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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여사 문자' 블랙홀에 빠진 국민의힘 전대
총선 당시 1·2차 尹-韓 충돌 연장선으로 이해
총선 패배 복기한 韓, 채 상병 특검 등 차별화
尹, 여소야대 이어 당정관계 주도권 놓칠 위기
金 여사 문자 '게임 체인저' 될지는 두고 봐야 
영부인 리스크·정치자산 소모 등 후유증 우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나경원(왼쪽부터), 윤상현, 원희룡, 한동훈 당대표 후보가 9일 서울 중구 TV조선 사옥에서 진행된 첫 TV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국민의힘 새 당대표를 선출하는 7·23 전당대회가 '김건희 여사 문자' 블랙홀에 빠졌다. 전대를 계기로 총선 패배 이후 보인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김 여사가 지난 1월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동훈 후보에게 보낸 명품백 대응 관련 텔레그램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당권 후보들이 연일 이를 두고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나경원·원희룡·윤상현 후보는 김 여사 문자를 한 후보를 겨냥한 공세 소재로 삼고 있다. 한 후보가 대국민 사과 의사를 밝힌 김 여사 문자를 무시함으로써 국면 전환 기회를 놓쳐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 후보 간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배신자론'과 맞닿아 있다. 반면 한 후보는 김 여사 문자가 "사과가 어렵다"는 취지였으며 윤 대통령도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반박한다. 한 후보 측은 두 사람(한 후보와 김 여사)만 알 수 있는 문자 내용이 6개월 후 언론에 공개된 배후와 경위에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란 판세를 흔들려는 용산 또는 친윤석열계가 있다고 본다. 친윤계 지원을 받는 원 후보와 가장 격한 충돌을 벌이는 배경이다.

윤 대통령과 한 후보 관계에서 비롯된 이번 충돌은 총선 때 1, 2차 윤-한 충돌의 연장선상에 있다. 협력 관계에서 갈등 관계로 돌아선 미래 권력이 칩거 2개월여 만에 조기 복귀를 선언하면서 벌어진 권력투쟁이 본질이다. 이 과정에 등장한 김 여사 문자는 상대를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후보 간 충돌 일지. 그래픽=강준구 기자


김 여사 문자로 '윤-한 갈등'만 재확인



이번에 공개된 다섯 개의 김 여사 문자는 1차 윤-한 충돌 전후(1월 15~25일)에 보낸 것이다. 김경율 비대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1월 17일) 등으로 비대위 내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 요구가 있었고, 한 후보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응"(1월 19일) 등으로 호응하던 시기였다. 이에 격노한 윤 대통령이 1월 21일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한 후보에게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1차 윤-한 충돌이 발생했다. 이틀 뒤인 1월 23일 한 후보는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 대통령에게 90도 인사와 악수를 했고 1월 29일엔 윤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하면서 갈등을 봉합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김 여사 문자 내용 가운데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다"(1월 15일), "대통령께서 지난일에 큰 소리로 역정을 내셔서 맘 상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1월 25일)는 대목은 김경율 발언 이전과 서천시장에서의 악수 이후에도 윤 대통령과 한 후보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 의향 여부를 둘러싼 해석은 엇갈리지만, '윤-한 갈등이 지속돼 왔다"는 사실은 분명히 드러난다.

여권에선 두 사람의 균열이 생긴 계기로 지난해 12월 19일 한 후보의 발언을 꼽는다.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내정됐다는 말이 돌던 시기였다. 그는 야권이 주장하던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 "법 앞에 예외는 없다"면서도 "시기(총선)를 특정한 악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조선일보 등은 '총선 후 김건희 특검 급부상'이라고 보도했고, 윤 대통령이 불쾌함을 보였다는 것이다.

2차 충돌은 한 후보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인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즉시 귀국과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을 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대통령실은 처음엔 거부했으나 이틀 뒤 이를 수용했다.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민심 악화를 우려해 대통령실이 양보하는 모습을 취한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23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서천=연합뉴스


총선 때와 다른 韓의 자발적 등판



3차 윤-한 충돌은 1, 2차 때와 성격이 판이하다.
①우선 한 후보의 등판 과정
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6일 한 후보를 여당 대표로 발탁했다. 총선을 지휘하는 수장으로 선거 경험이 전무한 법무부 장관을 발탁된 것 자체가 파격이다. 공천 등 과정에서 용산 의중을 반영하기 위한 '대리인' 으로 점찍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 후보는 비례대표 공천 등을 두고 '찐윤' 이철규 의원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한 후보는 전대를 앞두고 "총선 패장이 복귀할 명분이 없다"는 친윤 견제를 받았음에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민의힘을 만들겠다"며 출마를 결행했다.

②총선 패배 이후 차별화 의지도 선명
해졌다. 1, 2차 윤-한 충돌 이후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등에 반기를 들지 않으면서 어정쩡한 차별화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전대 출마선언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의 조건부 수용과 수평적 당정관계를 앞세웠다. 용산과 친윤이 불편한 심기를 보였지만, 한 후보는 "제가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대한민국과 국민"이라고 응수했다. 국가와 국민이 대통령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말로, 여권에선 '가시 있는' 발언으로 읽혔다. 윤 대통령을 일약 대권주자 반열에 올린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조직에 충성할 뿐이다"는 발언과도 겹친다.

③이번 전대는 당정관계 주도권을 확실히 바꿀 수 있는 기회
다. 윤 정부를 심판한 총선 결과와 여전히 낮은 윤 대통령 지지율로 당정관계의 중심축을 당으로 가져올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한 후보가 수평적 당정관계를 강조하는 배경이다. 반면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 당에 대한 장악력까지 놓친다면 조기 레임덕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양측이 누가 향후 국정운영 주도권을 쥐느냐의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총선 여론을 의식했던 1, 2차 충돌과 달리 이제는 "양측이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부를 만큼 사생결단 식 대결을 펼치고 있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 방문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9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75주년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워싱턴 D.C.로 향하는 공군 1호기 탑승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호놀룰루=뉴시스


김 여사 문자, 전대 '게임 체인저' 되나



향후 김 여사 문자가 전대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당대표는 당원투표 80%와 역선택을 방지한 국민여론조사 20%를 합산해 선출한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 2위 간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김 여사 문자가 당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느냐에 따라 전대 결과가 갈릴 수 있다. 적어도 한 후보의 과반 득표를 저지할 수 있다면, 반한동훈 세력을 모아 결선투표에서 뒤집기를 노릴 수 있다.

당원들의 반응은 계파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친윤 주장처럼 검사 시절 김 여사와 문자를 수 백 개씩 주고받던 한 후보가 이제 와서 '사적 통로'라고 답하지 않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반응도 있다. 반면 김 여사가 의지가 있었다면 한 후보의 답변 없이도 사과할 수 있었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2월 KBS 신년대담에서 윤 대통령이 "영부인이 박절하기 어렵다"고 한 것은 애초부터 사과 의지가 없지 않았냐는 주장이다.

여론조사에선 아직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7, 8일 실시한 YTN·엠브레인리퍼블릭의 국민의힘 당대표 적합도 조사 결과,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에서 한 후보는 45%로 1위를 기록했다. 원 후보는 11%, 나 후보 8%, 윤 후보 1% 순이었다. 없다(27%), 잘 모름·무응답(8%) 비중도 적지 않았다. 국민의힘 지지층에 한정할 경우, 한 후보는 61%, 원 후보 14%, 나 후보 9%, 윤 후보 1%였다. 결선투표를 가정한 조사에서도 한 후보는 모든 후보를 대상으로 과반을 기록했다. 문자 공개 이전 실시한 한국갤럽(6월 25~27일) 조사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에서 한 후보는 38%, 나·원 후보 각각 15%, 윤 후보 4%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한 후보는 55%, 원 후보 19%, 나 후보 14%, 윤 후보 3%였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윤상현(왼쪽부터), 한동훈, 나경원, 원희룡 당대표 후보가 지난 8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 전북, 전남, 제주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광주=뉴스1


영부인까지 등장시켜 후유증 클 듯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갈등, 전대에서의 과열 경쟁은 보편적 정치 현상이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기의 권력투쟁에다 이례적으로 영부인까지 등판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징후들이다. 여권에서도 "이번 내분으로 보수가 자멸할 수 있다"며 전대 이후 극심한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다.

김 여사 문자 공개를 둘러싼 음모론이 난무하면서 김 여사의 이미지가 더 악화했다. 김 여사 문자가 한 후보의 당선을 저지할 수 있는 카드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당무 개입 등 '영부인 리스크'라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김 여사를 무조건 옹호하는 태도는 "김 여사만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느냐"며 특검법을 주장하는 야권에 빌미를 추가해 준 꼴이다. 향후 김 여사를 겨냥한 야당의 공세로 여당이 내분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한 충돌에 따른 비전 대결 실종으로 보수의 자산으로 꼽혀온 정치인들의 상처도 불가피해졌다. 차기 대권 후보군에 속한 한 후보와 원 후보는 계파 싸움에만 몰두하는 모습만 남게 됐다. 보수 험지인 수도권에서 5선의 경륜을 자랑하는 나 후보와 윤 후보는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차기 행보에도 먹구름이 낄 가능성이 있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한국갤럽, 엠브레인리퍼블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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