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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돌풍

2004년부터 2019년까지 배경
‘가치보다 진영’ 86세대 그리고
‘태극기부대 수장’ 대선 후보 등장
한국 정치 자체가 역동적 콘텐츠
넷플릭스 제공

‘돌풍’은 대한민국 정치의 배를 가르는 해체 쇼이다. 박경수 작가는 휘몰아치는 전개와 팽팽한 인물의 대립으로, 12부 만에 엄청난 대하드라마를 쏟아냈다. 어쩌면 ‘돌풍’은 ‘미래에서 온 사극’처럼 보인다. 300년쯤 지난 후에, 21세기 초를 그린 사극을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을까. 본디 사극은 그 시대의 사건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몇 개의 중요한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재배치해서 그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와 정신을 느끼게끔 해준다. ‘돌풍’이 그리고 있는 시공간은 평행우주 속 2022년 대한민국이지만, 그 속에는 현실의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들어 있다. 대략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부터 2019년 조국 사태까지의 약 15년이 압축적으로 들어 있다. 드라마의 인물이나 사건을 현실 세계에 하나하나 대입해서 맞고 틀렸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현실을 재료로 가공해 구축한 세계이며, 모든 사극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관통하고 있는 이 시대를 조명함으로써 이 시대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훨씬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돌풍’은 이 시대에 대해 매우 유효적절한 메시지를 던진다.

냉소적 회의에 그치지 않고

정치 진영에 따라 ‘돌풍’의 감상과 평가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지난 수십년간 생명을 바쳐 민주화를 이루어낸 운동권들을 모욕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민주화운동을 무시하게 하는 불순한 의도와 신종 뉴라이트 사상이 있는 것 같다”(장영승) 같은 감상이 대표적이다. 드라마가 586 정치인을 정면 타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 진영의 대통령 후보 조상천(장광)은 태극기 부대의 수장이자 북한과 자가당착적 관계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드라마에서 우파 진영은 극우에 잠식당했고, ‘뉴’라이트는 존재하지도 않는 사실은 간과한 편협한 반응이다.

드라마는 인권변호사 출신이자 ‘서민의 벗’이었던 장일준(김홍파) 대통령이 임기 4년 차를 맞은 시점을 배경으로,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가 대통령을 시해하고 정적인 정수진(김희애)과 맞서는 서사를 통해 한국 정치의 현재를 보여준다.

정수진은 ‘전대협 문화선전국장’ 출신의 경제부총리이다. 남편은 전대협 의장 출신 한민호로, 정계 진출에 실패한 뒤 사모펀드를 운영한다. 그의 사모펀드에 대진그룹의 검은돈이 흘러들고, 그 돈이 장일준 아들의 비리로 연결된다. 장일준 대통령이 죽자 정수진은 추모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추모와 수사는 별개”라는 검찰 발표에 검찰개혁을 부르짖는다. 개인 비리 수사를 진영에 대한 공격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일준을 쓰러뜨린 것은 박동호이지만, 마지막 숨통을 끊은 것은 정수진이다. 필요하면 정치적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이고, 그 시체를 자신의 방패로 삼는다.

젊었을 때 투사였던 한민호가 왜 검은돈의 고리가 되어 정수진까지 옭아매었을까. 드라마는 징그러울 정도로 인물을 잘 묘사한다. “나 전대협 의장 한민호야. 쇠파이프 들고 다니던 애들까지 전부 구청장 한자리씩 하는데…”라는 대사는 그의 일그러진 자의식을 보여준다. 한민호의 사모펀드는 지난 총선 때 뿌려진 불법 정치자금의 저수지이기도 했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 그는 죽는다. “마지막은 전대협 의장, 한민호로 사라지고 싶다”는 그의 말은 진영의 사수를 가치의 수호보다 우위에 두는 586 정치세력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준다.

박동호는 검찰 출신으로 586 정치세력의 타락을 알아버린 존재이다. 그는 대진그룹을 수사하다 정계로 진출했으며, 대진그룹의 비리를 파헤치다 최근 의문사한 서기태 의원의 친구이다. 그는 정수진에게 “왜 민주화운동을 했나, 그들도 산업화에 공이 있는데. 왜 독재와 싸웠지? 그들도 국민을 가난에서 해방시켜 주었는데?”라는 말로 586 세력의 오만과 독선을 꼬집는다. 박동호는 당내 세력이 없었고, 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했기에, 대통령이 되기 위해 온갖 정치적 술수를 동원한다. 반대당 세력이나 재벌과도 손을 잡는다. 후반부의 박동호는 장일준과 흡사하게 ‘처음 뜻은 좋았으나 곧 부패한 정치인’의 모양새가 되어간다. 특히 탄핵 재판 직전 대진그룹에 “청와대 권력의 반을 주겠다”며 흥정하는 모습은 참여정부의 후반기를 떠올리게 해 괴롭다. 하지만 드라마는 냉소적 회의주의에 그치지 않고, 극적인 초월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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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앞세워 유산 나눠 갖는 정치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가 거룩하게 복원해내는 것은 노무현의 죽음의 이미지이다. 박동호는 정수진과 함께 청와대 뒷산에 올라 투신한다. 부패한 정치인이 된 자신과 정수진을 동시에 몰락시키기 위한 자멸적 선택이었다. 박동호가 원한 것은 자신과 정수진의 죄가 모두 까발려지고, 정경유착과 사법 농단이 다 밝혀진 ‘그라운드 제로’ 상태의 대한민국이었다. 드라마는 ‘골고다’, ‘닭이 울기 전 부인’ 등 성경의 문구를 인용한다. 박동호의 추락사 이미지에는 필연적으로 노무현의 죽음의 이미지가 따라붙으며 숭고함이 상호침투한다. 그 결과 실제 노무현의 죽음이 어떤 맥락에서 일어났고,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었는지와는 무관하게, 노무현의 죽음이 박동호의 죽음과 유사한 의미로 재전유된다. 이를 통해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해진다. 노무현의 죽음이 정수진이 일삼던 ‘추모를 앞세워 유산을 나눠 갖는 정치’로 소비되어선 안 된다고, ‘진영을 지키고 민주화를 외쳤던 젊은 날을 팔아먹는 정치’의 휘장이 되어선 안 된다고. 오히려 자기 몸을 던져 악을 드러나게 하고, 대한민국을 청소하고자 했던 박동호식 좌충우돌의 개혁 정신을 노무현의 죽음에서 되새겨야 한다고.

‘돌풍’은 용감하고 뛰어난 정치드라마임에도 국내 관객들에게 온전히 환대받기 힘들다. 누구도 현실 정치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에 불편감을 느낀다. 주로 현실과의 비교 속에서 옳으니 그르니 말을 끼얹기 쉽다. 어쩌면 외국 자본인 넷플릭스이기에 가능한 기획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상기할 점이 있다. 정수진의 마지막 죄상이 까발려지는 장면이 실시간 생중계인 것은 메타적 상징성을 지닌다. 우리는 ‘돌풍’을 보는 주체인 동시에, ‘돌풍’에서 보이는 대상이다. 관객은 전 세계에 있다. 우리가 늘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한국 정치가 실은 굉장한 콘텐츠이며, 나도 그 일부이다. 그것을 견딘다면 한국 정치드라마는 세계적인 콘텐츠가 될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정치극에 고문 장면과 북한과의 내통과 탄핵 재판과 50만명이 청와대를 에워싸고 진격한다는 이야기가 동시에 등장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헌정사의 역동성은 진정 귀하고 드물다. 또 하나의 탄핵 열차가 출발하려는 지금, 케이(K)-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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