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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연극 '크리스천스'
신앙과 공동체 논쟁 불러
1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폭탄 테러가 일어난 가게에서 여동생을 구해낸 소년이 정작 자신은 온몸이 불타 죽고 만다. 그 모습을 본 기독교 선교사가 개탄한다. 자신이 그 착한 소년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아이를 크리스천으로 개종시키지 못해, 그 아이를 그냥 지옥에 보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다.
미국의 한 대형교회 담임목사 폴(박지일)은 어느 예배 날 이를 정면 반박하며 폭탄 선언을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지옥을 믿는 ‘그런 교회’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어 신약 원본에선 지옥이란 단어가 안 나온다”고 말이다.
민새롬 연출 연극 '크리스천스'. 2018년 초연 이후 6년만에 두번째 시즌을 공연 중이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 “만약 당신이, 마음속에 사랑을 품은 바로 그분(하나님)이라면, 그 소년을 지옥에 보내겠습니까?”(폴) " “믿고 회개하는 것만이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해준다”고 믿어온 성도들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지옥이 없다면 믿을 필요도 없을까?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종로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크리스천스’에 대한 관객 반응이 뜨겁다. 13일 종연까지 전석 매진사례다.
공연장부터 몰입을 돕는다. 위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의 무대 3면을 객석이 에워싼 형태다. 천장 LED 패널로 구현한 스테인드글라스가 경건하게 빛난다. 주연 배우 5인을 비롯해 합창단원, 연극배우, 뮤지컬 학과 학생으로 구성한 성가대 역할 출연진이 객석 곳곳을 채워, 관객도 교회 성도가 된 듯 믿음과 신앙의 딜레마에 빠져든다.

‘지옥이 없다면 히틀러 같은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목사님은 왜 하필 이 설교를 교회 건물을 신축하기 위한 거액의 대출을 10년 만에 다 갚은 바로 그날 한 걸까.’
‘지옥이 없다면 믿을 필요도 없다는 걸까.’
‘폴 목사는 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면서, 너그러워야한다는 설교를 따르지 못한 사람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성도들의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조슈아 부목사(김상보)와 젊은 성도들은 교회를 떠나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결성하고, 폴 목사 부부의 20여년 결혼생활마저 흔들린다. 관객도 자연스레 자문하게 된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美대형교회 목사 실화…지옥 부정하자 '퇴출'
민새롬 연출 연극 '크리스천스'. 2018년 초연 이후 6년만에 두번째 시즌을 공연 중이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실제 기독교 집안에서 목사 교육을 받고 자란 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가 쓴 희곡이 토대다.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에 따르면, ‘크리스천스’는 2011년 미국 미시간주의 한 대형 교회 실화가 모티브가 됐다. ‘교계 록스타’로 통한 목사 롭 벨이 저서 『사랑이 이긴다: 천국, 지옥, 그리고 모든 사람의 운명』에서 지옥의 존재를 부정한 뒤 ‘배교 행위’로 낙인찍혀 자신이 일군 교회에서 퇴출당한 사건이다.
‘크리스천스’를 2018년 국내 초연했던 극단 청년단 대표 민새롬(44) 연출이 올해 두 번째 시즌 연출까지 맡았다. 11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특정 종교가 소재지만 우리가 살아가며 속할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경험하는 모순, 분열, 소통, 화합의 고통스러운 국면을 다룬 연극”이라 소개했다. ‘권리’를 주제로 삼은 ‘두산인문극장 2024’ 공연 시리즈의 일환이다.



민새롬 연출 "갈등·분열 포기한 젊은 세대에 메시지"
연극 '크리스천스' 민새롬 연출가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두산인문극장 2024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물 및 장면 해석이 초연과 달라졌다. 민 연출은 “초연 때는 믿음을 가진 목회자의 신념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주인공이 몰락하는 양상을 보며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길 바랐다”면서 “이번엔 오히려 서로 신념이 달라도 공동체를 지키려는 구성원들의 노력, 공동체에 대한 애정‧헌신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고 했다.
대학 강단에서 젊은 세대를 만난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고,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고통스럽더라도 사분오열되는 양상을 목격하고, 이를 논의의 테이블 위에 올려야 비로소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목사 부부 침실 대화도 '마이크' 쓴 이유는
민새롬 연출 연극 '크리스천스'. 2018년 초연 이후 6년만에 두번째 시즌을 공연 중이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교회에서의 설교, 논쟁 뿐 아니라 폴 목사 부부의 침실 대화, 내면 방백까지 모든 대사를 배우가 마이크를 손에 쥐고 연기하는 방식은 원작 대본에 나와있는 대로다. 민 연출은 “내부자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사적 대화까지 마이크를 통해 관객에게 공적으로 전달된다. 연극적 긴장감을 줄 뿐 아니라, 불필요한 정서적 효과를 덜어내 관객이 극중 대화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순간, 텅 빈 무대에 혼자 남은 폴 목사는 무너진 폐허에서 자신의 신념을 토대로 새로운 공동체를 세울 수 있을까. 그는 “사회적 역할‧연령대에 따라 관객 반응이 달랐다”고 말했다.
“사회적 리더인 폴 목사 관점에서 결국 이 모든 게 그의 독선이라 해석하고 가슴 아파하는 관객은 주로 중장년층이죠. 구성원의 애정과 헌신, 분열의 순간에도 폴 목사에 대한 사랑을 읽어내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민 연출은 “젊은 관객들이 사회 공동체와 신념의 갈등에 관한 다양한 후기를 남겨준 게 고무적”이라며 “종연(13일)을 앞두고 있는데, 세 번째 시즌 공연으로 더 폭넓은 의견을 교류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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