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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돌봄’ MZ가 MZ에게
사랑의 구원자가 되려는 당신

상대 분노 폭발·무리한 요구에도
본인 존재감 확인하고 싶어 수용
달래지 말고 자신 돌아보게 해야
게티이미지뱅크

Q. 저는 30대 중반이나 되었는데 이렇다 할 연애 경험이 없습니다. 학업기간이 길었고 이후에는 일에 매진하다 보니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연애를 시작한 지 10개월 정도 됐습니다. 여자친구는 보통 때는 유쾌하고 저를 잘 배려해주는데 화가 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냉장고가 고장 났다기에 에이에스(AS) 신청하라고 했더니 “예전에 사귄 사람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곧장 달려왔는데 너는 왜 달려오지 않냐. 안에 음식들은 다 어쩌냐”며 소리부터 지릅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내일 아침 일찍 가겠다고 했더니 “나를 화나게 해놓고 자겠다는 거냐”며 빈정거립니다. 귀걸이 한 짝을 잃어버려서 속상해하는 걸 봤으면서도 같은 걸 사다 주지 않았다고 “그렇게 눈치가 없으니까 지금까지 연애를 못 했지”라며 모욕을 주고, “나한테 선물해줄 돈이 아까운 거 아니냐. 너도 나랑 오래 만날 생각이 없는 거 아니냐”고 몰아붙입니다. 주말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면 “몰래 바람피우는 거 아니냐”며 제 휴대폰을 뒤집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자기 직장 앞으로 오게 하고는 한두시간씩 기다리게 한 적이 많아 야근이 많으면 주말에 만나자고 했더니 “나는 너를 만날 시간만 기다린다. 직장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해서 그 안에 있는 시간이 지옥 같은데 밖에서 네가 기다려주면 그래도 버틸 수 있다. 그거 좀 기다리는 게 그렇게 시간이 아깝고 힘드냐”고 웁니다.

여자친구가 이럴 때는 제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숨통이 조여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빌미를 안 줬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너도 나를 버릴 거 아니냐”고 울 때는 안쓰럽기도 합니다. 친구도 없고 불행한 가정사도 있어 저에게 더 매달리는 것 같은데 결핍된 애정을 채워주고 싶기도 합니다. 연애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고 다른 커플들도 갈등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고비를 지나면 사랑이 깊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주위에서는 헤어지라고 하네요. 관계를 이어가려는 제가 이상한 건가요? 한수호(가명·34)

A. 주위에서는 불 같은 연애를 견뎌내고 있는 수호님이 잘 이해되지 않나 봅니다. 연애의 속사정을 세세히 들으면 제3자 입장에서는 왜 이런 관계가 유지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연인이나 부부, 부모-자식처럼 밀접한 관계일수록 무의식의 층위에서 만나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서로에게 기대하고 확인하려 하는 게 있습니다. 수호님의 여자친구가 분노 폭발을 통해 수호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언제든 날 돌봐줄 건가요?”인 것 같습니다. ‘내가 필요로 할 땐 언제라도 달려와 달라’, ‘나에게는 돈도, 시간도 아끼지 말아달라’, ‘나는 이미 상처가 많은 사람이니 절대 혼자 두지 마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며 수호님의 마음 속에 자신이 1순위로 있는지 확인하고, 그게 확인되지 않으면 버림받을 거란 두려움에 휩싸이며 아주 취약한 상태로 빠져드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수호님이 여자친구에게 무의식적으로 거는 말은 무엇일까요? 혹시 “내가 필요한가요?”라는 말이 아닐까요? 어려움이 닥친 누군가가 나를 찾으면 귀찮고 성가시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정과 신뢰를 받는 느낌에 흐뭇하기도 합니다. 해결사가 되어 문제를 뚝딱 처리해주고 상대가 고마워한다면 그야말로 슈퍼맨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내가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곁에 있는 것보다는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게 나의 존재감과 가치를 좀 더 확실히 실감할 수 있는 길입니다. 버거울 법한 여자친구에게 강한 연민을 느끼고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결핍을 채워주려는 모습을 보면 수호님은 분명 수호님 자신보다 여자친구의 필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계신 것 같아요.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고 싶은 수호님의 마음과 전적인 돌봄을 원하는 여자친구의 톱니바퀴가 잘 맞물려져 두 분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자친구의 결핍된 애정은 누군가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밑 빠진 항아리 모양의 마음을 갖고 있어 누군가 사랑을 채워줘도 금세 빠져나가는 것 같아요. 아마도 마음 한구석에 ‘나는 사랑 받을 만하지 않다’는 믿음이 강할 겁니다. 그 믿음은 상대방의 사랑을 끝없이 테스트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이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매 순간 사랑을 확인하려는 집요함이 결국은 주변 사람을 나가떨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필사적으로 피하고 싶어하면서도 결국 버림받는 경험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문제는 사랑을 화수분처럼 퍼부어 줄 타인이 아닌 여자친구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수호님의 여자친구는 정서적인 허기와 대인관계 문제, 성장기의 불행 등 들여다봐야 할 과제들이 많은데 그걸 외면하며 수호님과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네가 나에게 뭘 안 해줘서”라며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회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에요. 강렬한 분노와 소모적인 말다툼, 이후의 극적인 화해는 여자친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우울을 가려주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친구가 수호님이 아닌 자신의 문제와 씨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다툼이 시작되면 빠르게 중단하고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여자친구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수호님 잘못이 아닌 일로 사과하거나 달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갈등 상황에서 느껴지는 불안과 죄책감은 참 불편한 감정이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볼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 기분을 빨리 풀어준다면 여자친구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기회를 놓칠 수 있어요. 희생과 사랑을 통해 여자친구의 결핍을 즉각적으로 채워 주는 것은 어쩌면 여자친구가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빼앗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럼 수호님은 이 관계에서 뭘 해야 하냐고요? 혹시 나의 역할과 자리가 없어진 것 같아 허전하시다면 그 헛헛한 마음과 친해져 보세요. 여자친구가 애정결핍에서 벗어나 수호님을 덜 필요로 할 때, 수호님에게 찾아올 감정일 테니까요. 그리고 굳이 뭘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외롭고 불행한 누군가의 치료사나 구원자가 되지 않아도 수호님은 이미 충분히 필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한겨레 기자로 짧은 기간 일했다. 방황의 시간을 보내며 임상 및 상담심리학을 공부했고, 30대 상담자로서 내담자들의 자기 이해와 발견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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