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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근심되는 것이 천하의 더위인데(一念長憂天下熱)….’

조선 후기 이상적인 도시인의 삶을 그린 8폭 병풍이 있다. ‘태평성시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그 중 5폭에 각종 부채를 파는 ‘부채’ 상점이 보인다. 가게의 좌우에 글자가 새겨진 길쭉한 광고판이 보인다. 오른쪽 광고판에 ‘더위가 걱정’이라는 내용의 7자가 보인다. 왼쪽 광고판에는 아쉽게도 마지막 글자인 ‘서늘할 량(凉)’만 보인다. 아마 ‘부채로 더위를 날려보내시라’는 광고 문구였을 것이다.

그보다 600년 전 인물인 이규보(1168~1241)의 시 한 수가 이 부채 상점의 광고 내용을 대신 알려줄 것 같다. “여름철에 손에 들고 흔들면 무더위 어디로 사라지는지 몰라. 응당 여러 사람에게 나눠 주어야 해. 청량한 맛을 어찌 혼자만 차지하랴.(引凉那忍獨)”(<동국이상국집>)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나들이’와 ‘빨래터’) 등에 등장하는 관음증 환자들. 부채로 얼굴을 가린채 지나가는 여인이나 빨래하는 여인들을 훔쳐보고 있다. 윤기(1741~1826)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남의 행동을 엿보는 관음증 환자들을 ‘시체를 감싸는 헝겊(멱모)이나 중죄인의 머리에 씌우는 용수와 비슷하다’고 꼬집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손풍기

요즘 선풍기와 에어컨에, 손풍기까지 등장해서 무더위를 날려주는 시대가 되었다.

‘부채’는 이제 문자 그대로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할 판이다. 물론 에어컨·선풍기·손풍기 등이 훨씬 시원하다.

그러나 어찌 수천년간 사람들의 손 때가 묻어온 손바람(부채)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얼마전 나온 부채와, 부채에 새겨진 그림 이야기를 담은 책(이인숙 경북대 강사의 <선면화의 세계-우리 부채그림의 역사와 미학’>)에는 ‘부채 인문학’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중심으로 다른 연구 논문 등을 통해 ‘부채에 담긴 사람의 역사’를 더듬어 보자.

18세기 이상적인 서울풍경을 그린 태평성시도. 부채상점의 모습이다. 양 옆에는 기다란 광고판이 서있다. 오른쪽 광고판에는 ‘더위가 걱정(一念長憂天下熱)’이라고 써있다. 왼쪽 광고판에는 ‘서늘할 량(凉)’자만 보인다. 아마 ‘부채로 더위를 날려보내시라’는 광고 문구였을 것이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부채’는 말 그대로 ‘부치는 채’를 가리킨다. 그러나 부채는 단순히 ‘바람을 일으키는 채’ 이상의 존재였다.

전설상에 등장하는 부채의 기원부터 예사롭지 않다. 중국 순임금이 어진 신하에게 내렸다는 ‘오명선(五明扇)’이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부채다. 오방(五方·동서남북중)에 명정(明政·밝은 정치)을 펼치는 의미였다.

부채의 다른 이름은 ‘인풍(仁風·어진 바람)’이다. 동진의 원굉이 부채 선물을 받고 “‘어진 바람(인풍)’을 일으켜 백성을 위로할 것”(<세설신어> ‘언어’)이라고 다짐했던 데서 유래했다.|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료


‘부채’의 다른 이름은 ‘인풍(仁風·어진 바람)’이다. 동진 시대의 인물인 원굉(328~376)이 재상인 사안(320~385)에게서 부채 선물을 받고 “‘어진 바람(인풍)’을 일으켜 백성을 위로할 것”(<세설신어> ‘언어’)이라고 다짐했던 데서 유래했다.

또 육기(260~303)는 “촉의 제갈량(181~234)이 부채(白羽扇)를 손에 쥐고 군대를 지휘했다”(<우선부>)고 전했다. 이후 부채는 책사와 지휘관의 상징물이 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1506년(연산군12) 중종 반정을 일으킨 박원종(1467~1510)이 광화문 앞에서 ‘부채를 휘두르며 반정군을 지휘하는 모습’이 마치 신(神)과 같았다”(<해동야언>)고 표현했을까.

한나라 성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후궁 반첩여는 식어가는 황제의 사랑을 ‘여름철 사랑받다 대나무 상자 속에 처박히는 가을철 부채’에 비유했다. 이후 추선(秋扇·가을 부채)’은 버림받은 사랑, 쓸모 없어짐, 벼슬길의 부침, 때를 잃은 신세 등을 뜻하는 성어가 되었다.|국립중앙도서관 자료


■가을 부채의 원망

‘부채’하면 ‘원망의 노래’인 ‘원가행(怨歌行)’을 떠올린다.

“…합환 부채…임의 소매 속을 드나들며…산들바람을 일으키는구나. 가을철…산들바람이 더위와 열을 앗아갈까 늘 두렵다(常恐秋節至 凉飇奪炎熱) 대나무 상자 속에 버려져서….”(<문선> ‘원가행’)

‘원가행’의 작자는 한나라 성제(기원전 32~기원후7)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후궁 반첩여(기원전48~기원후2)였다.

경남 창원 다호리 고분(기원전 1세기)에서 확인된 부채 자루. 이중 한 고분에서 출토된 3자루는 피장자의 가슴 부위에 고이 놓여 있었다. 제정일치 사회의 지도자가 하늘신·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썼던 무구(巫具·굿 할 때 쓰는 도구)일 가능성이 있다.(출처:이건무의 ‘다호리 출토 부채자루에 대하여’, <고고학지> 10권, 한국미술사연구소, 1999)


‘합환 부채’는 두 개의 반원이 하나의 원을 이루는 부채를 가리킨다. 반첩여는 훗날 황제의 사랑이 식자 둥근 부채를 떠올리며 자신의 처지’를 ‘여름철에 사랑을 받다가 가을철 대나무 상자 속에 버려진 신세’로 표현했다. 얼마나 멋들어진 비유인가.

이후 ‘추선(秋扇·가을 부채)’은 버림받은 사랑, 쓸모 없어짐, 벼슬길의 부침, 때를 잃은 가련한 신세 등을 뜻하는 성어가 되었다.

당나라 이익(750~830)의 악부시(‘잡곡’)에 “사랑하기는 추운날 화롯불 쬐듯 하고, 버리는 것은 가을 바람에 부채 버리듯 한다”는 구절이 있다. 또 “가을부채 보듯 한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인심을 가리킨 것이다.

고구려 고분인 안악3호분과 덕흥리 고분 벽화의 주인공들은 예외없이 부채를 들고 있다. 귀한 신분의 상징물처럼 보인다.


■8가지 덕을 지닌 부채

한반도에서도 부채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았다. 경남 창원 다호리 고분(기원전 1세기)에서는 모두 6자루의 칠기 부채가 확인됐다.

이중 한 고분에서 확인된 3자루는 피장자의 가슴 부위에 고이 놓여 있었다. 발굴자는 제정일치 사회의 지도자가 사용한 무구(巫具·굿 할 때 쓰는 도구)일 가능성을 타진했다.

부채는 4~5세기 고구려 고분 벽화인 안악3호분(357)과 덕흥리 고분(408)의 주인공도 들고 있다.

지체높은 인물들이 손에 늘 쥐고있던 당대의 명품이었던 것이다. “후백제왕 견훤(재위 892~935)이 왕위에 오른 고려 태조 왕건(918~943)의 즉위 선물로 공작선(부채)을 보냈다”는 <고려사>(‘세가 태조’) 기록도 있다.

혜원 신윤복의 ‘야금모행’. 순라군이 통행금지를 위반한 남녀를 불심검문하고 있다. 한겨울, 그것도 야밤인데도 두 남자가 부채를 들고 있다. 이를 두고 연암 박지원은 “중국인들은 조선인들이 한겨울에 갓을 쓰고, 눈 내리는 날에도 부채를 드는 것을 비웃는다”고 전했다.|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이후 부채는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임금~백성이 모두 사랑하는 소지품이 되었다. 조선조 태종(1400~1418)은 부채를 찬양하는 ‘어제시’까지 지었다. “…대나무 깎아 둥근 부채 만든 뒤부터는 밝은 달 맑은 바람 이 손 안에 있구나.(朗月淸風在手中)”

이유원(1814~1888)의 <임하필기> ‘화동옥삼편’에 흥미로운 내용이 보인다.

“풀잎으로 짠 부채를 만드는데 농부들이 사용한다. 팔덕선(八德扇·8가지 덕을 지닌 부채)이라 한다.”

팔덕선이 무엇일까. 이유원은 “맑은 바람을 일으켜 주는 덕, 습기를 제거해 주는 덕, 깔고 자게 해 주는 덕, 값이 저렴한 덕, 짜기 쉬운 덕, 비를 피하게 해 주는 덕, 볕을 가려 주는 덕, 옹기를 덮어 주는 덕…”이라고 설명했다.

혜원 신윤복의 ‘전모를 쓴 여인’. 전모를 쓰고, 부채를 든 기녀가 마치 ‘런웨이 워킹’ 하듯 당당하게 걷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부채로 가린 관음증

조선인의 부채 사랑은 갈수록 도에 지나쳤던 것 같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중국인들은 조선인들이 한겨울에 갓을 쓰고, 눈 내리는 날에도 부채를 드는 것을 비웃는다”(<열하일기>)고 전했다. 혜원 신윤복(1758~?)의 ‘야금모행’에는 겨울철, 그것도 야밤에 부채를 들고 있는 두 남성이 보인다.

그렇게 부채를 시도 때도 없이 들고다니는 품이 꼴보기 싫다는 여론이 등장했다.

종이나 비단으로 제작하는 부채에 쟁쟁한 작가들이 글씨와 그림을 남겼다. 그러나 부채그림이 소품으로 인식되다 보니 다른 작품에 비해도 홀대받은 인상이 짙다. 정선, 강세황, 김홍도, 김정희 등 대가들의 부채 그림 중에서도 국보나 보물은 보이지 않는다.|국립중앙박물관·간송미술문화재단·개인 소장


조선 후기 문신 윤기(1741~1826)의 <무명자집>은 “길거리에서 청색·혹은 검은색 비단 부채로 제 얼굴을 가려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 뒤 “그 모습이 시체를 감싸는 헝겊(멱모)과 흡사하고 더욱이 중죄인의 머리에 씌우는 용수와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얼마나 꼴불견이면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것을 시체의 멱모와 죄인의 용수로까지 표현했을까.

“…내가 심히 증오하는 까닭은…내 자취는 감춘 채 몰래 남의 행동을 엿보고, 수치를 속에 숨기고서 자기의 흠을 가리는 것처럼 하기 때문….”

윤기는 이런 관음증을 꼬집으면서 “이들의 심보는 결코 정인군자가 행할 바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단원 김홍도의 ‘나들이’와 ‘빨래터’를 보면 부채로 얼굴을 가린채 음흉한 눈으로 지나가는 여인이나 빨래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는 족속들이 등장한다.

현전하는 작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부채그림으로 알려진 왕실 종친 출신 화가 이징(1581~1674?)의 ‘금니 산수화’. 금가루를 아교에 개어 그렸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패션피플의 부채

<임하필기>는 끊임없이 변하는 당대 ‘부채 패션’의 트렌드도 전한다.

“요즘 서울 사대부들은 단오선(단옷날 조정이 하사한 부채)을 기피한다. 처음에는 염조대선, 다음엔 심씨소선, 그 다음엔 곡두소선을 숭상했다…지금은 전부가 소절선을 사용한다.”

‘염조대선’은 길이가 한 자(30㎝) 남짓되는 ‘장식없는 청색 부채’다. ‘심씨소선’은 심상규(1766~1838)가 전라관찰사 시절 제작한 작은 부채(5~6치·15~18㎝)다. 연필(표준길이 10㎝)보다 짧다.

왼쪽은 신범화(1647~?)의 ‘여협도’. 말이 여성협객이지 실제로는 ‘미인도’를 그린 인상이 짙다. 오른쪽은 신명연(1808~1886)의 부채그림(‘병오청서도’). 점잖은 양반들은 이와같은 미인도를 부채에 그려놓고 감상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곡두소선(꼭지가 굽은 부채)과 소절선 등도 작은 부채다. 당시 유행한 좁은 옷소매에 놓기 위해 제작됐다.(<임하필기> ‘벽려신지’)

반면 여성들은 부채를 지니고 다닐 수 없었다. 태종 연간(1414년 11월17일)에 국법으로 부녀자의 부채 소지를 금했기 때문이다.(<태종실록>) 그러나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했던 기녀들은 괜찮았던 모양이다.

신윤복의 ‘전모를 쓴 여인’은 전모(나들이용 쓰개)를 쓰고 부채를 든 여인의 외출을 그렸다. 마치 당대 패션리더인 여성의 ‘런웨이 워킹’을 보는 듯 하다. 조선 최초의 패션쇼에 부채가 등장한 격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부채그림인 ‘금강내산’. 부채를 펴는 순간 방사형으로 뻗은 부챗살과 함께 흰 바위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는다.|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실수로 시작된 부채그림?

사람은 공백이 있으면 무언가를 끄적대고 싶어하는 ‘낙서하는 인류’이다.

게다가 종이나 비단으로 만든 부채라면 어떤가. 뭔가 작품을 남기고 싶어 안달 했을 것이다.

부채는 사각형의 정형화된 화면이 아니었다.

가을 금강산을 그린 ‘풍악전면’. 방사형 화폭을 따라 봉우리들이 뒤쪽으로 가득 솟아오르고 있다.|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어 그냥 ‘부채꼴’로 표현되는 반원형 화면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부채 그림은 접혀지는 부채면의 요철과, 뒷면의 부챗살 때문에 그리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색다른 도전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부채그림은 소매 속에서 수시로 꺼내 볼 수 있는 이동형 갤러리였다. 몇명이 모여 부채를 펴면 그곳은 저마다의 안목을 논하는 ‘은근한’ 경쟁의 장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부채는 손에 쥔 가장 우아한 예술품이었다.

사찰인 정양사를 중심으로 금강산을 그린 정선의 ‘정양사’. 천일대에서 금강산을 조망하고 있는 탐승객들의 모습이 보인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부채 글씨와 그림은 왕희지(307~364·글씨)·왕헌지(348~388·그림) 부자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왕희지가 거리의 한 노파가 만든 6각 부채에 글씨를 써준 것이 ‘부채 글씨(서선·書扇)’의 시초라 한다.

‘부채 그림(선화·扇畵)’의 시작은 극적이다. 왕헌지가 부채에 글씨를 쓰다가 실수로 붓을 떨어뜨려 오점이 생겼다.

그러자 왕헌지는 오점 위에 검은 말과 암소를 절묘하게 그려넣었다.(<진서> ‘열전·왕헌지’)

정선의 ‘소의문(서소문)에서 바라본 도성’ 그림. 부채로 사용했다가 떼어내 화첩에 보존한 그림이다. 도성안팎을 한 폭의 실경 산수로 일목요연하게 그렸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홀대 받은 부채그림

우리 역사 속 부채 그림은 어떨까. <도화견문지>(1074년 무렵 편찬)는 “고려의 귀족 그림에 부인과 안장을 지운 말(馬)을 함께 그리거나 혹은 금빛 모래 여울로 이뤄진 물가 연꽃과 꽃나무, 물새 등을 정교하게 점철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부채 그림은 기본적으로 여름철에 더위 쫓기용으로 수시로 사용되었기에 훼손되기 쉬웠다.

단원 김홍도의 ‘서원아집도’ 부채 그림. 부채꼴 각도가 180도(보통은 140도)에 달한다. 북송의 문호 소동파 등 16명이 모여 문예활동을 펼치는 내용을 그린 ‘고사인물도’이다. 이 그림에는 스승인 표암 강세황의 글이 부채의 모양에 맞게 배치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중 일부가 부챗살에서 떼어내어 독립적인 작품으로 소장되었다. 소품으로 인식되다 보니 다른 작품에 비해도 홀대받은 인상이 짙다.

정선(1676~1759), 김홍도, 김정희(1786~1856)의 부채 그림(글씨 포함) 중에서도 국보나 보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채꼴 화폭에 그린 작품은 여느 국보·보물 못지 않다.

정선의 ‘금강내산’ 및 ‘풍악전면’과 김홍도의 ‘서원아집도’ 등은 가로폭이 80㎝가 넘는 대작이다. 두 대작의 부채꼴 각도는 180도(보통은 140도)에 달한다. 파노라마 효과의 극치를 이룬다.

찔레꽃에 날아드는 호랑나비를 그린 단원 김홍도의 ‘화접도’. ‘화접도’에는 “마치 나비 가루가 손에 묻을 것 같다. 사람의 솜씨가 자연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스승 강세황의 찬사가 달려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내 손 안의 금강산

현전하는 부채그림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은 이징(1581~1674?)의 산수화이다. 선비화가 신범화(1647~?)의 ‘여협도’도 있다. ‘여협도’는 ‘의협심있는 여성 신선 그림’이지만, 실상은 당대의 문인·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미인도에 가깝다. 점잖은 체면의 당대인들은 ‘사녀도’ 혹은 ‘여협도’라는 고상한 제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미인’을 그려 품 안에 놓고 감상했다.

현전하는 부채그림의 대부분은 18세기 이후의 작품들이다. 이중 가장 인기있는 주제는 ‘금강산’이었다.

추사 김정희가 한여름에 길 떠나는 벗에게 부채를 선물하며 그려준 부채그림(송백간노형).‘ 김정희는 ‘길이 서로 잊지 말자(長毋相忘)’는 내용의 인장까지 찍어주었다.|선문대 박물관 소장


정선의 ‘금강내산’과 ‘풍악전면’, ‘정양사’ 등은 결코 ‘소품’으로 여길 수 없는 걸작이다. ‘금강내산’ 부채그림은 펴는 순간 방사형으로 뻗은 부챗살을 따라 금강전도가 드러난다. 그 사이 넓은 여백 아래에서 흰 바위봉우리가 꽃송이처럼 솟아오른다.

가을 금강산을 그린 ‘풍악전면’은 방사형 화폭을 따라 봉우리들이 뒤쪽으로 가득 솟아올랐다. ‘정양사’ 그림에는 정양사 앞 천일대에서 금강산을 조망하는 갓쓰고 한복 입은 탐승객이 보인다.

겸재의 금강산 부채그림을 두고 금위대장 출신인 박준원(1739~1807)의 찬사가 눈에 띈다.

“만이천봉 손에 쥐었으니 겸옹(정선)의 신필, 더욱 뛰어나네. 개성 사람 손에 들어갔다고 탄식하지 말게. 지극한 보물이 결국 나라 안에 있으니….”(<금석집>)

김정희의 ‘송백간노형’ 부채그림은 얼핏 김정희의 대표작인 국보 ‘세한도’를 연상케한다.|선문대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겸재의 금강산 부채 그림 중 한 점이 개성 소장가의 수중에 넘어갔던 모양이다. 박준원은 “그래도 보물이 다른 곳에 아닌 조선 안에 있으니 다행”이라고 위안하고 있다. 문인화가 허필(1709~1768)의 ‘금강산’ 부채그림도 유명했다.

허필은 “성균관 유생들은 허필의 그림이 없는 부채는 손에 잡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사랑받았다.

김정희와 권돈인(1783~1859)의 지란지교(영지와 난초처럼 향기로운 우정)를 시각화한 부채그림(지란병분·芝蘭竝芬). 권돈인은 “백년을 산다 해도 우정은 끊어질 수 없고, 모든 꽃이 시든다 해도 우정의 향기는 없앨 수 없다”는 소감을 남겼다.|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최북(1712~1786?)의 ‘금강총도’ 부채 그림도 ‘신필(神筆)’이다.

“금강산 구룡연에 들어간 최북이 술을 잔뜩 마시고 울고 웃다가를 반복하다니 ‘천하명인 최북은 마땅히 천하명산에서 죽어야 한다’고 소리친 뒤 물에 뛰어들었다가 겨우 구출됐다”(<금릉집> ‘최칠칠전’)는 최북의 일화도 유명하다.

금강산 그림 외에 역시 겸재의 ‘소의문(서소문)에서 바라본 도성도’(소의문망도성도)가 눈에 띈다.

사용하던 부채에서 떼어내 화첩으로 보존한 작품이다. 도성 안팎을 회화로 구성해 한 폭의 실경산수로 일목요연하게 그려낸 ‘한양전도’ 부채그림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화가 한종유(1737~?)가 1781년 69세를 맞이한 표암 강세황의 부탁을 받고 그려진 부채 초상화. 강세황이 그린 자화상(보물)과 닮았다.|국립중앙박물관·개인 소장


■나비 가루가 손에 묻을 듯

김홍도가 역관 이민식(1755~?)에게 그려준 ‘서원아집도’ 부채그림은 가로 81㎝에 이르는 대작이다. ‘서원아집도’는 북송의 문호 소동파 등 16명이 모여 문예활동을 펼치는 내용을 그린 ‘고사인물도’이다. 이 그림에는 강세황(1713~1791)의 글이 부채의 모양에 맞게 배치되어 있다.

대나무 숲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주인공을 그린 ‘죽리탄금도’와 찔레꽃에 날아드는 호랑나비를 그린 단원의 ‘화접도’도 단원의 부채그림이다. 특히 ‘화접도’에 쓴 스승 강세황의 찬사가 심금을 울린다.

“그림 속 나비의 가루가 손에 묻을 것 같다. 사람의 솜씨가 자연의 창조를 빼앗을만 한 것이 이런 경지에 이르는 건가. 펼쳐보고 놀라 감탄하며 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극찬이다. 대체 이런 작품을 그린 부채를 갖고 있던 ‘행운아’는 과연 누구였을까.

화가 정종여(1914~1984)가 1941년 그린 78세의 ‘위창 오세창. 나막신은 북송 소동파가 유배시절 신었던 신발이다. 고난 속에서도 의연했던 오세창을 상징하는 소품이다.|개인 소장


■우정의 향기가 부채 속에

김정희는 어떨까. 여름철 무더위에 길을 떠나는 벗 백간 이회연에게 부채를 선물하며 그림을 그리고, 자작시까지 써주었다.

“무더위에 그댈 송별하자니…차갑고 황량한 경치 그려주네…내 마음과 내 정이…이 부채에 있으니…아침 저녁으로 (나를) 자주 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

김정희는 그러면서 ‘길이 서로 잊지 말자(長毋相忘)’는 인장을 찍었다. 이 부채를 펴면 곧 나를 펴는 것과 마찬가지라니….

김정희가 ‘차갑고 황량하게 그렸다’고 한 이 부채 그림은 얼핏 ‘세한도’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김정희와 권돈인(1783~1859)의 지란지교(영지와 난초처럼 향기로운 우정)를 시각화한 부채그림(지란병분·芝蘭竝芬)도 눈길을 끈다. 벗 권돈인의 글이 심금을 울린다. “백년을 산다 해도 우정은 끊어질 수 없고, 모든 꽃이 시든다 해도 우정의 향기는 없앨 수 없네.”

부채에는 겨울철 설경과, 시원한 바닷바람, 소나무가 우거진 솔숲과 오밀조밀한 계곡의 물가풍경 등을 담았다. 무더위를 날려줄 부체에 걸맞은 그림들이다.|고려대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선문대박물관·한빛문화재단 소장


■부채에 새긴 인물화

인물을 그린 부채그림 중에는 ‘표암 강세황의 69세 소상’이 흥미롭다. 1781년(정조 5) 69세를 맞이한 강세황이 화가 한종유(1737~?)에게 부채를 가져가 ‘그려달라’고 부탁한 작품이다.

강세황은 부채 그림에 “화가 한종유가 그려준 초상화가 제법 (나와) 비슷하니 손자에게 전한다”고 썼다. 가만 보면 보물로 지정된 강세황의 초상화(2점) 얼굴과 제법 비슷하다.

인물화 가운데는 정종여(1914~1984)가 그린 위창 오세창(1864~1953)의 초상화도 눈길을 끈다.

1941년 78세가 된 위창을 그린 것이다. 용머리로 장식한 지팡이와 나무 나막신이 이채롭다.

그중 나막신은 북송의 소동파가 유배시절 신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난 속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상징하는 소품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독립운동가이자 개화운동가, 서예가, 전각가, 언론인, 수집가 등으로 이름을 떨친 위창에게 꼭 맞는 물품이다.

이밖에 겨울철 설경과, 시원한 바닷바람, 소나무가 우거진 솔숲과 오밀조밀한 계곡의 물가풍경 등이 부채에 담겨있다. 무더위를 날릴 부채에 걸맞은 그림들이다.

어떠한가. 그동안 눈여겨 보지 않았던 부채 그림 속에는 이렇게 녹록치 않은 인문정신이 담겨있다.

(이 글을 위해 이인숙 경북대 강사가 자료와 도움말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부채그림 속 인문학을 더 알고싶다면 이인숙의 ‘<선면화의 세계-우리 부채 그림의 역사와 미학>, 눌와’를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기사에 다 실을 수 없는 80장의 부채그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참고자료>

이인숙, <선면화의 세계-우리 부채 그림의 역사와 미학>, 눌와, 2024

김삼대자, ‘부채의 기원과 변천’, <미술자료> 36호, 국립중앙박물관, 1985

이건무, ‘다호리 출토 부채자루에 대하여’, <고고학지> 10권, 한국미술사연구소, 1999

진가려, ‘동아시아 회화의 반첩여 이야기 수용양상’, 성균관대 석사논문, 2022

고혜련, ‘반첩여 도상’, <중국사연구> 제58집, 중국사학회, 2009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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