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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지원 단체 사랑의달팽이 김민자 회장]
세계 최초 청각장애 유소년 연주단, 음대생 배출도
시술에 그치지 않고 자존감 높이는 재활 적극 지원
김민자 사랑의달팽이 회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사랑의달팽이에서 청각장애인 아이들의 클라리넷 연주를 듣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자 얘들아 소리가 부드러워져야 해."

6월 28일 서울 중구의 한 연주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음악감독 지휘에 맞춰 클라리넷에 일제히 숨을 불어 넣었다. 2003년 창단한 세계 최초 청각장애 유소년 연주단이다.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음역을 가진 클라리넷 연주를 통해 난청 아동의 재활 훈련을 돕겠다는 취지로 시작해 지금은 매년 정기 연주회를 개최할 만큼 뛰어난 실력과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연주단을 운영하는 건 김민자(82) '사랑의달팽이' 회장이다. 사랑의달팽이는 청각장애인에게 인공와우(청각신경을 전기로 자극하는 보조장치) 시술과 보청기를 지원하는 사회복지단체다. 이날 사랑의달팽이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청각장애인에게 소리를, 더 나아가 삶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100명만 돕는 게 목표였는데…"

김민자 사랑의달팽이 회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사랑의달팽이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1963년 데뷔한 61년 차 배우 김 회장은 2006년부터 18년째 사랑의달팽이를 이끌고 있다. 이 단체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공감'이었다. 그는 "30대에 둘째를 낳았는데, 몸이 약해져 이명에 시달렸다"며 "그때 청력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고 털어놨다. 당시 김 회장 치료를 담당했던 주치의가 청각장애인 지원 단체를 세우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회장을 맡게 된 것이다. 김 회장은 "지금도 공연장처럼 넓은 공간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 불편하고 어지럽다"며 "귀가 불편하면 몸 전체가 힘들단 걸 알기에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처음 해보는 일에 뚜렷한 성과도 없어 그만둘까 여러 번 고민했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기부가 늘고, 도움 받은 이들도 많아지며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 됐다. 사랑의달팽이는 올해까지 2,500건의 인공와우 시술과 4,500건에 달하는 맞춤형 보청기를 지원했다. 지난해엔 베트남 저소득 가정으로 지원 대상을 넓혔고, 지난달 22일 청각장애인과 가수 이적 등이 함께한 대규모 공연도 열었다. 김 회장은 "처음엔 딱 100명만 돕자는 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돌아봤다.

연극단, 보컬 트레이닝도 지원

김민자 사랑의달팽이 회장은 인공와우 시술이나 보청기 지원사업 못지않게 사회 적응을 돕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은재 인턴기자


김 회장이 사랑의달팽이를 운영하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사회 적응의 중요성이다. 남들처럼 들을 수 없어 또래에 비난받고, 보청기를 착용했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지는 아이들이 많아서다. 그는 "시술이 끝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며 "아이들의 자존감과 자긍심을 키워주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사랑의달팽이는 아이들이 청력뿐 아니라 마음까지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데 클라리넷 연주단 운영도 그중 하나다. 올해로 8년째 클라리넷을 부는 박건희(20)씨는 "클라리넷을 분다고 하면 주변에서 감탄하는데 그럴 때마다 위안이 됐다"며 "처음엔 어떤 게 '도'고 어떤 게 '파'인지조차 잘 구분되지 않았는데 꾸준히 연습을 하다 보니 많이 늘었다"고 했다. 1년 차 연주자 박선우(10)양도 "전에는 어려워했던 곡을 연주하게 됐을 때 짜릿하다"며 "요즘은 베토벤을 연습하고 있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클라리넷 전공으로 음악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생겼다. 김 회장은 "일반전형으로 음대에 입학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감격했다"며 "인공와우 수술을 하면 음역이 줄어드는데, 이 학생은 낙엽 굴러가는 소리까지 연주하기 위해 남들보다 10배, 100배 노력한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 밖에도 사랑의 달팽이는 발음과 발성 훈련을 위한 연극단과 난청인들이 학업·취업 등 정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보컬 트레이닝도 지원한다. 연극에 참여하는 한 아이를 떠올린 김 회장은 "얼마나 연습했는지 초등학교 4학년 친구의 발음이 너무 정확하다"며 "아이에게 배우가 되려면 여러 배역을 겪으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미소 지었다.

달팽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랑의달팽이는 느리지만 꾸준히, 바르게 나아간다는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김 회장은 "사회에 나온 청각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편안하게 소리를 듣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그날이 올 때까지 사랑의달팽이가 귀 기울이며 늘 옆에서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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