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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새벽 4시 52분 부산지검 마약범죄특별수사팀 수사관 3명이 인천공항에 착륙한 비행기에 들이닥쳤다. 항공기 앞쪽 출입구를 통해 진입한 수사관들은 이내 한 비지니스석 앞에 멈춰섰다. 태국에서 마약류를 국내 밀수·유통한 조직의 마지막 운반책 조영하(가명‧22)씨를 검거하기 위해서였다.

“조영하씨, 마약 밀수 혐의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불리한 이야기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수사관의 고지에 조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14개월에 걸친 필리핀 도피를 접고 자진입국하는 길이었다. 조씨가 수사관들에게 붙들려 비행기를 빠져나오는 모습은 영화 ‘범죄도시4’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했다.

부산지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 수사관들이 지난 6월 11일 새벽 국내로 필로폰 등 마약류를 밀수한 혐의를 받는 일당의 마지막 운반책을 인천공항에서 체포하는 모습. 사진 대검찰청
부산지검이 1년 4개월에 걸친 추적 끝에 조씨를 포함해 태국에서 232억원대 마약류를 밀수한 일당 전원을 검거했다. 부산지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팀장 윤국권 강력범죄수사부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향정 혐의 등으로 밀수 총책 A씨와 해외에서 국내로 마약을 들여온 운반책 등 11명을 검거해 기소했다고 9일 밝혔다. 총책 A씨 등 일당은 2022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태국에서 국내로 필로폰, 케타민 등 마약류 약 6.8kg(22만6000명 투약분)를 밀수하고 유통시킨 혐의를 받는다.



태국서 잠복수사, 공조로 마약범 잡았다
부산지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의 팀장인 윤국권 강력범죄수사부장(왼쪽)과 이홍석 검사. 양수민 기자
부산지검 특수팀은 2023년 3월 필로폰을 속옷에 숨긴 채 김해공항으로 입국한 남성 운반책 2명을 검거하며 이 수사를 시작했다. 이들이 가져온 필로폰은 약 1.1kg로 총 3만명 이상이 투약 가능한 용량이었다. 사건을 수사한 이홍석 검사는 “뒤에 더 큰 조직이 있을 거라는 심증이 들었다”며 “별다른 직업이 없는 남성 두 명이 밀수한 것 치고는 상당한 분량이었고, 이들이 출발한 태국은 최근 국내로 마약 밀수가 활발한 국가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운반책 2명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해 나온 자료는 이 검사의 심증을 확신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마약 밀수와 관련된 수백 개의 통신 내역과 몸에 ‘조폭 문신’을 새긴 한 남성의 얼굴 사진이 앨범에서 거듭 나왔다. 이 검사는 그 사람이 밀수 총책이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했다. 여럿이 모인 사진에서 상석에 앉은 모습이 다수 발견돼서다. 운반책들을 추궁했지만 총책의 존재는 부인했다.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는 이 검사는 운반책들의 전과를 조회했고, 비슷한 범죄 전력에서 총책으로 추정되는 이와 비슷한 얼굴을 가진 피의자를 찾아냈다.

이 검사는 “얼굴이 너무 비슷했습니다. 포렌식으로 취득한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대검에 감정의뢰를 했고 동일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고 했다. 증거를 들이미니 잡아 떼던 운반책들도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거듭된 추궁 끝에 총책이 태국 파타야 한 고급빌라에 은신처를 뒀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마약 밀수 혐의를 받는 일당의 운반책 두 명이 태국으로 입국하는 모습(왼쪽), 총책이 머무는 태국 은신처에서 수영하는 모습. 사진 대검찰청
다음 단계는 국제 공조. 태국 현지에 파견된 검찰 수사관과 개인 메시지로 실시간 소통했다. 총책의 은신처를 정확히 특정해 이를 근거로 태국 마약청과 이민국에 협조를 구했다. 태국 수사기관도 움직였다. 총책의 주거지 인근에서 4일간 잠복수사를 거친 끝에 그를 검거할 수 있었다. 태국 정부에서 총책에 대한 강제추방 결정을 하자마자 부산지검 수사관들은 태국 방콕의 공항으로 향했다. 이 총책은 국적기에 탑승하자마자 검찰 수사관에 인계돼 체포됐다. “국적기여야 한국의 형사 사법권이 미칠 수 있다”고 윤 부장검사는 설명했다.

총책이 잡힌 후에는 사건이 술술 풀렸다. 총책과 운반책이 고등학교 동창이었다는 관계가 밝혀졌고, 검거된 운반책 2명 외에 또 다른 동창들도 마약 밀수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밀수범 중에는 총책의 전 여자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태국에서 마약류를 반입할 때마다 그 중량에 따라 300만~1000만원의 대가를 받았다. 총책의 은신처인 태국 방콕의 고급 리조트에서 여행과 관광을 즐기기도 했다. 여행의 끝은 언제나 밀수였다. 총책은 밀수범들의 허벅지와 속옷 등에 마약을 숨기는 방법을 직접 강연했다고 한다.

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에 근무하는 이홍석 검사가 지난 5일 부산지검 브리핑실에서 기자에게 마약 밀수 조직의 운영방식에 대해 설명 중이다. 양수민 기자
이홍석 검사는 태국 마약청‧이민국과 공조해 이들 일당을 타진한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4일 대검찰청이 선정한 2024 상반기 모범검사로 선정됐다. 이 검사는 “마약 수사관들의 수사 기법과 노하우가 있었기에 밀수 조직의 일망타진이 가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검찰도 마약 수사에서 국제 공조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검찰청은 동남아시아 국가로부터 마약 밀수가 활발히 이뤄진다는 점에 착안해 2012년 아‧태 마약정보조정센터를 설립해 동남아 10개국과 지원과 공조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10월 29일에는 제5차 아‧태 마약정보조정센터 워크숍이 진행될 예정이다.

대검찰청은 “태국 뿐 아니라 마약류가 주로 유입되는 다른 국가들과도 원활한 공조 수사가 진행될 수 있게 하겠다. 신속한 공조를 위해 수사관 파견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부장검사는 “강력사건은 과학수사기법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있다”며 “DNA분석과 사진‧영상 감정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앞으로도 마약 밀수 조직을 엄단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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