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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목 사회부문장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희생자 위패식 중 유족이 엎드려 울고 있다. 위패식은 지난 4일이 경기 화성시청에서 열렸다. 한수빈 기자


리튬전지 공장 아리셀의 화재 참사는 희생자가 한두 명이었다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한두 명 죽는 일은 예삿일이라 사람들은 그러려니 한다. 시민사회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진보 언론사 몇 곳이 보도하면 그 죽음은 잊힌다. 다시 한두 명이 죽으면 이 과정을 되풀이한다. 두 자리 숫자라야 세상이 그나마 들여다본다. 그것도 전제가 있다. 화성 참사처럼 한꺼번에 죽어야 한다. 같은 업종이라도 따로 죽으면 잘 모른다.

‘13’. 올 1~5월 조선소에서 죽은 노동자 숫자다. 계단에서 떨어져 죽고, 중량물에 깔려 죽고, 폭발로 죽었다. ‘위험의 외주화’에 ‘위험의 이주화’가 겹쳤다. 13명 중 12명이 하청노동자, 그중 2명이 이주노동자다. ‘조선업 빅3’라는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HD현대중공업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 뉴스 검색창에 ‘조선소’를 검색하면, ‘회장 방문’ ‘미·중 갈등 반사이익 기대’ 같은 제목을 단 기사들이, 몇 안 되는 이들 죽음에 관한 기사를 은폐하듯 도배한다.

‘19’. 공사금액 800억원 이상 대형 건설현장 사망자 수다. 2022년 20명에서 지난해 10명으로 줄었다가 올해 다시 늘었다. ‘41’. 2013년부터 최근까지 산재로 죽은 설치·해체 노동자 수다. 설치·해체 노동자는 올해 기준 350명가량이다. 전국타워크레인설치·해체노조는 지난 6월 이 수치를 발표하며 “타워크레인을 하루 만에 설치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 정부는 항상 작업자 실수 또는 과실로 발표하며 근본적인 원인에는 눈을 감는다”고 했다.

경향신문 노동·사건 담당 기자들의 일정·취재 보고와 기사엔 고립된 죽음이 늘 등장한다.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 택배노동자 정슬기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측의 배송 재촉에 이렇게 답했다. 주 6일 심야 로켓배송 등을 해오다 숨졌다. 과로사 대책위가 문제를 제기해도 쿠팡 측은 책임을 회피한다. 정슬기가 저 답 뒤에 이어 적은 건 말줄임표다.

[단독] ‘배송기사 사망’ 쿠팡CLS, 직접 업무지시 또 드러나…“원청이 진짜 사장”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가 대리점으로부터 일감을 받는 특수고용직 배송기사(퀵플렉서)에게 직접적인 업무지시를 한 정황이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 5월 숨...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407101617001

한두 명의 죽음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하나 하나가 모두 비극이다. 비극은 ‘매우 비참한 사건’이란 뜻이다. 노동자들은 ‘매우 슬프고 끔찍한 사건’을 다반사로 겪는다. 비극의 또 다른 뜻은 ‘생의 불행과 비참한 일을 제재로, 주인공의 파멸·패배·죽음으로 끝맺는 극의 형식’이다.

한국에선 극 형식의 비극이 진짜 삶의 비극을 몰아낸다. 적대 진영 수장에겐 ‘파멸·패배·죽음’을 경고·예고하고, 우리 진영 수장의 ‘파멸·패배·죽음’을 막아야 한다며 선동하는 연속극이 펼쳐진다. 이 공화국의 한쪽에선 ‘문자’를 둘러싼 궁중 암투가 벌어지고, 또 다른 쪽에선 ‘수령 체제’가 들어서려 한다. 많은 이들이 기득권자들 간 권력 다툼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은 비극에 빠져든다.

이들 권력자는 ‘선동과 기만의 비극’이라는 무대 뒤에서 ‘법조’ ‘김앤장’ ‘○○○인베스트먼트’ ‘주식’으로 ‘연대’하며 한국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든다. 한국의 대표적 악덕기업으로 부상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경영지원 부문 대표가 검찰과 김앤장 출신이다. 3만원을 내지 않아 안전보건 컨설팅을 받지 못한 아리셀이 참사 후 선임한 로펌이 김앤장이다. 노동자 안전을 희생하고 챙긴 이윤이 결국 어디로 흘러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에디터의 창]왜 성범죄자를 변호했나러시아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들 얼굴에 또렷한 고문 흔적을 보면서 2011년 노르웨이 연쇄 테러 사건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생채기 하나 없던 얼굴이 떠올랐다. 구타나...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3281953001

‘1850’ ‘1810’ ‘1777’ ‘1957’ ‘2142’ ‘2020’ ‘2062’ ‘2080’ ‘2223’ ‘2016’. 2014~2023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다.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때 죽은 이들이다. 신생아 수나 자살자 수처럼 정권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지표가 산재 사망자 수다.

한국 사회가 모든 죽음에 무관심한 건 아니다. 젊은 군인의 죽음은 지금 가장 큰 이슈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은 다행히도 죽음의 원인과 지휘 책임을 묻는 데 공감대가 마련됐다. 지난해 채 상병 영결식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더불어민주당의 ‘죽은 군인을 대하는 진정성과 이중성’ 따위를 지금 따질 일은 아니다. 특검으로든, 그 이상의 수단으로든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화성 참사 뒤 출간된 <사고는 없다>의 저자 제이 싱어는 불운과 불의의 사고는 없다고 말한다. 사고로 죽고 사는 일을 권력 유무의 척도로 본 그는 “아래를 비난하지 말고 언제나 맨 위를 보자. 누가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썼다.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0일 경기 화성시청 합동분향소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중에는 “중대재해처벌 제대로 하라”는 손팻말도 나왔다. 권도현 기자


노동자 사망 사건도 채 상병 사망 사건처럼 ‘맨 위’를 겨눠야 한다. 노동자들의 비극을 초래한 근원 토대를 허물어야 하는데, 그 실질적 대책의 최소 요건인 중대재해처벌법 강화도 쉽지 않다. 정부는 참사 때면 되풀이하는 ‘현장 점검’을 재개하고, ‘기업인’들에게 ‘안전관리에 대한 투자와 관심’을 ‘당부’하는 일로 근원 문제를 무마하려 한다. 또 다른 의미의 비극 무대 여의도에선 노동자들의 죽음을 주요 의제로 다루지 않는다.

올해도, 내년에도 ‘2000명’이 산재로 죽을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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