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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은 반원 모양의 테이블에 칩을 5개 올려놓았다. 맞은편에 앉은 딜러는 남성에게 카드 1장을 던졌다. 딜러는 자신에게 1장, 남성에게 1장을 주고, 다시 자신이 1장을 가졌다. 남성은 카드를 바로 뒤집지 않고 끝부분만 슬며시 잡고 있었다. 1분 가까이 뜸을 들이다가 패를 깠다. 카드의 숫자는 9와 8이었다. ‘바카라’의 규칙에 따라 두 숫자를 더해 1의 자리만 남기면 7이었다.

“세븐!” 뒤에 서 있는 이들이 소리쳤다. 남성 쪽에 판돈을 건 사람들이었다. 돈을 딸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묻어났다. 딜러는 표정 변화 없이 빠르게 카드 2장을 뒤집었다. 3과 4, 더하면 7. 동률이었다. 아쉬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난 3일 마카오 코타이 지구 도시 전경. 밤에는 카지노 단지 불빛과 대로변의 전당포 간판 네온사인이 뒤섞여 화려한 야경을 이룬다. 강은 기자


지난 3일 마카오 코타이 지구 도시 전경. 밤에는 카지노 단지 불빛과 대로변의 전당포 간판 네온사인이 뒤섞여 화려한 야경을 이룬다. 강은 기자


지난 4일 오후 11시(현지시간), 밤이 깊어갔으나 마카오는 잠들지 않았다. 복합 리조트 ‘갤럭시 마카오’ 지하에 자리한 카지노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포커, 바카라, 다이사이 등의 게임을 진행 중인 테이블이 빼곡했다. ‘진지바오시’(金吉扱喜)라고 쓰인 슬롯머신도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모두가 ‘잭폿’이 터지길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마카오에서는 카지노가 합법화돼 있다. 마카오 정부는 세수의 80%를 카지노 산업에서 조달한다. 매출은 2006년 라스베이거스를 넘어섰고, 2013년엔 450억달러(약 62조4000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라스베이거스 수입의 7배에 달하는 액수다.

지난 2일 마카오 성 바울 성당 유적지 전경. 계단에 선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강은 기자


지난 2일 마카오 센트럴 호텔에서 내려다 본 도시 전경. 강은 기자


중국의 특별행정구역인 마카오는 작은 도시다. 면적이 33.3㎢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서울 자치구 하나 정도 크기다. 그런데도 연 관광객은 4000만명으로, 한국 전체의 2배에 이른다. 아담한 도시라 택시로 여행해도 부담이 크지 않다. 어지간한 거리는 100홍콩달러(약 1만7000원) 안으로 해결할 수 있다. 경전철이나 셔틀버스 등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있다.

현지 가이드는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산업이 회복세로 돌아서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마카오관광청 관계자도 “최근 직항 노선이 새로 취항하면서 한국인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이달부터 인천공항(ICN)발 마카오(MFM)행 직항 노선을 운영한다. 이전에는 에어마카오, 진에어, 제주항공, 에어부산만 직항을 운항하고 있었다.

3시간30분의 비행이 끝나고 도시에 발을 디디면 거대한 ‘게임 왕국’에 들어온 듯한 신비감에 사로잡힌다. 연꽃 모양을 형상화한 황금빛 건물의 그랜드 리스보아를 비롯해 대규모 카지노·호텔이 도심에 줄지어 있다. 밤에는 카지노 단지 불빛과 대로변의 전당포 간판 네온사인이 뒤섞여 화려한 야경을 이룬다.

지난 3일 마카오의 가장 오래된 중국식 절 아마사원 내부 모습. 과거 선원들이 항해의 신 ‘아마’를 모셨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강은 기자


지난 3일 마카오의 가장 오래된 중국식 절 아마사원 전경. 과거 선원들이 항해의 신 ‘아마’를 모셨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강은 기자


카지노가 마카오의 전부는 아니다. 도심 곳곳 문화유적에 관광객들 발길이 이어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성 바울 성당 유적지는 마카오 중심지인 세나두 광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17세기 초에 지어진 이 건축물은 1835년 화재가 발생해 건물 전면부와 계단만 남아 있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1837년 신학 공부를 위해 이곳을 찾았으나 성당이 이미 타버린 뒤였고, 그는 성 안토니오 성당으로 가서 공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적지가 올려다보이는 계단은 웅장한 건축물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관광객들로 복잡했다. 성당 전면부는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고 그 아래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조각, 예수상과 성모마리아상, 성도들을 의미하는 청동상 등이 자리한다. 중국과 일본을 각각 상징하는 모란과 국화 문양도 새겨져 있어 동서양의 조화가 담긴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외지인들 행렬은 세나두 광장 방면 골목길로도 이어진다. 이른바 ‘육포 쿠키 거리’라 불리는 이 길에서 상인들은 육포를 수북이 쌓아두고 판다. 상인들은 아몬드 쿠키, 호두 쿠키 등을 진열해둔 채 행인들에게 계속 시식을 권한다. 짧은 한국말로 손님들을 부르는 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다양한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는 아마사원, 부호가 거주했던 로우 카우 맨션 등에도 발길이 모인다.

지난 3일 마카오 콜로안섬 먹자골목 인근 계단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은 기자


마카오 반도에서 대교를 건너 차로 20분 정도 가면 타이파섬에 닿는다. 코타이는 타이파섬과 남쪽 콜로안섬 중간을 매립해 만든 지역이다. 대형 신축 건물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마카오의 신시가지다. 갤럭시, 베네시안, 파리지앵, MGM, 윈팰리스 등 카지노 단지도 대부분 이곳에 있다.

남쪽 콜로안섬은 조용한 어촌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 촬영지인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성당이 이곳에 있다. 고즈넉한 해변을 따라가면 마을이 휘어지는 지점에 ‘로드스토 베이커리’가 나온다. 마카오의 명물, 에그타르트를 파는 곳이다. 맛집치고 그다지 좋은 입지는 아니지만, 현지인과 관광객이 뒤섞여 많을 때는 30명씩 줄을 선다고 한다.

마카오 에그타르트는 영국인 약사 앤드루 스토가 1989년 콜로안에 빵집을 연 게 시작이었다. 진한 커스터드와 바삭한 페이스트리 맛이 인기를 끌면서 마카오 상징이 됐다. 스토는 2006년 마카오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원래 부부가 함께 가게를 운영했는데, 사업 도중 이혼하면서 아내가 다른 가게를 따로 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일 마카오 콜로안섬의 ‘로드스토 베이커리’에서 직원이 에그타르트를 만들고 있다. 강은 기자


마카오는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았다. 포르투갈은 1887년부터 1999년까지 마카오를 식민 통치했다. 음식, 종교, 산업 등 마카오 문화 전반에 포르투갈의 흔적이 있다. 바칼라우 크로켓, 해물밥 등 매캐니즈(중국과 포르투갈 혼혈) 음식과 포르투갈 와인(포트와인)을 파는 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세나두 광장 등 거리 곳곳에 있는 물결 모양 바닥 타일도 포르투갈식이다.

마카오의 공용어는 중국어, 광둥어, 포르투갈어이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중국어 또는 광둥어만 쓴다. 포르투갈어는 공공기관에서 공문서를 작성할 때 사용하거나, 길거리 표지판에 복수 표기돼 있는 정도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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