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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겸 사업가 타일러 라쉬의 가방 속에는 그가 만든 한글과자 샘플과 비지니스 미팅 차 만난 다른 이의 명함이 두둑이 들어있었다. 그는 한국을 “새 오션을 만들 수 있는 나라”라고 말한다. 서성일 선임기자


미국인 타일러 라쉬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 있는 대표 ‘대한외국인’이다. 때로는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꿰뚫어 보며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그가 야심 차게 또 다른 ‘일침’을 꺼내고 있었다. 네이버 자회사인 스노우(SNOW) 인도 지사장 출신 니디 아그르왈과 함께 ‘한글 과자’를 만든 것. 한국인에게 알파벳 과자보다 낯선 자음·모음 과자라니…. 그의 일침은 이번엔 제법 따갑게 다가온다.

‘해야 한다’ → ‘해봐야 한다’…삶의 문법 바꾸자

타일러는 한국에서 방송인뿐만 아니라 영어공부앱 강사, 매니지먼트사 대표, 수출입 대행, 사업가, 작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고령화·저출생 사회, 내수시장은 레드오션이라고 외치는 시대에도 타일러는 한국을 ‘새 오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가 한국에서 n잡러로 살아가는 이유다.

“저는 한국을 레드오션이 아닌 블루오션을 넘어 ‘오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장으로 보고 있어요. 아직 비집고 들어갈 틈이 남아 있는 곳이에요. 이유는 ‘쏠림 현상’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은 ‘위험’이라고 간주하는 사회라 대학은 SKY를 가야 하고 회사는 대기업을 들어가야 한다고 하죠. 이미 다른 사람이 해놓은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는 한국인이 자주 쓰는 표현 ‘해야 한다’보다는 ‘해봐야 한다’로 삶의 문법을 고쳐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봐야 한다’ 문법으로 그는 지난해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와 함께 ‘웨이브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었다. 이 엔터사의 가장 큰 차별점은 ‘공유 시스템’이다. 소속 아티스트의 방송 출연, 인터뷰 섭외나 광고 의뢰는 모두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받는다. 이 과정을 회사와 아티스트가 투명하게 공유한다. 회사와 아티스트의 수익 배분 비율도 1:9로 아티스트에게 매우 유리하다.

타일러의 수많은 도전은 늘 ‘왜 없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서성일 선임기자


“현재 외국인 방송인 13명이 소속돼 있고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 <전현무계획>의 심형준 감독, 방송인 최송현, 원더걸스 출신 우혜림씨도 합류했어요. 특히 한국인이 소속사에 들어온 순간은 큰 의미였죠. 한국인들에게 우리 시스템이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서요.”

타일러는 소셜미디어 영어공부앱 광고로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는 그 앱의 강사이자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작하는 유튜브 콘텐츠 <타일러볼까요?>도 있다. 일상 브이로그에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까지 다양한 그의 면모를 담고 있다.

연말 출간을 목표로 책도 쓰는 중이다. 한국에서 수많은 도전을 하고 있는 그가 다름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벽에 부딪힐 때마다 들었던 생각 등을 글로 담았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갖는 게 왜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인이라면 쓴소리로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다. 2007년부터 한국어를 공부한 그가 한글로 된 책을 어떻게 집필하는지 궁금했다.

“먼저 한국말로 이야기하면서 내용을 녹음해요. 한 가지 현안에 대해 주욱 말로 풀고 녹취를 텍스트로 변환한 것으로 초고를 만든 뒤 추가로 들어갈 것이나 수정할 부분을 보면서 글을 완성해나가요.”

모국어인 영어로 먼저 쓰고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그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영어로 쓰려면 영어책이 나와야지요. 한국어와 영어는 사고의 흐름이 완전 달라요. 번역하게 되면 논리의 순서가 맞지 않거나 독자가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이 될 수 있어요. 게다가 내용 역시 매우 한국적인 책이라 영어로 설명하기 모호해지는 때도 있거든요.”

n잡러로 다수의 협업을 하고 있는 타일러에게 “한국에서는 동업하면 망한다는 말이 있다”는 해묵은 속설을 꺼내니 그는 “숫돌에 칼을 갈아야 날카로워진다. 마찰이 있어야 매끄러워진다”고 응수했다.

“세상에 죽는 것, 태어나는 것 말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편하기 때문에 협업을 한다는 말도 틀린 말이에요. 같은 목표이기에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협업이에요. 갈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갈등을 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한글은 세종대왕이, 한글 과자는 미국인 타일러가?

그는 ‘언제 쉬냐’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의 가방 안에선 최근에 미팅을 했으나 아직 정리되지 못한 다른 이의 명함 뭉치가 먼저 쏟아져 나왔다.

“하나가 질리면 바로 다음 것으로 넘어가도록 이 일 저 일을 하는 거예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곧 저에겐 힐링입니다. 협업이 많아도 원격업무가 가능하게 만들어서 동시에 이어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지역 강연을 위해 KTX를 탔다면 그 안에서 일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의 가방 안에선 쏟아져나온 다른 이들의 명함. 그가 얼마나 얼마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보여준다. 서성일 선임기자


한글 과자 역시 늘 지참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보여주며 피드백을 얻기 위해서다. 쌀맛과 초코맛 외에 쑥맛과 마늘맛은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호랑이와 곰이 그려진 패키지도 영락없이 한국의 것이다. 하지만 동물성 원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영어권 아기들이 알파벳을 배울 때 보상으로 알파벳 비스킷을 주거든요. 니디와 그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은 뭘 주지? 한글 과자는 본 적 없는 것 같은데?’라며 찾아봤는데 없는 거예요.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검색했는데 진짜 없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그의 과자 한 봉지에는 ‘사랑해요’ ‘뭐 해’ ‘만나자’ 등 자주 쓰는 표현을 완성할 수 있는 자음과 모음이 들어 있어, 비스킷을 먹으며 즐겁게 한글 공부를 할 수 있다.

타일러의 도전은 늘 ‘왜 없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궁금증이 호기심으로 변하면 일단 ‘해봐야 한다’. 만약 실패하면 다음 호기심으로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는 인터뷰를 끝내고 “광화문 부근에서 미팅이 잡혔다”며 잰걸음으로 밖을 나섰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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