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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엄마 아닌 여자들’ 저자
페기 오도널 헤핑턴 시카고대 역사학과 교수
“과거에도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은 존재”
“예전에는 공동체가 부모 역할 공동으로 맡아”
“핵가족되면서 육아 혼자해야 하는 부담 늘어”
“출산해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드는 시스템 갖춰야”


한국 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예산은 279조9000억 원.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당장 올해 3월 출생아 수는 1만966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 감소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물론 현 정부는 각종 재정 지원책은 물론 출산을 꺼리게 하는 경제·사회 구조를 바꾸는 처방을 내놓으며 ‘아이를 낳아라’고 외친다. 하지만 이 방법이 최선일까. 저출산 관련 책을 쓴 저자로부터 저출산의 원인과 해결법, 저출산에 직면한 한국이 나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이 ‘인구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지 정확하게 한 달이 지난 6월 19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범정부 차원의 저출생 대책을 내놓았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다며 육아휴직 급여를 월 최대 250만 원으로 올리고, 육아휴직에 나선 동료를 대신해 업무가 늘어난 경우 월 20만 원씩 주기로 했다. 연 1회에 걸쳐 2주 단위로 쓸 수 있는 단기 육아휴직도 도입했고, 아빠의 출산 휴가 기간을 20일로 확대했다. 이외에도 결혼 특별세액공제를 신설하고 출산 가구에 공급할 주택을 연 12만 호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출산할 경우 전세자금 대출소득 요건도 낮췄다.

하지만 여기서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여성이 ‘주(主) 양육자’라는 시선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다. 정부는 저출생의 3대 원인을 일과 가정의 양립, 양육, 주거 문제에 맞추고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여성이 임신·출산에 이어 양육을 하며 보내는 ‘시간’에 대한 고려는 없다. 생물학적인 이유로 임신과 출산을 하며 생기는 공백기는 온전히 여성의 몫이다. 그리고 이번 대책 발표를 봐도 자녀의 양육 과정에서 한국 남성은 철저하게 육아 보조자에 머무른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비상 대책’이 ‘비상 사태’를 해결하기에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다.

책 ‘엄마 아닌 여자들’(부제 ‘역사에 늘 존재했던 자녀 없는 삶’, 영문 제목 Without children: The long history of not being a mother) 저자인 페기 오도널 헤핑턴 시카고대 역사학과 교수가 5일 조선비즈와 줌(Zoom)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 조선비즈

페기 오도널 헤핑턴 시카고대 역사학과 교수는 저서 ‘엄마 아닌 여자들’(부제 ‘역사에 늘 존재했던 자녀 없는 삶’, 영문 제목 Without children: The long history of not being a mother)에서 “역사적으로도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은 존재했다”며 그 이유를 개인의 재정적 이유 외에도 사회의 지원 부족에서 찾는다. 18세기에 등장한 유럽의 결혼 문화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핵가족이 보편화됐고, 이로 인해 양육 부담이 늘자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이 늘었다는 것이다. 다만 페기 교수는 “여성은 과거에도 꾸준히 직업을 가졌다”며 최근 들어 “직장을 갖는 여성이 늘어났기 때문에 출산을 하지 않은 여성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반대로 국가와 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스템을 갖춘 북유럽 국가에서는 출산하겠다는 ‘선택’을 하는 여성이 많다고 꼬집는다.

조선비즈는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는 페기 교수와 지난 5일 줌(zoom)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페기 교수는 “자녀를 갖고 갖지 않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냉혹하지 않은 미래, 한 아이에게 둘 이상의 어른이 개입하는 미래, 모성이 직장과 삶에 짓눌리지 않는 미래, 엄마가 아니라고 해서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느냐”며 “내 몸으로 낳은 아이만 자녀라는 생각을 뛰어넘는 사고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이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다고 느끼게 하는 직업과 가족 문화에 대해 대화를 시작할 때”라고 했다.

─이 책을 쓴 계기는 무엇인가. 책에서 말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서의 경험 때문인가.

“2016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주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밟으면서 1년을 보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대학원생과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아는 사람 중 누구도 아이를 가질 계획을 하고 있지 않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웨스트포인트에서 만난 30대 후반인 내 또래 여성들은 모두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웨스트포인트에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 단지 문화적인 이유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이 아이를 갖거나, 갖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연구했다. 웨스트포인트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들을 보면서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해 생각했고, 그들이 주택 보조금과 양육 보조금을 받는 것은 물론 믿음직한 커뮤니티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역사적으로 아이가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면서, 과거처럼 현재 사람들이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 역시 지역 사회의 지원은 물론 재정적 지원 부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나는 이것이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가 저출산에 직면했다. 책에서 말한 대로 공동체의 붕괴, 핵가족의 탄생 때문인가.

“250년 전 미국에서는 출산을 해본 적이 없는 여성과 엄마가 비슷한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출산하지 않은 여성도 지역 사회에서 모두 자녀 양육에 참여했다. 생물학적 자녀가 없는 사람들도 본인 형제자매의 자녀를 함께 양육했다. 친부모뿐만 아니라 친지, 지역 사회 구성원이 공동체 안에서 자녀 양육에 참여했다. 하지만 18세기에 인구통계학자들이 규정한 ‘유럽 결혼 패턴’이 출현했고 19세기에 미국으로 확산하면서 핵가족이 유일한 가족 형태로 받아들여졌다. 공교롭게도 19세기에 미국 출산율이 떨어졌다. 핵가족은 지역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아이를 키우는 모든 일을 생물학적 엄마만 해야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아이를 직접 키워야 하면서 육아의 부담이 커졌다.”

─결국 육아 부담이 생물학적 엄마에게 집중되면서 육아가 힘들어졌고, 이로 인해 출산을 선택하지 않게 됐다는 건가.

“육아가 힘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정부가 부모를 어떻게 지원할지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육아가 훨씬 더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유급 출산 휴가가 보장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미국 근로자는 출산 휴가가 없다. 또한 전 세계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육아를 더 많이 하고, 남성보다 집안일도 더 많이 하며, 맞벌이 가정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에 대한 정신적 부담을 더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러니한 것은 역사상으로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여성과 엄마는 대부분 일했고,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기여했다. 따라서 엄마가 일을 하면서 가족 경제에 기여하려고 하는 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현대인이 일하는 방식이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바를 변화시켰다. 그래서 현재의 여성은 일과 육아, 모두를 해낼 수 없다고 여기고 일과 육아 중 할 수 있는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여긴다.”

(인천 미추홀구 아인병원에 마련된 신생아실에서 신생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뉴스1

─당신의 할머니는 대학원에서 해부학과 생리학을 전공했고 사회학 박사 과정을 밟은 남편을 만나 교수라는 커리어와 네 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웠다. 하지만 당신의 어머니는 대학 졸업 후 커리어와 아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왜 한 세대 만에 이런 변화가 생긴 건가.

“세계 어디에서나 가장 부유한 여성을 제외한 모든 여성이 자녀를 갖는 동시에 일을 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인해 19세기 미국과 유럽에서 집과 일을 분리된 장소에서 행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문제는 여성은 ‘집에 속한다’는 생각이, 남성은 ‘일하러 집을 나간다’는 생각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여성은 ‘집을 책임진다’는 기대감에 두 가지 직업을 가진 셈이 됐다. 결국 엄마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 몇 배로 늘었다.”

─그런데 여성이 자녀를 양육하며 가정에 머물기를 기대하는 유럽 국가(에스파냐, 포르투갈, 이탈리아)의 출산율(1.3~1.4명)보다 프랑스나 스칸디나비아처럼 여성이 일을 하러 나가는 나라의 출산율(1.8명)이 더 높다. 일반적인 생각과 반대인데 이유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에서는 여성의 노동률도 높고 출산율도 높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들 나라에서는 일하면서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위한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관대한 출산휴가 정책은 물론 산전 산후 지원, 무료 보육 지원, 영유아 엄마의 단축 근무 등을 실시한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유급 휴가도 제공한다. 반면 집 밖에서 일하는 여성의 수가 적은 국가에서는 이런 지원이 없다. 즉, 여성이 출산과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리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여성이 더 자유롭게 출산을 결정할 수 있고,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낙태를 합법화했던 로 대 웨이드 재판이 2022년 미국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임신 중지를 불법으로 만들어 출산을 장려하려는 걸까.

“로 대 웨이드 재판이 뒤집히면서 낙태권이 사라졌다. 다만, 모든 곳에서 낙태가 불법은 아니고 주(州)정부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 이에 미국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주정부가 낙태를 불법화했다. 로 대 웨이드 재판이 뒤집힌 것을 지지하는 사람 중 누구도 이번 시도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미국에서 낙태를 불법화하고 피임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낮은 출산율이 발생한 시점에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19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낙태는 완전히 합법이었다. 하지만 19세기에 미국의 출생률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고, 1873년에 모든 주에서 낙태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연방 범죄로 삼았다.”

책 ‘엄마 아닌 여자들’(부제 ‘역사에 늘 존재했던 자녀 없는 삶’, 영문 제목 Without children: The long history of not being a mother) 저자인 페기 오도널 헤핑턴 시카고대 역사학과 교수. / 페기 오도널 헤핑턴 제공

─개인적으로 낙태권을 옹호하나.

“선택은 개인에게 맡겨야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생식 결정을 통제하려는 노력은 좋게 끝난 적이 없다. 그보다는 출산을 원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에는 놀라운 통계가 있다. 미국 여성은 세 명의 자녀를 갖길 원하지만, 출산율이 1.7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하는 것보다 더 적은 수의 자녀를 낳는 것이다. 이는 정책과 지원이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개인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출산율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저출산을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여성의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크게 여성의 교육과 피임에 대한 접근, 두 가지다. 여성이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출산율은 낮아지며 여성이 생식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출산율은 2.0명 이하로 떨어진다. 그렇다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여성의 교육을 막고 피임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대신 대가족 안에서 여성이 직업과 교육에 대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미래가 지속 가능한 방법이며, 여성이 어떻게 더 많은 아이를 낳게 할 수 있느냐보다 더 나은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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