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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째 전국 미자립교회 대상으로
에어컨 수리 봉사 ‘냉난방선교회’ 동행기
그래픽=강소연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그 위에 작업 조끼를 걸쳐 입은 두 사람 모습은 영락없는 에어컨 수리공이었다. 지난 4일 이들을 만난 곳은 강원도 춘천 남산면 창촌리에 있는 창신교회(한희준 목사). 둘은 예배당 뒤뜰에서 실외기 속 냉매가 충분한지 확인하고 있었다. 한 명이 냉매가 든 가스통과 실외기를 호스로 연결한 뒤 가스통 밸브를 돌리자 나머지 한 명이 압력계의 눈금을 확인했다.

“스톱! 정상이야. 2년 만에 점검한 건데 냉매가 조금도 유출된 게 없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이 교회 담임목사에게 에어컨 점검이 끝났음을 알렸다.

“2년 동안 이렇게 잘 작동된 걸 보면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난 4일 강원도 춘천 창신교회에서 만난 정화건(오른쪽) 목사와 백종한 목사. 두 사람은 "더운 날씨에 무거운 실외기를 나르다 보면 힘들 때도 많지만 이 일이 우리의 소명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목회자로 정화건(63·경기도 수원 신나는교회) 백종한(54·경기도 안산 예닮교회) 목사였다. 둘은 에어컨을 고치거나 설치해야 하는데 경제적 형편 탓에 전전긍긍하는 교회나 성도가 있다면 어디든 한달음에 달려가는 한국교회의 폭염 해결사다. 이들이 소속된 곳은 냉난방선교회로 이 단체의 역사를 알려면 우선 선교회 대표인 정 목사의 이력부터 살펴야 한다.

에어컨 사역, 어떻게 시작됐나

정 목사가 에어컨을 고치는 일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2년이었다. 당시 그는 지인으로부터 에어컨 3대를 기증받았는데 설치비가 너무 비쌌다. 그렇다고 선물 받은 에어컨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 그는 ‘에어컨 공부’를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에어컨 설치나 수리에 필요한 기술을 검색했고 에어컨 기사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구 가게를 찾아다녔다.

에어컨을 수리하는 목회자가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면서 정 목사를 찾는 이가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냉난방선교회가 만들어졌다. 여름에는 냉방기로, 겨울엔 난방기로 활용되는 에어컨은 예배당에 없어서는 안 될 기기. 연락은 각지에서 쇄도했다. 강원도 두메산골부터 남해의 낙도까지, 전국 곳곳에 정 목사의 발 도장이 찍혔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친 에어컨은 1만대에 달한다.

오랫동안 활동한 만큼 별의별 일을 다 겪어야 했다. 특히 2017년엔 에어컨을 고치다가 사고를 당했다. 배관 설치를 위해 드릴로 벽에 구멍을 뚫다가 장갑 낀 손가락이 드릴에 말려 들어가면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계속됐다. 경기도 일대 에어컨 수리 기사들이 정 목사를 찾아 조언을 구할 정도로 수리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심지어 과거 정 목사를 가르친 ‘에어컨 스승’도 그를 찾곤 했다. 청출어람이 따로 없었다.

2020년엔 큰 선물도 받았다. 낡은 소형 승합차(다마스)에 공구를 잔뜩 싣고 다니는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한 독지가가 4000만원 상당의 신차(렉스턴 스포츠 칸)를 선물해주었다. 정 목사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을 묻자 이때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물을 주신 분은 탁송회사를 운영하는 권사님이셨어요. 다마스에 무거운 장비를 가득 싣고 다니는 게 안타까웠대요. 어느 날 신차가 도착했는데 당시 여대생이던 제 딸이 웃으면서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처럼 미친 사람이 또 있네.’ 그 말을 듣는데 딸이 아빠의 사역을 이해해주는 것 같아 정말 기분이 좋더군요.”

백 목사가 냉난방선교회에 합류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는 협성대 신학대학원 동기인 정 목사가 벌이는 사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백 목사는 “기분이 처지고 무력감이 심해 활동적인 일을 해보고 싶던 시기였는데 에어컨 사역이 딱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활동하게 됐고, 서서히 교계의 ‘에어컨 콤비’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냉난방선교회, 어떻게 운영되나

지난 4일 창신교회 뒤뜰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고 있는 두 목회자의 모습.

사역 기간이 20년이 넘었으니 여름이나 겨울이 가까워지면 에어컨을 점검해 달라는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에어컨 수리나 설치 요청이 오면 자동차 짐칸에 한가득 공구를 싣고 출장지로 향한다. 현장에 도착하면 에어컨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 실외기를 설치하고 벽에 구멍을 뚫고, 배관을 이어붙이고 에어컨 가스를 채우고….

두 사람을 만난 이날 오후에도 춘천의 다른 교회 요청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분간 예정된 출장지가 어디인지 묻자 강원도 횡성, 충남 태안 같은 지명이 줄줄이 이어졌다.

“에어컨이 안 되면 정 목사를 찾으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교계에 퍼져 있어요(웃음). 일주일에 3일(화 목 금요일)만 출장 일정을 잡으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연락이 너무 많이 와요. 특히 여름철엔 정말 바빠요.”(정 목사)

정 목사가 섬기는 신나는교회, 백 목사가 담임자로 있는 예닮교회는 모두 출석 성도가 거의 없는 미자립교회다. 에어컨 수리에 필요한 자재비나 차량 유지비 등이 부담일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이들에게 든든한 뒷배가 돼주는 것은 후원자 28명이다. 후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묻자 정 목사는 휴대전화로 은행 계좌를 확인하더니 “올해 후원 금액은 총 60만~70만원 정도”라고 답했다.

짐작하다시피 두 사람이 주로 다니는 곳은 미자립교회들이다. 그러니 두 사람은 누구보다 이들 교회의 ‘현실’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백 목사는 “저마다 다른 개성과 목회 철학을 지닌 목회자들을 만나면서 배운 것이 많다”며 “그들을 통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만나면서 속이 상할 때도 많다. 도움받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고마워하는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을 마주할 때면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많은 이가 ‘우리 교회는 너무 어려운 교회’라고 말해요. 그런데 목회자는 어려울 수 있지만 교회는 어려울 수가 없어요. ‘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니 저희가 드리는 도움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도 많아요.”(정 목사)

기후 약자를 위하여… “동남아도 사역지”

냉난방선교회는 올해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탓에 신음하는 이들을 섬기기 위해 활동 반경을 동남아시아까지 넓히기로 한 것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에서 선교사 파송 기관으로 인준을 받았고 베트남에 지부를 세웠다. 앞으로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도 지부를 만들 계획이다.

이들 동남아 5개국에서 벌일 사역은 국내 활동과 대동소이하다. 선교사들에게 에어컨 설치 및 수리 기술을 가르쳐 이들이 에어컨 사역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왜 이런 일을 하냐고요? 간단해요. 기후 때문에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갈수록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어요. 사람들이 더워 죽겠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가서 도와야죠.”(정 목사)

마지막으로 정 목사와 백 목사에게 동역자인 서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둘은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정 목사님은 열정이 대단한 분입니다. 사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 냉난방선교입니다. 제가 아직 솜씨가 서툴러서 미안할 뿐이에요.”(백 목사)

“백 목사님은 정말 좋은 파트너예요. 신대원 동기여서 편해요. 저는 70세에 은퇴하면 동남아로 가서 냉난방선교회 기술고문으로 일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백 목사님이 이 일의 바통을 이어받게 되겠죠. 냉난방선교회의 후임 대표인 셈이죠(웃음).”(정 목사)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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