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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수련, 상급종합병원서 중증 질환 위주로
과반이 중소병원·의원서 일하는 현실과 동떨어져
“의료 취약지선 ‘맥가이버’ 같은 의사 있어야”
전공의 ‘값싼 인력’ 아닌 수련생 인정받는 계기 될 수도
‘삼도봉 생활권 산골마을 의료·문화 행복버스’(행복버스)는 경북 김천시, 전북 무주군, 충북 영동군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순회 건강검진 서비스다. 행복버스 의료진이 해인리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을 검진하는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전공의가 지역의료, 전문진료, 1차 의료 등 다양한 경험을 체계적으로 쌓을 수 있는 네트워크 수련도 도입한다.”

11일 제5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전공의 수련 개선 방안의 하나로 네트워크 수련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산하 인력전문위원회의 추가 논의를 전제로 했지만, 최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같은 내용을 언급하면서, 구체안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의사단체들은 “검증되지 않은 정책”이라며 반대하지만, 의료 현장에선 취약지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도입이 필요하단 주장이 나온다.

빅5서 수련한 외과 전문의, 맹장 수술은 못한다?

“이른바 ‘빅5’ 병원 등 대형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를 따고도 정작 맹장 수술은 못 하는 의사들이 나온다. 전공의 수련 때 집중적으로 배운 췌장암 수술은 잘하겠지만, 동네 병원에서 췌장암 환자를 만날 일은 거의 없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11일 한겨레에 “현재의 전공의 수련 과정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전문의 역할과 전공의 수련 과정 간 괴리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기준 전문의 2만6357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2.4%(1만3823명)가 의원에서 일한다. 이어 상급종합병원 23.5%(6197명), 종합병원 13.7%(3608명) 등의 차례다. 반면 지난해 기준 전공의(1만2997명) 가운데 71.2%(9256명)가 45개 상급종합병원에서 수련받았다. 나백주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대학병원 교수들은 진료과 안에서도 가령 외과라면 흉부외과, 내분비외과, 소화기외과 등 세부 분과의 암이나 난치성 질환에 특화된 진료를 한다. 이들의 수술 등을 돕는 방식으로 전공의 수련이 이뤄지니, 전공의들도 특정 중증·난치성 질환 위주로 배우게 된다”며 “지역 병원에선 비교적 건강한 환자의 경증 질환을 진료할 일이 많은데, 이런 내용은 배우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60여 개 섬 있는 오키나와엔 지역 맞춤형 의사가 있다

특히 의료취약지에선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문제다. 의원이 없는 농촌 지역 보건지소에선 공중보건의(공보의) 한 명이 감기, 배탈, 만성질환으로 온 환자부터 논밭에서 일하다 허리를 삐끗한 환자, 벌레에 물린 환자 등까지 본다.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은 “의료취약지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환자군을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데 목적을 둔 수련 과정이 없는 상황에서 공보의가 보건지소를 찾는 환자를 모두 치료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결국 가까운 보건지소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지역 의료기관으로 가야 하는 환자도 있는 실정이라고 박 원장은 전했다. 그는 “의료취약지에서 포괄적인 일 차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의사 양성을 목적으로 한 수련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영북농협 3층 대강당에 마련된 ‘농촌 왕진버스’ 임시 진료소에서 주민들이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정하 기자 [email protected]

“농촌 같은 의료취약지에선 ‘맥가이버’ 같은 의사가 필요하다.” 김영수 경상국립대병원 공공보건사업실장(예방의학 전문의)은 이렇게 주장한다. 그는 “동네에 의사가 혼자 있는 상황을 대비해 여러 질환을 두루 진료하고, 응급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며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수련 받아 이런 의사가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무엇보다 지역 상황에 맞는 의사 수련과정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160여개 섬으로 이뤄진 오키나와에선 어떤 응급상황이 외딴 섬에서 발생하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지역 맞춤형 의사를 양성하고 있다. 경상남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지난해 3월 발간한 ‘경상남도 의사인력 수요 추계 및 확보방안’ 보고서를 보면, 공공병원인 일본 오키나와현립중부병원의 주요 수련 목표는 연수의(전공의)들이 혼자서도 섬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연수의들은 임상연수(인턴과 유사) 2년간 응급의학과를 포함한 여러 진료과를 경험한다. 후기연수(레지던트와 유사) 때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적인 진료과를 거치며 수련한다. 이 기간 혼자 해당 진료과의 초진, 진찰, 처치 등을 할 수 있도록 배운다. 이렇게 특화된 교육을 받은 공보의가 현립병원에서 운영하는 진료소에서 일한다. 의사 한 명, 간호사 한 명이 일하는 섬 진료소에도 엑스레이, 초음파, 구급차 등 다양한 장비가 있고 이를 실제로 활용한다.

“전공의를 국가의 자원으로 보는 시각 전환 필요해”

네트워크 수련체계 도입으로 전공의가 ‘수련’에 집중하기보다는 ‘값싼 인력’으로 장시간·중노동에 몰리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선 정부 지원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조승연 원장은 “현재는 전공의가 대형병원 한 곳에 묶여 수련생이 아닌 값싼 인력으로 취급받고 있는데, 네트워크 수련체계 도입으로 여러 의료기관에서 수련을 받으면 이런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조 원장은 “전공의를 개별 대형병원 소속이 아닌 국가의 자원으로 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지역 거점 공공병원 등에서도 전공의 수련이 가능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수련 환경 개선을 위한 전공의 교육계획을 세우고, 수련 비용 등에 국가 재정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내년 예산안에 ‘전공의 국가 수련 책임제’ 관련 예산을 포함했고, 기획재정부에서 심의를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출범한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네트워크 수련체계’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정갈등으로 의개특위에 불참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의학회) 등은 “의료계와 협의 없이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내놨다”며 지난 5월 강하게 반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형병원 중심의 현행 수련체계에서는 전문의가 실제 의료현장에 나갔을 때 필요한 다양한 역량을 키우는 데 어려움이 있어 이를 개선하려는 것”이라며 “실효성 있는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전공의, 의학회 등과의 논의가 필요하다. 의개특위 논의 과정에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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