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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구정은의 현실 지구
우간다 ‘보호구역 난민’

야생 고릴라 위해 국립공원 지정
숲에서 쫓겨난 토착민 바트와족
밀림 밖 사람들과 충돌 ‘비극’ 뒤
모두가 행복한 공생의 꿈 키워
우간다 브윈디 국립공원의 마운틴고릴라 중 ‘쿠투 패밀리’의 우두머리 수컷(실버백)의 지위를 승계한 쿠투. ⓒ구정은

동아프리카의 내륙국가 우간다. 남쪽의 르완다 국경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브윈디 국립공원에 산고릴라(마운틴고릴라)가 산다. 지난 2일 그들을 보기 위해 빼곡한 밀림을 힘겹게 헤치고 다니다가 마침내 ‘쿠투’ 패밀리를 만났다. 어미 등에 매달려 가는 새끼 고릴라를 야생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그들을 만나는 과정에는 엄격한 규칙이 따라붙는다. 코로나19가 여기서는 여전히 위협이기에, 마스크를 쓰는 것은 기본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릴라를 위해서다. 고릴라에게 행여 인간이 병을 옮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트레킹 관광객은 한 팀에 8명을 넘길 수 없다. 거기에 낫을 든 레인저 가이드, 만일에 대비해 장총을 든 레인저,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추적꾼 4명, 그리고 함께 간 외국인 부부 두 쌍이 고용한 포터 4명이 함께하는 여정이다. 몇 시간 안 되는 트레킹에 무슨 짐꾼이냐 싶지만 주민들 돈벌이를 위해 레인저들이 권고하는 것이다. 레인저마다 잘 알고 지내는 고릴라 가족이 있다. 위장복을 입은 여성 레인저 고레스의 친구는 쿠투 가족으로, 13마리로 구성돼 있다. 부계 사회인 고릴라 가족 가운데 우두머리를 실버백이라 부른다. 다 자란 수컷들은 등 쪽에 은빛 털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가족에게는 실버백이 없다. 쿠투의 실버백은 얼마 전 떠돌이 고릴라 두 마리의 공격을 받았다. 간신히 무리를 지켰지만 실버백은 죽고 말았다. 수컷은 열다섯살쯤 되면 은빛 털이 나오는데, 뒤를 이은 현재의 우두머리는 열네살, 등 쪽이 이제 은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가 위풍당당한 실버백이 될 때까지 쿠투 가족은 당분간 브윈디의 숲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숲사람들이 갑자기 마을로 왔다”

우간다 브윈디 국립공원 내 바트와 마을 사람들의 모습. ⓒ구정은

마운틴고릴라는 세계에 1천마리 남짓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이다.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 일대에 걸쳐진 비룽가,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이 만나는 지역에 있는 음가힝가, 그리고 우간다의 브윈디. 세 나라가 만나는 지역의 열대우림 세 곳이 그들의 터전이다. 그중에서도 브윈디에 세계 야생 고릴라의 절반이 산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브윈디 임페니트러블 포리스트 국립공원’이다. 해발 1100m에서 2600m에 이르는 331㎢의 거대한 보호구역은 활엽수와 대나무와 고사리들로 덮여 있다. 영국 작가 조지프 콘래드는 콩고의 밀림 지대를 묘사한 우울한 소설에 ‘어둠의 핵심’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브윈디는 현지어로 ‘어둠의 장소’라는 뜻이다. 어둠으로 가득 찬, 침투할 수 없는 숲(impenetrable forest). 하지만 ‘어둠의 숲’에서 살아온 것은 고릴라만이 아니었다. 사람들도 있었다. 바트와, 츠와, 혹은 트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세계에 ‘피그미’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중부 아프리카의 수렵채집인들이 그들이다.

“생존자들(survivors)은 지금은 잘 어울려 살고 있어요.”

브윈디 국립공원의 남쪽 섹터인 루샤가의 한 마을에서 만난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말했다. 이름이 성탄절인 이유는 성탄절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지적이고 열정적인 커뮤니티 활동가인 그가 ‘생존자들’이란 말을 했을 때 깜짝 놀랐다. 이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크리스마스는 바키가 부족 출신이다. 마을은 가난하지만 정갈했다. 산 위쪽에 고급 리조트들이 있고 산중턱 마을에서는 여성들이 전통 바구니 등 공예품을 만들어 흙바닥에 늘어놓고 판다. 더 내려가면 바트와들의 집이 나온다.

“숲사람들이 갑자기 숲에서 쫓겨나 마을에 왔으니, 규칙도 모르고, 주민들 가축을 죽이기도 하고… 병에도 걸리고, 많이 죽임을 당했죠.” “누가 죽였다는 거예요?” “우리 부족과 그들이 서로 죽였던 거죠.” 크리스마스는 담담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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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채집하다 돈 주고 사야 했던

브윈디 국립공원의 남쪽 섹터인 루샤가 마을 출신의 크리스마스는 열정적 커뮤니티 활동가로 일한다. ⓒ구정은

그것이 1991년의 일이다. 그해 브윈디가 마운틴고릴라를 보호하기 위한 국립공원이 됐다. 동시에 ‘숲사람들’은 쫓겨났다. 국제사회는 우간다의 바트와처럼 보호구역이 설정되면서 숲 밖으로 밀려난 토착민들을 ‘보호구역 난민’(conservation refugee)이라고 부른다. 난민이 된 바트와는 22개 정착촌으로 주거가 나누어졌다. 그중 한 곳이 루샤가의 이 마을이다.

피그미는 키가 작은 부족의 대명사처럼 돼 있다. 실제로 바트와들은 키가 작다. 숲에 살던 시절에 쓰던 것과 같은 움막 모형을 짓고, 춤 공연을 하고, 나뭇가지로 불 피우는 법을 시연해 보이며 ‘생존자들’은 돈을 번다. 영국의 인류학자 콜린 턴불은 1961년 발간한 피그미 탐사보고서 ‘숲 사람들’에서 그들의 노래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아름다운지를 설명했다. 루샤가의 바트와족도 숲의 역사를 담은 노래를 춤추며 부르지만, 그들에게 숲은 이제 노래로만 남았다. “처음 숲에서 나왔을 때 이들에겐 아무것도 없었어요. 먹을 것조차도. 이 사람들은 숲에서 먹을 것을 공짜로 얻어왔다는 점을 잊으면 안 돼요. 그런데 갑자기 돈을 주고 사야만 했던 거예요.”

우간다 브윈디 국립공원 내 토착민 바트와족을 지원하는 ‘바트와 피그미 사무소’ 앞 입간판. ⓒ구정은

그 혼란은 얼마나 가혹했을까. 그들을 위해 정부와 지역공동체는 ‘바트와 피그미 사무소’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길가의 사무소 알림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바트와 토착민 역량강화기구 ― 헬스케어, 영적 지도, 농업, 교육, 문화 전통 보전, 수공예와 여성 프로그램, 토지 취득과 주택 건설을 지원합니다.” 그러나 관광객용 로지(lodge, 임시 숙소)들과 정겨운 시골 마을, 그리고 바트와의 집들은 층층이 대비됐다. 바트와 지역은 아직도 행정이나 사회 규칙이나 현대적인 생활방식이 자리잡지 못한 듯 지저분하고 여기저기 쓰레기와 넝마, 움집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물론 숲에서 살던 시절의 고난과 힘겨움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일 수 있다. 아프리카를 다니다 보면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토착민의 전통적 삶의 방식은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가난하고 힘겹고 고단하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 아픈 이들에게는. 다만 그들을 ‘현대화’시키는 방식이 좀 덜 고통스럽고 덜 폭력적이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마을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었다. 지역 댄스 대회에 나갈 준비를 한단다. 이 학교에서 바트와 아이들도 함께 공부한다. ‘바트와 아동교육기금’이라 쓰인 티셔츠를 입은 크리스마스는 바트와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을 위해 일한다. “어떤 사람들은 왜 저들을 위해 나서느냐고 저를 비난해요.” 그는 개의치 않는다. 동네 유기농 커피 협동조합 일에서부터 바트와 아이들의 교육을 돕는 일까지, 할 일이 너무 많다.

그에게는 한 가지 희망이 있다. 내년 총선에 바트와 출신 후보가 나오는데, 당선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루샤가의 바트와 정착촌에서 자라고 공부한 토착민 의원이 탄생하는 것에 크리스마스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쿠투 가족이 얼른 새 실버백과 함께 고릴라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그리고 바트와에게는 더 나은 삶의 기회들이 찾아오기를.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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