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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부근에서 차모(68)씨가 몰던 차가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당일 경찰이 사고차량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뉴스1


" 밤에 잠을 못 이뤄 아직도 거실에 불을 켜놓고 잠을 청해요. 불을 끄면 그날 일이 자꾸만 떠올라서…. "
8일 서울 시청역 7번 출구 인근 한 한식집 식당 주인 A씨(64)는 이같이 말했다. A씨의 식당은 지난 1일 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차량 돌진’ 참사 현장에서 지근거리에 있다. A씨는 먼저 퇴근길에 나섰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급하게 식당으로 돌아오는 도중 쓰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길바닥에 누워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말한 A씨의 눈가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직도 식당 내부엔 그날 사고 여파로 깨진 유리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날에서야 식당을 청소하기 시작한 A씨는 “사고 순간 직원 한 명이 평소보다 늦게 퇴근 준비를 하느라고 가게 안에 있었다”며 “단 한 발자국만 먼저 가게에서 나왔어도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일상을 덮친 사고는 시민들에게도 깊은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를 남겼다. 2022년 10월 29일 159명의 희생자가 나온 ‘이태원 참사’ 이후 2년 만이다. 참사를 직접 겪었거나 목격한 이들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등을 통해 간접 경험을 갖게 된 시민들도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사고와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시민 1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 모두 시청역 사고 이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트라우마 속에서 상실감과 분노, 죄책감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 희생자가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불안감도 컸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 현장에서 한 추모객이 추모를 마친 뒤 눈물을 닦으며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A씨처럼 사고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접한 이들은 그날 기억을 지우지 못해 괴로워했다. 취재진의 접근에도 손을 내저으면서 말을 꺼내려 하지 않는 이들이 수십명에 달했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박모(66)씨는 “사고 이틀 뒤까지 정신이 없어서 잘 모르고 있었지만, 그 뒤로는 자꾸만 그날(사고 당일)이 떠올라 무섭다”고 말했다. 인근 편의점 사장 B씨는 “사고 순간을 목격한 아르바이트생은 그 얘기 자체에 대해 아예 말을 꺼내지 않으면서 싫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아르바이트생은 서울 중구청이 지원하는 트라우마 치료를 받기로 했다. 인근 카페에서 일하는 40대 여성 정모씨는 “이젠 앰뷸런스(구급차)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고 했다.

당일 희생자들을 장례식장으로 이송한 사설 구급대원들도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는 20대 이모씨는 “업(業)이긴 하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 직장인들이 퇴근 시간대에 한꺼번에 끔찍한 사고를 당한 걸 보고 있으면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고 현장인 서울 중구 세종대로 18길은 서울시청뿐만 아니라 여러 회사, 식당들이 밀집한 곳이어서 시민 왕래가 잦은 곳이다. 순간 현장에 없었더라도 이곳을 지나쳤거나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들도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다.

당일 회식을 하고 있었다는 직장인 C씨는 “5분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으면 나도 그 사고 현장에 있었을 뻔했다”고 말했다. 인근 호텔에서 근무하는 김모(37)씨는 “점심을 먹거나 회식을 하러 일주일에도 몇 번씩 지나다니는 길에서 이런 큰 사고가 났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주변에 있는 인도(人道)가 대부분 좁아서 길을 다닐 때마다 자꾸만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가까운 금융회사 직원 장모(30)씨도 “사건과 관련해 가족들끼리 ‘도로에 접한 인도로는 다니지 말고 최대한 안쪽으로 다니자’는 얘기를 나눴었다”며 “이제는 차량이 조금만 내게 가까이와도 무서울 정도다”고 했다.

8일 서울 시청역 인근 한 도로에 지난 1일 차량돌진 사고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편지가 붙어 있다. 편지엔 '우리는 그날 저녁을 매일 잃는다' '삼가 고인이 되신 분들을 추모한다'는 등의 글이 담겼다. 사진 김서원 기자

가족을 잃은 허망함은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고로 숨진 35세 용역업체 직원의 어머니는 지난 2일 아들이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제정신이 아닌 운전자가 길을 걸어가던 젊은 우리 아들을 뺏어갔다”며 분노했다. 또 다른 사망자 김모(38)씨의 부친(68)은 지난 3일 “그날 아들에게 ‘오늘은 안 오느냐’고 했더니 약속이 있다고 해서 ‘무슨 약속이 그리 많냐’며 전화를 끊었었다”며 “본가로 들어오라고 할 걸…”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일부는 분노에 더해 ‘혐오’까지 표출한다. 가해 차량 운전자 차모씨의 나이가 68세인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온라인상에선 “양심적으로 65세 이상은 면허증 반납하고 대중교통 이용해라” “늙은이들 면허 박탈해주세요” 등의 댓글이 달린다. 이번 사고로 동료를 잃은 서울시청 주무관 D씨는 “이렇게 허망하게 사람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다시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사고 피해자에 대한 온·오프라인상의 조롱‧막말 등 2차 가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차씨가 사고 원인으로 ‘급발진’을 주장하면서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인식까지 시민 사이에서 생기고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데이터랩의 월별 검색량 추이에 따르면 액셀러레이터‧브레이크 페달이 있는 운전석 하단에 설치하는 ‘페달 블랙박스’ 키워드 검색량이 6월 2일 ‘2’에서 사고 사흘 뒤인 7월 5일 ‘100’까지 50배 늘었다. 수치가 100에 가까울수록 검색량이 많은 식이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역주행 교통사고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애도의 뜻을 담은 쪽지와 음료 등을 두고 갔다. 뉴스1

시민들 사이에 트라우마가 확산하자 서울시청 및 중구청 등은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일상 공간에서 벌어진 참사인 만큼 사고 피해자‧유족을 포함해 전 국민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상 공간에서 예상하지 못한 재난이 일어나면 심리적으로 사고 당사자와 동일시하는 효과가 크게 나타나 ‘나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겠구나’하는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끼게 된다”며 “가족에게 먼저 얘기를 꺼내 조언을 받아보고 필요하면 전문가의 상담과 도움을 반드시 요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피해자와 유족 뿐 아니라 동료, 지인, 사고 현장을 자주 다니는 시민 등 간접적인 심리적 충격을 함께 경험한 이들이 많기 때문에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차원에서 회복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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