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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뉴스분석
난민 면접 조작 사건 이후

2017년 1심, 조작 사실 인정 뒤
녹음·녹화 의무화, 열람권 도입
현장선 석연찮은 영상 삭제 사례
“투명성·전문성·조력권 보장해야”
난민인권네트워크, 참여연대, 대한변호사협회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난민 당사자들이 지난 3월 21일 국회 앞에서 인종차별 조장하는 난민법 개악안 즉각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 발의된 난민법 개정안에 대한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지난 4월 대법원은 2016년 법무부 공무원들의 난민 면접 조작 사건에 대해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했다. 이로써 사건 피해자가 대한민국 정부, 면접 담당 공무원, 통역인 등 3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공무원과 통역인에게는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항소심 판결(2023년 12월)이 그대로 확정됐다. 앞서 2021년 12월, 1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들의 증언의 상당 부분을 인용해 피고들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과 통역인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피고의 ‘위법’ 행위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배상 책임을 물을 정도는 아니라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원고의 진술을 그대로 신빙하기 어렵”고, “통역인이 허위로 통번역을 하거나 허위로 조서 내용을 확인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공무원이 난민 면접을 불충분하고 형식적으로 진행한 위법 행위는 고의 또는 중과실보다는 경과실 행위에 가깝다”는 논리였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난민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한국이주인권센터 등 40여개 시민단체와 공익법인 법률가들은 법원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위법하게 난민 신청자들의 면접조서를 조작하고 (…)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난민 혐오 주장을 서슴지 않은 (…) 가해 공무원에게 면죄부를 주는 법원의 판단을 조금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의 난민심사제도의 투명성과 전문성, 공정성 확보는 더욱더 요원해졌다”는 우려도 담았다.

지난 5월9일 시민단체 연대 모임인 이주와 구금 대응 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외국인보호소 고문사건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 선고일에 맞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2017년 난민 신청을 위해 입국했다가 체류 연장을 놓쳐 외국인보호소에 구금 중 부당한 처우에 항의한 뒤 새우꺾기 등 가혹 행위를 당한 모로코 출신 피해자에 대해 일부 승소 판결했다. 연합뉴스
중요한 진술 빼고 안 한 말 집어넣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6년 7월 이집트인 사브리는 자국의 군부 쿠데타와 무자비한 반정부 시위 탄압을 피해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다. 그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면접 조사관이 자신의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는 걸 확인한 뒤 고압적이고 경멸적인 태도로 ‘제대로 행동하라’, ‘입 다물라’, ‘예/아니요 또는 두세 단어로 짧게 대답하라’고 강요했으며, 자기가 하지도 않은 말을 적었다고 주장했다. 통역을 거쳐 한글로만 작성된 면접조서 중 ‘박해 사항’은 이렇게 기록됐다.

―난민 신청 사유를 말하시오.

“한국에서 장기간 합법적으로 체류하면서 일을 하며 돈을 벌 목적으로…. (난민 신청서에 기재된 신청 사유는 모두 거짓인가요?) 예,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이집트로 돌아가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정부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되거나 수배된 상태인가요?

“아니요.”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있나요?

“예. (가족들은 모두 잘 지내나요?) 예, 잘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장한 것 외에 다른 난민 신청 사유가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난민 신청자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면접 조사관에게 한 답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비상식적이고 작위적이다. 난민 불승인 결정을 받은 일부 신청자들이 변호사들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면접 조사관이 악의적인 유도 신문을 하고, 신청자가 하지도 않은 말을 끼워넣고, 난민 인정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진술은 누락하는 등 면접조서를 멋대로 조작한 정황이 드러났다. 2013년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해 시행한 이후의 일이었다. 여기에는 법무부가 2014년 11월부터 난민 신청자 심사를 ‘신속·집중·일반·정밀’ 네가지 경우로 분류하고, 신속 심사 대상자는 간략한 면접, 사실조사 생략, 7일 이내 처리 등으로 담당 공무원의 처리 실적을 강요하는 졸속 지침을 시행한 것이 큰 몫을 했다. 특히 아랍권 난민 신청자는 거의 대부분 신속 심사로 ‘처리’됐다.

“결정적 증언 부분 통째로 삭제”

사건의 파문은 컸다. 2017년 10월 서울행정법원은 난민 면접 심사의 절차적 하자를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두달 뒤, 법무부는 아랍권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불인정’ 55건을 전격 취소하고 재심사를 했다. 2019년에는 가해 공무원을 징계했고, 2020년 2월에는 아랍어로 난민 면접을 했던 2천여명의 신청자 전원을 재심사하기로 했다. 그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면접 심사 과정의 녹음·녹화 의무화 및 자료 열람과 복사 허용 △면접조서에 전담 공무원, 통역인, 난민심사관 이름 삭제 중지 △난민심사 인력과 통역인의 전문성·공정성 강화 △전담 공무원에 대한 실질적 관리감독 방안 마련 등의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법무부는 난민 통역인 위촉 과정과 교육 재정비, 담당자 교육 확대 및 신규 채용, 모든 난민 면접 심사의 영상·음성 녹화 등 일부 개선 움직임도 보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지난달 13일 시민단체 난민인권센터는 ‘난민행정권력에 맞서기’라는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2016년 난민 면접 조작 사건을 재조명했다. 난민 신청자가 대한민국에 처음 발이 닿은 순간부터 면접(인터뷰), 심사 대기 기간과 심사 뒤 처우 등 난민 지위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전 과정에서 ‘행정권력’의 위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 부실하거나 형식적인 관련 법령의 문제점과 과제를 조목조목 짚어보는 자리였다.

난민인권센터가 올해 정보공개 청구로 받은 법무부 자료를 보면, 난민 신청자가 영상 녹화 파일을 열람한 건수는 2021~2023년 6건에 그쳤다. 통역인·조력자를 선임하고 출입국 관리 당국이 지정한 날짜에 지정된 장소에서만 열람이 허용돼 접근성과 실효성이 현저히 제약되기 때문이다. 녹화 파일 사본은 제공하지 않는다. 난민 지원 시민모임 마중의 심아정 활동가는 “신청자들의 녹화 필름을 봤는데, 결정적 증언이 담긴 부분이 통째로 삭제됐거나 영상만 나오고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당국은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며 의도적 삭제 가능성을 의심했다. 또 난민법은 난민 면접과 사실조사를 전담하는 난민심사관을 “출입국 관리 업무에 종사하는 5급 이상 공무원”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자격을 충족한 난민심사관은 전국에 단 4명뿐이었다. 난민심사관의 업무를 보조하거나 대행하는 전담 공무원의 상당수는 전문성이 부족한데다, 직권을 남용해도 현실적으로 관리·감독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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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숨통 조이는 국가폭력”

지난 6월13일 난민인권센터가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회의실에서 ‘난민행정권력에 맞서기’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조일준 기자
엉터리 면접 심사는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2011년 아랍·이슬람권을 휩쓴 민주화운동 시위인 ‘아랍의 봄’과 거대한 반동의 후폭풍은 유럽 전역에 엄청난 난민 위기를 낳았다. 그 여파는 한국에도 밀려왔다. 2018년 예멘 난민 480여명이 제주도에 들어온 사태가 단적인 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특히 아랍·이슬람권 난민에 대해선 종교적·인종적 편견이 컸다. 돈벌이를 하러 온 ‘가짜 난민’이라거나 범죄를 저지를 것이란 의심과 비난이 근거 없이 퍼졌다.

예멘 출신의 알렉스(가명·38)도 그런 피해자 중 한명이다. 알렉스는 2007년부터 4년간 이슬람권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한 명문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엘리트 청년이었다. 그가 유학 시절 홈스테이를 하던 가족은 중국계 말레이인이자 기독교도였다. 알렉스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태어나서 이교도를 본 건 처음이었다. 처음엔 두려웠는데 지내고 보니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알카에다·탈레반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회의가 들면서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조국으로 돌아간 2011년, 예멘을 비롯한 아랍 세계는 정치적 격랑과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었고 그 틈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파고들었다.

2012년 알렉스는 주위 사람들이 이슬람 극단주의를 두둔하는 것에 격분해 기독교로 개종할 뜻을 내비쳤다가 가문과 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살해당할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무프티(종교 문제에 결정권을 가진 이슬람 법학자)에게 끌려간 그는 ‘사형’ 판결을 받고 손발이 묶인 채 갇혔다. 그날 밤 알렉스는 우여곡절 끝에 말레이시아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예멘과 범죄 용의자 강제송환 협정을 맺고 있었다. 안전한 새 피난처를 찾아야 했다. 가까운 나라 중 안전하면서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그가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그의 면접 조사는 5년이나 지난 2017년에야 이뤄졌다. 그것도 단 30분에 그쳤고, 종교적 박해 우려를 증명할 사형 판결문을 제출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고 한다.

알렉스는 행정소송을 냈지만 2019년에 패소했다. 그런데 소송 기간 중 법무부의 난민 면접 조작 사건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알렉스는 2021년에 난민 인정에는 못 미치는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도적 체류 비자(G-1)는 허가를 받은 경우에 한해 단순노무직 취업만 가능하고 매년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 또 가족결합이나 혼인도 할 수 없다. 당장 추방만 면했을 뿐, 시민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라 불안한 이방인일 뿐이다. 알렉스가 다시 난민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행정소송은 3년째 진행 중이다.

소수자 난민 인권네트워크의 이진화 활동가는 “내가 지켜본 난민행정은 난민을 받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일이자, 난민의 시간을 틀어쥐고 숨통을 조이고 미래를 끊어내는 국가폭력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난민인권센터의 김연주 변호사는 “난민 면접은 밀폐된 공간에서 담당 공무원이 사실상 전권을 갖고 심사하는 만큼 관리·감독과 책임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난민 전문 통역인 인증제, 변호사 조력권의 실질적 보장, 심사 결과의 통번역 제공 등을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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