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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보험, 한방병원 미스터리]
치료 종료 기준 없고 제한도 없어
경상환자 한방치료비 양방의 3배
줄줄 새는 보험금... "기준 마련해야"
게티이미지뱅크


초보 운전자 임모(34)씨는 지난해 가벼운 교통사고를 냈다. 골목길 끝에 멈춰 있다가 끝 차선으로 합류하는 과정에서 뒤에서 오는 택시를 보지 못해 급정거를 해야 했다. 시속 10㎞도 되지 않는 속도였기 때문에 사고 규모는 경미했다. 당시 차 안에서 자고 있던 세 살 아이가 깨지도 않을 정도로 충격이 작아 처음엔 사고가 일어났는지도 몰랐을 정도였다.

하지만 '뒷목을 잡고' 차에서 내린 택시기사는 고통을 호소하며 곧장 검사를 받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당연한 듯 향한 곳은 한방병원. 외견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기사는 나흘이나 병원에 입원했고, 한방병원은 그동안 무려 80만 원어치 치료를 제공했다. 임씨가 가입한 보험사는 결국 기사에게 치료비뿐 아니라 '보상금' 260만 원까지 추가로 지불하겠다고 약속하고서야 사건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임씨는 "차 범퍼에 아주 작은 긁힘 자국만 날 정도의 사고였는데, 애초에 치료비가 80만 원씩이나 나온 것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보험사에서 '기사가 한방병원에 드러누웠는데 이 정도면 싸게 막은 것'이라는 반응을 보여 씁쓸했다"고 말했다.

가벼운 교통사고에 상식처럼 통용되는 말이 있다. "일단 한방병원에 가라." 본인 비용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온갖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보상금 명목으로 현금까지 챙길 수 있다. 특히 상대방 차주나 보험사가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 때 한방병원 입원은 '어디 한번 당해보라'는 마음이 들어간 일종의 징벌적 선택이 되기도 한다. 어쩌다 한방병원은 치료라는 본질적 역할을 넘어 자동차보험의 공공연한 적이 됐을까.

무기한·무제한 배상... 한방병원과 한의원

A씨 사고 당시 피해차량 사진. 붉은 원 안에 있는 자국 외엔 차량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지만, 피해자와 동승자는 약 2년 4개월 동안 통원치료를 받으며 총 1,680만 원가량의 치료비를 청구했다. A씨 제공


일단 자동차사고 환자에 대한 한방병원 치료에는 '끝'이 없다. 치료 종료의 기준이 없어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는 한 치료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A씨의 경우 4년 전 정차하고 있던 차를 들이받아 뒷범퍼를 살짝 긁는 사고를 냈는데, 차에 타고 있던 40대 남성 운전자와 30대 여성 동승자가 이후 무려 2년 4개월 동안 '뒷목' 통증을 호소했다고 했다. 운전자는 그 기간 한방병원 통원 치료만 137회 받았고, 동승자는 입원 4일을 포함해 총 129회 통원 치료를 받았다.

2년 남짓 발생한 총 치료비만 1,684만 원. 약침에만 320만 원이 넘게 들어갔고, 부항술(약 260만 원)과 추나(약 90만 원)도 꾸준히 청구됐다. 구술과 경혈침술, 침전기자극술 등 '기타'로 묶인 한방치료에는 무려 880만 원어치 보험금이 나갔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보험사 관계자는 "'근본적 치료'를 한다는 한방병원 치료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며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는 한의사 소견이 있는 한 보험사에서 딴지를 걸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특정 병증에 맞는 치료라는 게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환자들은 한방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한꺼번에 받는다. 하루에 여러 개의 병원을 찾아 두 배, 세 배로 치료를 받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2022년 7월 발생한 한 사고에서 피해 차량에 타고 있던 운전자와 동승자는 자동차사고 부상등급표에서 가장 낮은 '부상 14급(사지 단순 타박)'에 해당했지만, 약 10개월간 각자 500회 가까이 통원 치료를 받으면서 4,000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청구했다. 이들은 매달 5~7개의 다른 한의원에 4, 5일 간격으로 방문했고, 한 달에 26번이나 같은 병원에 통원한 적도 있었다. 10개월이나 이어진 '퍼포먼스' 끝에 보험사는 결국 둘에게 각각 700만 원의 합의금을 지급했고, 그제야 둘의 부상은 '완치'됐다.

양방 진료비 넘어선 한방 진료비

그래픽=김대훈 기자


한방병원이 교통사고 경상 환자에게 일종의 '꿀팁'이자 상식이 되면서 한방진료비는 2021년부터 양방 진료비를 넘어섰다. 2019년만 해도 9,579억 원으로 총 진료비 대비 43.2% 수준이던 자동차보험 한방 진료비는 지난해 1조4,888억 원(58.1%)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양방 진료비(1조2,497억 원→1조656억 원)가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단순히 교통사고 환자가 늘어서라고 보기 힘들다. 통상적으로 한방병원에서는 양방병원 대비 진료기간이 2배 가까이 길고, 청구 항목 대부분이 비급여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전체 환자의 약 94%를 차지하는 상해급수 12~14급 경상환자가 한방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이 뚜렷해졌는데, 지난해 기준 대형 손보사 4곳의 경상환자 1인 평균 진료비는 한방병원에서 100만7,000원으로 양방병원(32만5,000원)의 3배가 넘었다. 보험사 관계자는 "골절 등 특별한 외상이 없는 환자도 한방병원에 가면 일단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고비용의 영상검사를 받고, 한방치료도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받는다"며 "특히 규모가 작은 한의원보다 병상 수가 많은 한방병원에 간 환자에게서 진료비가 훨씬 많이 청구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의업계 "환자 권리 침해" 반발

그래픽=김대훈 기자


보험사들이 교통사고 피해자가 요구하는 치료비를 모두 내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동차종합보험 자체가 대인에 대한 배상책임 한도가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본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 개인의 도덕적 해이도 상당하다. 한방병원이 특히 문제가 되는 건 한방치료에는 '적당한 치료 수준'에 대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이유가 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동일한 효과를 내는 치료를 한꺼번에 10개씩 청구하기도 하는데, 어느 수준이 적당한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보니 달라는 대로 내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과잉 진료로 의심되더라도 이의 제기 절차를 밟거나 분쟁심의위원회 또는 소송을 진행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워낙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보험사 내부에선 보상 조기 종결을 위해 '합의금 주고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보험사뿐 아니라 금융감독원에 빗발치는 악성 민원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지난해부터 자동차사고 경상환자의 과잉 진료 방지를 위해 치료가 4주를 넘어가면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거나 입원일수를 제한하는 등 정부가 꾸준히 제도를 개선하고 있지만,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는 한의계 반발도 상당하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바뀐 정부 방침에 "일부 극단적 사례를 들어 선량한 환자들까지 피해를 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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