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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국내 철도요금은 2011년말 이후 13년째 동결돼 왔다. 연합뉴스
지난해 전기요금이 오른 데 이어 8월부터는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이 인상된다. 가급적 공공요금 인상을 최소화하겠다는 게 기획재정부 방침이지만 막대한 부채와 적자에 시달리는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경영난을 더는 놔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들이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과 버스 요금 등이 오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요금이 무려 13년째 제자리에 묶여있는 공기업이 있다. 바로 전국적으로 고속철도와 일반철도, 광역철도를 운영하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다. 9일 코레일과 철도업계에 따르면 철도운임, 즉 열차표 값이 마지막으로 오른 건 13년 전인 2011년 12월로 당시 인상률은 2.7%였다. 이후 열차요금은 최근까지 단 한 차례도 오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지난 13년 동안 약 31차례에 걸쳐서 각종 공공요금이 올랐지만 유독 철도만 동결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부산 간 KTX 편도요금(일반실 기준)이 2012년부터 현재까지 5만 9800원에 묶여있는 사이 같은 구간의 고속버스(우등 기준) 요금은 3만 2600원에서 4만 9700원으로 52.5% 인상됐다.
신재민 기자

서울의 지하철 요금도 900원에서 1400원으로 55.6% 올랐다.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서울 시내버스 요금 인상률은 66.7%에 달한다. 택시 역시 기본요금이 2400원에서 2배인 4800원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평균 24%가량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각종 요금과 물가가 적지 않게 올랐다는 의미다.

이처럼 다른 요금과 물가가 오르는 사이 철도요금만 동결되면서 코레일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더 크게 늘었다. 고속열차인 KTX와 KTX-이음을 비롯해 ITX-새마을, ITX-마음 등 각종 전철 운행에 사용되는 전력비용이 2012년 2502억원에서 지난해에는 2배가 넘는 5683억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코레일이 기록한 매출액(5조 8200억원) 대비 9.8%로 번 돈의 10% 가까이를 전기료로 내야 한다는 얘기다.

또 매년 이어지는 영업손실과 늘어나는 부채로 인한 이자비용도 상당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코레일의 부채는 20조 4000억원이다. 2020년 17조 4000억원이던 것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3년 새 3조원이 증가했다. 이 때문에 이자 비용이 지난해에만 3619억원에 달했다. 하루 이자만 약 10억원꼴이다.
KTX와 KTX 산천을 비롯, 코레일이 운영하는 여객열차는 거의 대부분 전기를 이용해 달리는 전철이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이후 2020년부터 누적된 코레일의 영업손실은 2조 9000억원에 이른다. 특히 코로나19 초기 열차 승객이 급감한 탓에 2020년 한해에만 1조 17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봤고, 2021년에도 9000억원에 육박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어렵게 영업손실을 줄여도 이자비용 등으로 부채가 쌓이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한문희 사장 등 코레일 경영진은 줄곧 “이자 비용을 감당할 수준의 요금인상이 이뤄져야 부채를 줄일 수 있다”며 “세계 주요국가의 철도요금과 비교해도 우리 요금이 상당히 저렴한 수준”이라고 주장해왔다. 코레일에 따르면 KTX 요금을 100원이라고 할 때 일본의 신칸센은 148원, 프랑스 테제베(TGV) 234원, 독일 이체(ICE)는 305원 등으로 우리보다 23~68%가량 비싸다.

이러한 대규모 영업손실과 부채 등이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코레일은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주관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올해를 포함해 4년 연속 최하위권에 해당하는 'D' 이하를 받았다. 이 탓에 코레일 임직원은 4년 연속 성과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됐다. 물론 각종 열차사고와 직무급제 미도입 등 다른 감점요인도 있지만 현 상태에서는 경영실적 관련 정량지수를 맞추기 어렵다는 게 코레일의 고충이라고 한다.
대전역 옆에 있는 코레일 본사. 연합뉴스

코레일과 철도업계가 요금 인상에 매달리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안전과 서비스 개선을 위한 재원 마련 때문이다. 철도안전을 위한 보수장비·유지보수설비 고도화 및 노후차량 부품 구입(3조 1000원), 철도차량 구매(2조원)와 노후역사 신축개량·교통약자 시설 및 자동화 설비 설치(1조원) 등에 모두 6조원이 넘는 돈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코레일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철도운임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공공요금과 물가관리를 책임지는 기재부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지난 3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도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공공요금 인상 요인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철도안전과 고객서비스 향상을 위해서라도 일정수준 철도운임 인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장호 한국교통대 철도공학부 교수는 “철도 운영기관의 주요 비용항목이 인건비와 동력비라는 점을 고려하면 철도운임 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며 “지금처럼 10여년 만에 한 번 올리기보다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좀 더 짧은 주기로 조금씩 올리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이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장차관들과 2024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코레일 자체 노력만으로 경영난이 해결되기 어렵다는 전제에서 철도요금의 점진적 인상이 현실적인 해법이 될 것”이라며 “과도한 부채와 재무 위기는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용자의 부담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보다 합리적인 경영진단을 거쳐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경철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밀한 경영진단을 통해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코레일의 책임과 정부 역할, 국민이 맡을 일을 우선 정리해야 한다”며 “그 결과 요금인상이 해법으로 도출되는 게 합리적인 정책절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요금을 원가 이하로 책정해온 우리나라의 대중요금정책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차제에 요금을 포퓰리즘이 아닌 원인파악 및 해소 관점에서 결정하는 방식으로 요금정책을 개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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