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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인권운동 최전선 12]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
파도손 이정하 대표가 2014년 강제입원된 정신병원에서 격리·강박을 겪고 난 뒤 그린 그림. 본인 제공

그날, 물속 깊숙이 가라앉던 느낌을 잊지 못한다. 세상의 끝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생의 마지막이 될 것 같던 그 찰나에 누군가가 날쌔게 다가와 몸을 잡아채지 않았다면, 오늘 따위는 없었다. 눈을 떠보니 뭍이었다. 살았다.

한남대교 인근 선착장에서 안경과 신발을 벗어두고 강물에 뛰어든 것은 2008년 6월20일 자정의 일이었다. 낮에는 자취방에 있던 책을 모두 꺼내 골목에 쌓아놓은 터였다. 나름 삶을 정리하는 수순이었다. 조현병이 급성기로 치닫고 있었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때 누군가가 ‘슈퍼맨’처럼 뒤따라 강물에 뛰어들어 구조해준 셈이다.

119로 인계돼 중앙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슈퍼맨’의 정체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남자라고만 했다.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자취방에서부터 줄곧 지켜보다가 한남대교까지 따라온 것 같았다. 3년여간 ‘슈퍼맨’을 원망하며 지냈다. ‘도대체 왜 건져냈지? 내 인생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라고 말이다.

도대체 날 왜 건져냈지?

운명이었다, 고 생각한다. 그날 이후 살아서 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바로 정신장애인 인권운동이다. 구조된 직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되었지만, 그즈음부터 비슷한 처지에 있던 이들과 ‘파란 마음 하얀 마음’(다음)이라는 채팅방에서 소통하게 됐다. 1년 뒤부터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온라인 카페도 만들었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씨앗은 그때 뿌려졌다.

‘2024 인권운동 최전선’의 12번째 주인공은 정신장애인 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는 ‘파도손’의 이정하(53) 대표다. ‘파도손’은 ‘마음이 파도칠 때 서로 잡는 손’이라는 의미로 정신장애인 당사자 400여명이 회원으로 모인 비영리법인의 이름이다.

이 대표와 만남은 필연이었다. 최근 한겨레가 보도한 춘천ㅇ병원 격리·강박 중 사망사건 취재 과정에서 조언 요청을 위해 소개받은 이 분야 전문가 목록에 이 대표가 있었다. 2000년부터 조현병으로 12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그중 8회가 강제입원이었다고 했다. 격리·강박도 여러 차례 당했다. 오랫동안 정신장애를 앓아온 당사자로서,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운동 대열의 맨 앞줄에 서 있었다.

이정하 대표가 지난 6월10일 본인이 그린 ‘진실의 사과 프로젝트’라는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진실의 사과는 진실한 마음을 의미하며, 거짓 없는 동물들이 진실의 사과를 머나먼 어떤 행성에서 키운다. 거짓된 사람들로 인해 망가져 가는 세상의 상처와 고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마음이 파도칠 때 내미는 손

춘천ㅇ병원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치료를 통해 정신장애인을 구조해야 할 정신병원에서는 너무나 쉽게 환자를 가두고 묶으며, 죽어 나가도 책임지지 않는다. 한국의 정신병원은 이 대표를 한강에서 구한 ‘슈퍼맨’ 같은 존재로 평가받지는 못한다. 이런 현실에서 ‘급성’ 위기에 처한 동료들을 돕기 위해 정신장애인들끼리 손을 내미는 ‘파도손’은 서로가 서로를 구출하는 ‘작은 슈퍼맨’들의 연대체인 지도 모른다.

6월10일 서울 중구 충무로 인쇄골목 한가운데 위치한 ‘파도손’ 사무실에서 이정하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외장 하드에 담아온 춘천ㅇ병원 격리·강박실의 시시티브이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 속에서 춘천ㅇ병원에 응급입원됐던 김형진(가명·45)씨는 신음하고 절규하고 호소하다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세상에…”를 연발하던 이 대표는 춘천ㅇ병원 격리·강박실 사망사고에 대한 의견과 함께 대한민국 정신장애인들이 맞서고 있는 현실의 파도에 관해 말했다. 본인이 맞서 부딪치고 깨지며 이겨냈던 무시무시한 파도에 관해 말했다. 조현병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현직 화가로서, 그 파도가 선물한 예술의 세계에 관해서도 말했다. 다음은 대면 인터뷰와 전화로 이어진 일문일답.

2014년 정신장애인 홍은영씨가 한국의 정신장애인들이 당하는 격리·강박 상황을 묘사해 유엔에 보낸 그림. 파도손 제공

2014년 정신장애인 홍은영씨가 한국의 정신장애인들이 처한 정신병원의 실상을 표현해 유엔에 보낸 그림. 파도손 제공

2000년 첫 강제입원…항의하면 묶여

― 시시티브이를 보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이건 고문이고 살인이에요. 영상 속에서는 계속 5포인트 강박을 하는데, 요즘은 5포인트 강박 잘 안 하는 걸로 알아요. 묶여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수치스럽고 비참하다는 걸, 묶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사실 강박 당하면 한두 시간도 견디기 힘들어요. 간지러운데 긁을 수도 없고, 또 피가 떡처럼 된다고 하거든요. 혈액이 응고되는 거죠. 피가 안 통하니까 온몸의 근육이 굳는 느낌이 들어요.

범죄자한테도 이렇게 안 하잖아요. 감옥에서 수감자가 강박 당해서 사망한 적 있나요? 여기는 치료를 하는 병원이지 처벌기관이 아니라고요. ‘액팅 아웃’(충동적 폭력 행위)한다고 격리·강박한다는데, 그건 변명과 핑계인 경우가 많아요. 그저 진압하기 위한 거죠. 치료행위가 아닙니다. 한겨레가 보도했지만, 광주 천주의성요한병원엔 아예 강박하는 끈이 없잖아요. 격리·강박 안 하고 진정시키는 게 의료진 실력이에요.”

― 정신병원에 여러 번 갇혀 묶였다고 들었어요.

“2000년 10월 처음 강제입원되었어요.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닐 때였는데, 어머니가 어느 날 제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놀라 대학병원 정신과로 데려갔어요. 그곳에서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진정이 되지 않아 바로 강제입원됐고요. 그때 처음 항의하다가 묶였어요. 얌전해지면 풀어줬는데, 큰 소리를 내면 또 묶였어요. 그 이후 다른 병원에 또 강제입원이 되었는데 의사는 ‘평생 병원에 입원해야 할지도 모른다. 회복 가능성은 5%’라고 얘기했어요.

그 뒤 2001년에 두 번, 2008년, 2009년, 2010년, 2012년, 2014년에 한 번씩 강제입원됐어요. 갈 때마다 3개월 이상 있지 않았지만, 강제입원 과정이 굉장히 폭력적이었어요. 당시는 강제입원이 전체 입원 비율의 90%를 넘을 때예요.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 가족의 동의를 얻어 보호입원(비자의 입원) 형태로 들어갔어요. 지금은 법이 개정되고 절차가 까다로워져서 강제입원이 35% 정도로 줄었어요. 선진국은 전체 환자 중 강제입원 비율이 5%에 불과한 것으로 알아요.”

2022년 1월8일 오전 5시33분경, 춘천ㅇ병원에서 13일째 격리·강박 중이던 김형진(가명·45)씨가 사망 한 시간여 전 간호사에게 강박을 풀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유족 제공 CCTV 갈무리

그곳은 정신병원 아닌 포로수용소였다

― 춘천ㅇ병원 병원장과 의사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어요.

“병원장이 책임자이고 처벌받아야 하는데, 간호사만 검찰에 송치돼 벌금형 처분받은 건 이상해요. 병원이 지역 안에서 카르텔이 있지 않은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병원장을 구속해야 할 사안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병원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이 또 있을 거예요.

저도 병원에서 사망 직전 실려 나가는 환자를 봤어요. 2010년에 강제입원됐던 의정부의 한 정신병원이었어요. 그곳은 병원이라기보다 전쟁포로 수용소에 가까웠어요. 한 병실에 매트리스 깔아놓고 10명이 있었는데 간격도 너무 좁았어요. 그때 저랑 격리실에 함께 들어간 여성 환자가 있었어요. 격리실은 독방도 아니고 3명씩 들어갔어요. 이틀간 침대에 묶였는데 바로 제 옆에서 묶였던 환자가 몸이 시퍼렇게 돼서 나갔어요. 나중에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병원에선 늘 의료진들 고함이 터져 나왔어요. 환자는 많은데 간호사는 2명뿐이었거든요. 환자들이 잘 통제되지 않으니 보호사들도 마구 소리를 질러댔어요. 대학병원은 의료진이 많고 또 실제로 오랫동안 입원하는 곳도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치료환경이 좋다고 해요. 작은 민간병원들은 인권상황이 너무 안 좋아요.”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가 2013년 12월20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정신병원 장기 강제입원 피해자 집단진정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본인 제공

“강박 풀어줘라” 환자들의 항의

― 8차례나 입원하셨으면 정신병원의 다양한 환경을 목격하셨겠네요.

“2014년 의정부의 다른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는데, 그나마 여기가 나았어요. 강박했지만, 시간을 딱딱 지켰어요. 환자가 묶이면 다른 환자들이 시간을 보고 ‘두 시간 됐으니 풀어줘라, 안 그러면 인권위에 신고하겠다’면서 큰소리로 항의하곤 했어요. 그곳은 공공병원이었고, 또 의식 있는 환자들이 많았어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게끔 감시를 한 거죠. 민간병원에서 이렇게 하는 건 드물거든요. 또한 의료진과 환자가 합동해서 발작하는 환자를 진정시키기도 했어요. 2008년의 일이에요. 액팅 아웃을 하는 환자들도 이야기 들어주면 진정되거든요. 묶어버리고 주사 놓은 건 가장 간편한 방법이에요. 강박은 마지막 순간까지 안 될 경우 하는 거죠.”

2014년 1월14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정신장애인 강제입원 폐지를 위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본인 제공

격리·강박은 아예 법으로 금지해야

― 오래전부터 격리·강박 문제의 부당성을 제기해온 것으로 알아요.

“격리·강박은 강제입원으로부터 비롯된 문제입니다. 강제입원 폐지를 줄기차게 주장해왔죠. 격리·강박 사망사고 날 때마다 기자회견을 했고요. 10년 전엔 정신장애인들이 격리·강박 당하는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 유엔에 보낸 적도 있어요. 보건복지부 지침으로는 1회 최대 격리 12시간, 강박 4시간 이하로 해야 하는 건데, 사실 격리·강박 자체를 법으로 아예 금지해야 해요. 어떤 식으로든 허용하니까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고요. 유엔에서도 다 금지하고 있어요. 이렇게 계속 격리·강박을 한다면, 국가를 상대로 헌법소원이나 위헌소송을 해야 합니다.”

― 파도손은 어떤 일을 하나요?

“2013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중간에 와해됐다가 2017년에 재창립했어요. 정신장애인 당사자 회원이 400여명입니다. 당사자 중심의 입법활동과 함께, 정신장애인 동료지원가를 교육하고 양성합니다. 또한 보건복지부 위탁을 받아 ‘절차조력 지원사업’을 하고요. ‘동료지원가’란 지역사회에 고립돼 있거나 서비스가 필요한 당사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분들이고, ‘절차조력 지원사업’이란 병원에 있는 비자의 입원 환자의 의사 표현과 결정을 돕는 서비스입니다. 더불어 정신장애인 예술가를 발굴해서 전시회도 하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인, 특히 조현병 환자들이 겪는 다양한 경험을 예술적으로 표현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1993년, 대학 시절의 이정하 대표. 본인 제공

1993년 대학 동아리방 앞에서. 본인 제공.

2014년, 암흑이 찾아왔다

‘파도손’은 2014년 암흑과도 같은 비극적인 시련을 겪은 적이 있다. 그해 1월14일 ‘정신장애인 강제입원 폐지를 위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에 나선 뒤였다. 정신보건법 제24조를 겨냥한 ‘강제입원 폐지 헌법소원 청구’는 정신장애인들로서는 최초의 정치적 투쟁이었고, 처음으로 오프라인상에서 얼굴을 드러낸 활동이었다. 2013년 임의단체로 시작했던 파도손은 파도손문화예술협동조합의 형태로 ‘정신보건법 바로잡기 공동대책위’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정신장애인 인권운동의 궤도에 들어선 참이었다.

강제입원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헌법소원 청구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엄청난 반격을 감내해야 했다. 개개인이 악플과 인신공격에 노출돼야 했다. 이 과정에서 파도손의 초기 멤버 5명 중 1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1명은 연락이 두절됐으며, 이 대표를 포함한 3명은 모두 강제입원되는 일을 겪었다. 이 대표는 동료의 죽음과 개인적 불운이 중첩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다 신고를 받은 경찰에 의해 응급입원 조처됐다. 한국의 인권운동에서 ‘감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정신장애인운동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2019년 12월 서울시 인권컨퍼런스에 참여해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인권’세션에서 발표하였다. 본인 제공.

그러나, 이정하 대표는 2016년 파도손을 부활시켰다. 그 해 5월29일 구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으로 전부개정됐고 이듬해인 2017년 5월30일 시행됐다. ‘보호자 2명의 동의, 전문의 1명의 판단’으로만 가능하던 강제입원 절차는 ‘보호자 2명의 동의와 전문의 2명의 판단’으로 완화됐지만, 이 대표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다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4년 헌법소원 청구로 구 정신보건법의 강제입원 조항이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결과였다. 몸을 추슬러 동료들을 다시 모았다. 창립멤버들은 여전히 연락 두절 상태였다. 파도손 시즌2가 시작되었다.

지게차와 오토바이가 분주히 오가는 좁디좁은 인쇄 골목 한가운데 있는 4층짜리 빌딩의 3개 층을 점유한 파도손 사무실엔 10여명의 활동가가 북적거린다.

급성 환자 치료 잘 받고, 만성 환자는 지역으로

―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급성질환자가 정신병원에서 치료 잘 받고 나오도록 치료환경을 개혁해야 합니다. 만성환자가 병원에 오래 있을 필요 없어요. 만성환자는 병원에서 나와 지역에서 살아가도록 지역사회 내 일자리와 자립 환경을 마련해줘야 해요. 우리 사회는 중증정신장애인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합니다. 이런 분들도 살아갈 수 있게 주거지원을 해준다거나 동료상담이나 외래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가 복합적으로 작동해야겠죠. 가장 부족한 건 인적 서비스입니다. 신체장애인은 활동지원서비스도 받잖아요. 정신장애인들은 이런 부분이 너무 부족해요.”

2016년 5월27일 경찰청 앞에서 진행된 ‘정신장애인 강제 행정입원 강화에 대한 강신명 경찰청장 사과 및 입장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정하 대표가 항의서한을 경찰청장에게 전달하면서 발언하고 있다. 본인 제공

― 파도손에선 회원들이 강제입원되는 일이 없도록 돕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게 바로 위기지원 서비스예요. 급성기 환자가 발생하면 응급 상황이 되기 전 민원 같은 시그널이 생기죠. 지역사회 안에서 소란이 일어나거든요. 저희는 누가 위기가 왔다거나 잠도 못 자고 갑자기 평소에 하지 않던 연락을 하면 네트워크 안에서 대처를 합니다. 응급 상황에서 강제로 입원하지 않고 자의로 입원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응급 상황이라 하더라도 폭력적이고 폭압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전문가가 투입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 체계가 지역사회에도 필요해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2026년부터 시행

― 정신장애인들은 어떻게 목소리를 내나요?

“지하철 승강장을 점거하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처럼은 못해요. 다들 멘탈이 약해서 자극적 환경에 노출되는 게 위험해요. 정부 당국과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가려 하지요. 그래도 입법이 필요하다거나 할 때는 국회 앞에서 성명서도 읽고 1인 시위도 해요. 정신장애인은 장애인이면서 환자예요. 고정된 장애가 아니다 보니, 경증과 중증을 오가는 출렁임이 심하단 말이에요. 그런 점을 감안해 정신장애인의 특수성에 맞는 투쟁의 형식을 갖출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목소리를 낸 성과가 있었어요. 지난해 12월8일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됐어요. 절차 조력인 제도와 정신장애인 동료 지원가 양성 및 지원 조항, 동료 지원 쉼터 설치 및 지원 조항이 들어갔어요. 다만 2년간 유예돼 2026년 1월부터 시행됩니다.”

2018년 10월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에서 개최된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주제로 한 제5회 세계성년후견대회에서 이정하 대표가 ‘한국의 사회심리적 장애인이 원하는 것’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본인 제공

정신병원 강제입원 고민하는 이들에게

― 가족을 정신병원에 보내야 하나 고민하는 가족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강제입원은 가족 모두에게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강제입원이 고민되는 상황이 생기면 먼저 지역사회 자원을 알아보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당사자를 도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는 거죠. 가령 정신건강복지센터, 응급위기센터, 당사자 단체가 지역 내에 있는지 알아보고 서비스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 바랍니다. 가족 내에서 강제입원을 한 번 시키고 나면 그 후유증이 오래가거든요.“

― 본인은 화가로 활동하면서 또 화가를 양성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조현병에 대해 오해를 많이 하세요. 조현병을 진짜 모르면서 함부로 얘기해요. 제가 겪었던 조현병은 대단히 독특한 의식의 경험이었어요. 그 경험을 예술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환청은 굉장히 강렬해요. 조현증을 겪으면서 다양한 환청과 환각 경험을 했어요. 우리가 3차원 세계에 있다면, 그 경험은 4차원보다 더 광활합니다. 시공간도 해체됩니다. 고흐, 까미유 끌로델, 프리다 칼로 같은 이들도 정신질환 중환자들이었어요. 이 세계와 나와의 관계를 예술로 승화시키거든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강점을 가지고 활동할 기회가 필요해요. 문화예술 활동은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고요. 공공에서 그런 지원을 해준다면 당사자의 삶엔 새로운 기회가 될 겁니다.”

지난 6월10일 파도손 3층 화구가 있는 방에서 포즈를 취한 이정하 파도손 대표. 파도손이 있는 건물은 4층짜리 건물인데, 파도손은 3개 층을 사용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는 제발 그만“

이정하 대표는 정신장애인들이 최소한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환경에 대해 말했다. “가족 2명의 사인 아래 이뤄지는 ‘보호자 동의 입원’은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 시스템으로 비자의 입원을 책임져야지, 가족의 동의 아래 민간병원으로 보내면 안 된다”고 했다. 더불어 “내 가족과 이웃 중에 마음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라”며 격리·강박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고혈압 환자가 살인사건을 냈다고 질병을 범죄의 원인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며 조현병 환자의 범죄사건이 터질 때마다 강제입원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현상도 경계했다. 한국사회에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신장애인을 제발 그만 혐오하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차별이 심한 대상, 그래서 숨어 살아야 하는 존재가 정신장애인이라고 했다.

2008년 물에 빠졌으나 기적처럼 살아남았던 이정하 대표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그 정체불명의 ‘슈퍼맨’을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살 수 없고, 함부로 몹쓸 짓을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슈퍼맨’이 감금되고 묶이고, 세상에서 고립된 정신장애인들을 구출해 줄 수는 없다. 이 대표는 오늘도 묵묵히 제도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할 뿐이다.

후원 국민은행 003137-04-003844 사단법인 정신장애와인권파도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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