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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콜드케이스]
<83> 영국 샤를린 다운스 실종 사건
2003년 실종… 주민 비협조에 수사 지연
"청소년 성착취 만연" 제보에 물꼬 틔여
광범위한 범죄 포착… 피해자만 60여 명
공론화 불지폈지만 다운스 진실은 묘연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영국 서부 해안 휴양도시인 랭커셔주(州) 블랙풀 일대 전경. 20세기 영국 주요 휴양지로 번성했으나, 현재는 유흥 시설이 늘어서 있기만 한 낙후 지역이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2003년 11월 1일. 영국 북서부 랭커셔주(州)의 해안가 휴양도시 블랙풀에서 14세 여성 샤를린 다운스가 실종됐다. 다운스는 이날 오후 9시쯤 친구와 함께 블랙풀 시내를 걷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이후 종적을 감췄다. 지역 경찰은 그가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시신이 발견된 적은 없다.

실종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들은 이상하리만치 초기 정보 수집이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최종 목격 장소를 기점으로 탐문 범위를 넓혀 봐도 도무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블랙풀은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상인들로 북적이는 관광도시였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비협조적 태도는 의문스러웠다. 나중에서야 경찰은 다운스의 지인들, 심지어는 가족마저도 저마다 비밀을 감추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수년간 이어진 수사 끝에 경찰은 블랙풀에 광범위한 청소년 성착취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 패스트푸드 음식점이나 도박장, 오락실 등에서 성인 남성들이 취약 계층 청소년들을 유인해 성적으로 착취하는 범죄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영국은 16세 미만 청소년과의 성관계를 전면 금지하고 있으나,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는 사건의 공론화를 막았다. 다운스 역시 이 같은 성착취의 희생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소년 성착취' 주민들 입을 열었다

영국 랭커셔주(州) 지역 경찰이 공개한 샤를린 다운스의 실종 전 모습. 2003년 실종 당시 14세였다. 영국 경찰 제공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하고 고강도 수사에 나선 시기도 있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형사는 2019년 영국 채널5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신뢰할 만한 제보가 들어왔고, 이를 토대로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고 말했다.

이 제보자는 블랙풀에서 튀르키예 음식점을 운영하던 이야드 알바티키와 모하메드 레베시가 다운스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알바티키가 다운스를 살해했고, 레베시가 시신 유기를 도왔다"는 말을 두 사람으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보자는 자신이 오락실 등 사업체를 다수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사정을 꿰뚫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사건 수사는 궤도에 진입한 듯 보였다. '청소년 성착취'와 관련한 구체적 질문 앞에 그간 모르쇠로 일관하던 상인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알바티키와 레베시를 포함, 지역 상인들이 일자리나 먹을거리, 마약 등을 대가로 공공연하게 10대 청소년들을 상대로 성매수 범죄를 벌이고 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블랙풀은 영국에서 손꼽히는 낙후 지역이면서도 관광·유흥 산업이 발달한 탓에, 재력 있는 성인 남성들이 길거리를 떠도는 여성 청소년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많았다.

2011년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이 마을에서만 '성착취를 당하고도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던' 여성 청소년이 최소 60명에 달한다고 봤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경찰관은 채널5에 "다이너마이트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도청기 설치 실수… 수포로 돌아간 수사

샤를린 다운스(오른쪽 아래 흐린 색 박스)가 영국 랭커셔주(州) 블랙풀에서 실종되기 직전인 2003년 11월 1일 오후 3시 25분 친구와 시내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랭커셔 지역 경찰이 공개한 폐쇄회로(CC)TV 사진이다. 영국 경찰 제공


다운스와 관련한 구체적 정황도 나왔다. 다운스의 친구들은 그가 어딘가 미심쩍어 보이는 가게를 오가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는 "알바티키와 레베시가 준 술을 마신 후 쓰러졌다가 나체 상태로 모텔방에서 깨어났다"며 직접 성폭행 피해를 증언하는 여성 청소년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가게 주인들의 범죄 행위가 큰 비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분위기가 강해 성착취 정황 및 피해 사실을 학교나 경찰에 알릴 수 없었다고 채널5에 토로했다.

이러한 증언들은 다운스 실종 사건에 알바티키 등이 깊이 관여했다는 심증을 굳히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들의 혐의를 입증하려던 경찰 수사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사건 수사가 너무 늦게 진행되면서 결정적 증거를 찾기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지만, 경찰의 수사 능력 부족 또한 문제였다.

단서를 찾으려던 노력은 매번 뒷북을 쳤다. 예컨대 경찰은 '시신이 레베시 자택에서 처리됐다'는 제보를 바탕으로 그 집을 수색했으나, 공교롭게도 레베시는 다운스 실종 직후 집안 내부 인테리어를 전부 바꿔치웠다. "부동산 투자를 하다 보니 소유 자산 인테리어를 자주 바꾼다"는 게 그의 해명이었다. 혈흔 등을 찾기 위해 바닥재까지 뒤엎었던 수사팀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선택지는 함정수사였다. 경찰은 '심문할 것이 있다'며 알바티키와 레베시를 경찰서로 부른 뒤, 수사팀을 두 사람 자택에 보내 방 곳곳에 도청기를 설치했다. 혹시 이들이 일상생활 중 다운스와 관련한 대화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사팀이 도청기를 잘못 설치하는 바람에 녹음 품질이 너무나 떨어졌다. 핵심 용의자의 자백을 이끌어내려는 수사를 하면서도 기초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당시 수사팀으로부터 녹취록 작성을 의뢰받은 속기사는 음성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며 '해독 불가'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속기사 자격이 없는 경찰관이 임의로 직접 녹취록을 작성하겠다고 나섰고, 수사 지휘부는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수사팀의 무리수였다. 이 경찰관은 끝내 "(녹음 파일에서) 알바티키가 '다운스를 내가 죽였다'고 말한 부분을 찾아냈다"며 기소장을 제출했다. 실제로는 소음 탓에 내용을 전혀 알아들 수 없는 음성을 범죄 혐의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것에 불과했다.

법원이 이런 엉터리 증거를 받아줄 리 없었다. 2008년 알바티키와 레베시는 무죄가 확정됐다. 영국 경찰은 수사가 부적절하게 이뤄졌음을 시인하며 녹취록 작성을 주도한 경찰관을 2011년 파면했다. 이 경찰관은 복직 요구 소송을 거쳐 이듬해 다시 제복을 입게 됐지만, 다운스 실종 사건 수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알바티키와 레베시는 지금도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사법 부정의'의 희생자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성착취 공론화' 불씨 됐지만…

영국 서부 해안 휴양도시인 랭커셔주(州) 블랙풀의 랜드마크인 붉은색 탑이 높게 솟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다만 이 사건은 블랙풀 시민사회에서 청소년 성착취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파악된 블랙풀 성범죄자들은 최근까지도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2018년에는 청소년 복지 단체에서 활동하던 88세 아버지와 각각 70, 64세인 두 아들이 수년간 11세 여아 등에게 성적 착취를 가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1971~1978년, 1988~1991년 두 차례에 걸쳐 여아 2명을 각각 학대했다. 이 사건 재판 전후로도 60~80대 성인 남성들이 10대 여성 성착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08년 기준 블랙풀의 보호 대상 아동 중 성적 학대를 경험한 아동 비율은 약 16%로 전국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 청소년 보호 단체 관계자는 지역 매체 블랙풀가제트에 "보호 대상 청소년들은 '경찰에 신고해도 피해 사실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다 보니 결국 저항을 포기하게 됐다'고 말한다"며 "수십 년간 모두가 쉬쉬하던 추악한 비밀을 다운스 실종 사건이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 블랙풀 시의회와 랭커셔 경찰 당국은 취약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인 '어웨이큰 프로젝트'를 출범시켰고, 이는 영국 전역의 아동 성착취 대응 모델로 확산되기도 했다.

다운스 실종의 진실을 알아내려는 노력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2019년 채널5는 경찰 내부 자료를 토대로 다운스의 부친이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다운스의 실종 전 그의 부친이 성범죄 이력을 가진 지인을 집에 데려와 살도록 했다. 그 지인이 다운스를 성적으로 학대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다운스의 부친은 심부름 명목으로 딸을 늦은 밤에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이들도 다운스를 학대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 사건을 취재했던 지역 매체 기자 존 쿠삭은 채널5에 "다운스는 실종 1년 전 의료기관에 10여 차례 들러 타박상 등을 치료받은 기록도 있다"며 "경찰은 '다운스를 발견하면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다운스 실종을 둘러싼 진실은 당분간 밝혀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의 부친은 "관련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부인하고 있다. 지인에 의한 성착취를 확인할 증거도, 이 사안을 실종 사건과 연관 지을 단서도 현재로서는 없다. 블랙풀가제트는 "다운스의 시신이 발견돼 추가 증거가 드러나기 전에는 사건이 (계속) 미궁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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