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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김건희(왼쪽 사진) 여사와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뉴스1


요즘 인기 있다는 정치 드라마를 안 본다. 현실 정치가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가 총선을 앞두고 명품백 수수 의혹을 수습하려고 다섯 번이나 절절한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전부 무시했다는 문자 논란은 극적 요소로 가득하다. 캐릭터가 선명하다. 불같은 성정의 최고 권력자와 막후 실세의 기운을 풍기는 배우자, 냉철하고 스마트한 야심가, 그리고 그를 누르기 위해 권력자와 손을 잡은 경쟁자까지. 원초적 복수 서사가 꿈틀댄다. 6개월 묵은 문자 메시지가 국민의힘 전당대회 도중에 공개됐다. 문자 주인의 지시나 묵인 없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김 여사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보통 원한이 아니다. 미운 한동훈 후보를 낙마시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자신을 정치 한복판에 내던지는 위험을 감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당무 개입이라는 비판이 국민의힘 안에서 자자하다. 나중에 정권의 힘이 더 빠지면 국정농단으로 비화할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후보도 캐릭터가 뚜렷하다. 1위 후보답게 적당히 사과하고 넘어가라는 당내 목소리에도 "내가 왜 사과하느냐. 당대표가 돼도 영부인과 문자 메시지로 소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철벽을 치고 있다. 그를 추격하는 원희룡 후보는 연일 독한 대사로 주목을 끈다. 10일 "(한 후보가) 총선을 고의로 패배로 이끌려고 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한 후보가 김 여사의 사과를 무산시켜 일부러 총선에서 패배한 뒤 미래 권력으로 떠오르려 했다는, 놀랄 만한 의혹 제기다. 한 후보는 "다중인격 같은 구태 정치"라고 일축했다.

'기승전'은 일단 한 후보에게 유리하게 흐른다. 7, 8일 실시된 YTN·엠브레인퍼블릭의 당대표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지지층 중 한 후보 지지율은 61%로 과반이었다. 원 후보는 14%, 나경원 후보는 9%에 그쳤다. 하지만 결론은 모른다. 이런 분위기면 선거까지 남은 10여 일간 누가 어떤 반전 카드를 들고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런데 김 여사 문자 논란은 재미있게 보다가도 문득 허무해진다. 차기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한 후보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고작 "어떻게 감히 영부인 문자에 답을 안 할 수 있어" "당신은 배신자야 아니야"밖에 없느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외에 검증할 것이 많다. 한 후보는 최근 들어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게 됐지만 둘 다 정치 경험이 적은 특수부 검사 출신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요인 중 상당 수가 이런 직업 배경에서 왔다는 진단이 많다. 타협하기보다는 상대를 제압하려는 태도, 대화·소통보다 위계 질서 중시, 세상을 유죄 아니면 무죄로 보는 시각 등이다. 물론 한 후보는 윤 대통령의 단점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 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이 또 나와도 괜찮은지 검증은 필요하다. 그런데 전당대회가 김 여사 문자 논란으로 채워지며 검증 기회는 증발하고 있다. 친윤석열계는 김 여사 문자 공개로 한 후보를 궁지에 밀어 넣으려다가 오히려 띄워준 것일지 모른다. 검증이 생략된 또 하나의 엉성한 영웅 서사는 이제 사양하고 싶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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