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혁 남대문경찰서장이 9일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시청역 역주행 사고 수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인도로 돌진해 16명의 사상자를 낸 운전자 차모(68)씨가 사고가 난 길이 일방통행로인지 몰랐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이 확보한 블랙박스 영상엔 피의자가 호텔에서 나온 직후 우회전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음성이 녹음돼있던 것으로 조사됐다.류재혁 남대문경찰서장은 9일 브리핑에서 “피의자가 사고 지점 인근을 종종 다녀 지리감은 있었지만, 세종대로18길은 초행이었고, 직진·좌회전이 금지된 사실도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며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에는 조선호텔에서 나온 운전자에게 ‘우회전하라’고 지시하는 내비게이션 음성이 담겼다”고 말했다. 이어 “호텔 주차장을 나와서 일방통행로에 진입한 시점엔 역주행했다는 걸 인지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차씨는 지난 4일 서울대병원에서 이뤄진 첫 피의자 조사에서 ‘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차씨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딱딱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난 6~7일 이틀간 진행된 피의자 면담에서도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을 재차 주장했다고 한다. 경찰은 “차량 급발진 및 결함, 피의자의 착오, 피의자의 거짓말 등 모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수사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버스 기사로 일하던 차씨가 버스 브레이크 페달과 G80 차량의 액셀·브레이크 페달을 오인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남 서장은 “두 차량 간 페달의 유사점이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수사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차량의 급발진·결함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수집한 증거의 정밀분석을 의뢰했다. 경찰은 가해 차량의 EDR(자동차용 영상 사고기록장치·Event Data Recorder)과 가해 및 피해 차량 4대 블랙박스 영상, 사고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 12점 등을 확보했다. 경찰은 “국과수와 도로교통공단 등 전문감정기관과의 합동 현장조사를 통해 사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차씨는 사고 당시 갈비뼈 10개가 골절되고 왼쪽 폐가 손상되는 등 전치 8주 진단을 받고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경찰은 “피의자의 건강상태, 증거물 조사내용 등을 고려해 내일(10일) 2차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