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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엇박자 정책, 실수요자 ‘내 집 마련’ 불안 심리 자극”
“은행 주담대 금리 상향 조정, 당국 전세대출도 규제 예고”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5000여건에 달하는 등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서울 시내의 아파트단지 모습/ 연합뉴스


[주간경향] 가계대출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빚을 내 부동산에 투자하는 ‘빚투 열풍’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주택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가계 빚 급증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자 금융당국은 7월 15일부터 은행권 대출 실태를 살피는 현장 점검에 들어간다. 정책성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늘리고 대출 규제를 돌연 늦췄던 정부가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은행들은 연 2%로 내렸던 주담대 금리를 연 3%대로 올리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동산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응해 추가 공급방안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일관성 없는 금융 정책이 시장 불안을 키우고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담대가 큰 폭으로 늘면서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시 가팔라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은행권의 주담대는 27조원가량 늘었다. 3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이다. 정책금융인 디딤돌(구입)·버팀목(전세) 대출과 주택 거래량이 늘고, 금리가 낮아진 영향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10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올해 6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115조5000억원으로 전달보다 6조원 늘었다. 상승세는 주담대가 견인했다. 6월 주담대 증가 폭(전달 대비 6조3000억원)은 작년 8월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컸다. 올해 상반기 누적 증가 규모(26조5000억원)도 2021년 상반기 후 3년 내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국내 가계대출은 2020∼2021년 코로나19 사태 초기 0%대 초저금리 상태에서 급증했다가, 2021년 8월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방향을 틀면서 증가세가 다소 진정됐다. 하지만 기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최근 가계대출 증가 폭이 3년 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한은은 “주택 거래 증가와 대출금리 하락, 정책 대출 공급 지속 등으로 증가 폭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 자료 등을 보면 지난 4월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3만7000가구, 5월 3만9000가구로 3만가구 수준이던 연초와 비교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거래량이 급증하며, 서울 아파트값도 16주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 “서울 아파트 거래량 2021년 수준으로 회귀”

금융당국 엄포에 은행들은 전세자금 대출과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상향 조정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7월 11일부터 대면·비대면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최대 0.2%포인트(p) 올렸다. 우리은행은 같은 달 12일부터 주택담보대출 5년 주기형 금리와 전세자금대출 2년 고정금리를 0.1%p씩 상향 조정했다. 신한은행도 오는 7월 15일부터 금융채 5년물 금리를 기준으로 삼는 모든 대출 상품의 금리를 0.05%p 인상한다. 하나은행은 지난 1일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2%p 높였다.

은행이 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우려하며 은행에 관리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올 초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1.5~2.0%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당국에 보고했지만, 지난달 가계대출 잔액은 작년 말보다 2.3% 늘었다. 5대 은행 가계대출은 지난 6월 한 달 새 5조3000억원 증가했는데 이는 2년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은행권은 가계대출 증가 배경으로 부동산 경기 회복,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실행 연기, 정책자금 대출 증가, 금리 인하 등을 꼽는다. 이에 따라 은행권의 주담대 금리 인상만으로는 가계대출 급증세를 잡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담대는 정부가 저금리에 제공하는 정책금융 상품 위주로 늘고 있다. 지난 5월 국내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전월 대비 5조7000억원 늘었는데, 정책대출인 디딤돌·버팀목대출(3조8000억원)이 전체 증가분의 67%를 차지했다. 또 최근에는 기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담대 고정금리 산정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도 하락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이 살아나고 있는 것도 변수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6000건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집값 광풍이 불었던 2021년 수준으로 복귀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도권에선 주택 공급부족과 글로벌 금리 인하 추세 속 집값이 회복되는 것을 보며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하는 실수요자가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실수요자에게는 0.1~0.2%의 금리인상에 대한 부담보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 흐름을 타려는 심리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며 “규제에 대해 일관된 사인을 보내지 않는 정책도 내 집 마련에 대한 불안 심리를 더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도 “한쪽은 기준 금리를 내리라고 요구하는데, 다른 쪽에선 시장 금리를 올리라고 하는 등 정부 내 부처끼리도 엇박자를 내며 정책이 산으로 가고 있는 형국”이라며 “앞선 정부처럼 현 정부도 공급물량에 대한 중장기적 정책 없이 단편적으로 대응을 하다 보니 시장 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실제로 가계 부채에 고삐가 풀린 것은 가계 빚 안정화와 부동산 경기 활성화 사이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였던 정부의 영향이 적지 않다. 정부는 가계 빚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부동산시장 연착륙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정책자금 대출을 공급해왔다. 특례보금자리대출(40조원), 신생아특례대출(27조원) 등을 풀며 소득 기준을 완화하고, 은행에 상품 판매를 독려했다.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 중 정책금융 대출 비중이 50%를 넘어선 이유다. 또 당국은 작년 5월부터 대환대출 인프라를 출시해 대출 금리 인하를 유도해왔다.

최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여당 정치인들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한은의 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은행에도 대출 금리를 내리도록 주문해 5%대였던 주담대 금리가 2% 후반대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주택 매수 심리가 살아났고, 서울을 중심으로 거래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이 와중에 금융위원회는 애초 지난 7월 1일로 예정됐던 2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 적용 시점을 두 달 뒤인 올해 9월 1일로 갑자기 늦췄다. 스트레스 DSR은 변동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차주를 대상으로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부과하는 것으로 대출한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금융위는 자영업자 대출이 축소될 수 있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연기 이유로 댔는데, 시장에선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2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와 불안한 부동산시장은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된 지 오래다. 국제사회에서도 국내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잠재 위험요인으로 거론된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경제기구는 성장률 하락과 자산 불평등 심화 등을 이유로 가계부채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여러 번 경고했다. BIS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15년 10위였는데 현재는 4위로 올라섰다. 가계 소득 대비 빚 부담 정도도 주요국 중 4번째로 높아, 부채의 질도 나쁘다.



■ “한은 금리 인하 예고했지만, 가계 빚 불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7월 11일 기준금리를 12회 연속 연 3.5% 수준으로 동결했다. 금통위에선 통화 긴축이 시작된 지 거의 3년 만에 금리 인하에 대한 첫 언급이 나오긴 했지만, 집값과 가계대출이 급등하거나 급증할 경우 금리를 낮추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금리 인하에 대해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 방향을 전환할 상황은 조성됐다”며 “외환시장과 수도권 부동산, 가계부채 등 위협 요인이 많아 언제 전환할지는 불확실하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통위원들은 물가와 금융안정을 고려할 때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고, 기대가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로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며 “한은이 주택 가격을 조절할 수는 없어도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줘 집값 상승을 촉발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직후 0%대 초저금리 환경 속에서 불었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대출로 투자)’와 같은 대출 광풍과 집값 폭등이 재연되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가계대출과 집값이 불안할 경우 금리 인하 시점을 계속 늦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채 부담에 금융당국은 관계부처와 협의해 서민대출로 불리는 전세대출에도 DSR을 적용할 예정이다. 시장 안팎에서는 전세대출이 대출 규제를 적용받지 않아 차주가 과도하게 대출을 일으키는 유인이 돼 전셋값 상승과 갭투자 증가, 집값 상승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다만 금융위는 실수요자와 서민들의 피해 최소화, 주거 안정성을 위해 시행을 하더라도 충격이 적은 곳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정책의 우선순위가 가계부채 위험 관리에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며 “신생아 특례대출 등을 제외한 모든 대출에 DSR을 적용하는 등 집값 상승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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