의1만 출근해도 생산에 차질없이 괜찮은거면 연차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파업기간동안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드는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고, 이 일상을 버려가며 3교대로 일하는 우리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8인치 생산라인 여성노동자들은 특성화(실업계) 고교를 졸업한 뒤 ‘일류기업’ 삼성전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낮과 밤을 바꿔가며 일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을 대하는 회사 태도에 불만이 컸다. ㄹ씨는 “회사 실적이 부진해 성과급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회사를 경영하는 임원들이 받아갔다는 성과급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직원에겐 혁신을 노래하면서 임원들은 성과급 챙겨 퇴직하는 모습에 화가나 파업에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ㄱ씨도 “노조가 얘기하기 전까지는 임원들이 그런 성과급을 받아갔다는 사실조차 몰랐었다”며 “노조가 요구하는 유급휴가 1일 보장과 성과급 기준 개선이 회사가 그렇게 받아주기 어려운 것인가 생각했다”고 했다.

노동자 5명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말은 “사람을 부품취급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15년차 사원 ㅁ씨는 “8인치 생산라인의 악습을 어떻게 하면 변화시키고 대물림 하지 않을 것인지 방법을 찾아보기 위한 과정”이라며 “파업 결정을 하기까지 사측은 무관심으로 무시하는 현실에 '이제 우리가 손놓고 있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의 직업성 백혈병 문제를 세상에 드러낸 고 황유미씨는 이들처럼 기흥사업장에서 일했다. 황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우리 유미는 병에 걸리지도, 죽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여러번 말했다. 전삼노 관계자는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외면한 기업이 세계일류일 수 없다”며 “노동자의 누적된 실망과 분노가 파업 지속 동력임을 회사가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전삼노는 15일 오후 기흥사업장 8인치 생산라인 앞에서 파업 홍보행사를 연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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