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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입원이란 이름의 불법감금] ③ 보호입원제 바꾸려면
게티이미지뱅크

가족 등 보호의무자에 의한 비자의 입원 제도는 2017년 5월 환자 인권 보호를 위한 방향으로 개선됐다. 그 후로 7년이 흘렀지만 정신질환을 앓는 정신장애인과 가족들은 상황이 별로 나아진 게 없다고 말한다. 집에서 가족들이 돌봄 부담을 떠안은 채 살다가 자·타해 위험을 느끼면 결국 병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선택지 없는 현실’은 똑같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과 가족들은 정신질환자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해 보호입원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신석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상임대표는 8일 “자기 자녀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며 “누구나 정신건강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지역사회 안에서 상담이나 치료를 받고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나 기관이 별로 없다 보니 병원을 찾게 되고 그러면서 세상과 단절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가족으로 인해 위기를 겪을 때 잠시 분리돼 갈등을 진정시키고, 단기간에 회복할 기회를 제공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보호입원이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기보다 사실상 감금이나 사회와의 격리라는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나 카페 등에선 보호입원 방법과 구체적인 절차를 묻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알코올중독 아버지의 폭언과 거친 행동이 반복될 때마다 가족들이 자살 충동을 느낄 지경인데 병원에 입원시킬 방법이 없을까요”라거나 “조현병 아들의 폭력성이 커지는데 병원 가기를 거부하니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사연을 올리며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현실에선 안타깝게도 정신질환자가 자발적 의지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별로 없다. 가족들이 보호입원을 통해 비자의 입원을 시키게 된다. 문제는 입원 과정에서 겪는 일들이 입원 자체에 대한 트라우마를 낳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강제입원 당사자는 “병원에 들어가니 나를 안정시키려 하기보다 무조건 묶고 때리고 안정제를 투여했다”며 “환자들이 ‘코끼리 주사’라고 부르는 안정제를 맞았다”고 전했다. 주사 한 방으로 코끼리까지 한순간에 눕힐 정도로 무서운 약이라는 의미다. 그는 “사흘을 거의 내리 자게 만드는데 약에 취해 대소변도 못 가려 기저귀를 채워야 할 정도로 약이 독했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과 환자 안전을 이유로 강압적인 병원 분위기는 사실상 강제로 입원한 환자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긴다. 여기에 병원에서 가족 면회마저 거절하고 장기간 고립될 경우 환자에겐 가족들이 나를 감옥과 다를 바 없는 곳에 넣었다는 원망까지 더해진다.

한 번 병원을 다녀온 환자들은 입원을 강하게 거부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환자를 위한 가족의 선택이 결국 환자는 물론 가족 모두에게 끔찍한 경험이 되는 셈이다.

환자와 보호자 단체 관계자들은 보호입원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모든 부담을 가족에게 지우고 있다는 얘기다. 국가입퇴원관리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신고된 비자의 입원·입소 2만9195건 중 85%인 2만4906건이 보호입원이었다.


가족들이 치료가 시급한 구성원을 입원시키려 할 때 경찰과 소방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소방은 사건 사고 처리로 바쁘고, 경찰은 환자 이송 시 입회 정도만 자신들의 업무라며 이송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아예 자신들과 무관한 업무라고 생각하는 경찰도 많다.

그 결과 가족들은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위법인 줄 알면서도 사설구급대의 힘을 빌린다고 했다. 그래야 병원에 가기를 거부하는 환자를 병원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치료 수준이 높고 저명한 공공병원들은 인권 문제 등을 이유로 사설구급대가 이송한 환자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조현병 아들을 돌보고 있는 한 보호자는 법 개정으로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가 생긴 탓에 정신질환자와 가족들이 열악한 치료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신질환자는 보통 병원에 안 가려고 난리를 친다”며 “그런데 국가는 정신질환자 병원 이송 책임을 보호자에게만 맡겨 놨다. 어쩔 수 없이 보호자는 사설구급대로 이송이 가능한 열악한 개인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좋은 환경에서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새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 여파로 사회 인식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한 보호자는 “가족들이 제때 입원하지 못하고 치료를 받지 못해 ‘안인득 사건’처럼 문제가 되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기도 한다”고 했다. 이들은 2016년 정신보건법을 개정하며 ‘치료의 필요성이 있을 경우’ 입원시킬 수 있다는 조항이 빠진 것이 문제라고 했다. 현행법은 ’자·타해 위험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폭력성을 보이지 않으면 치료를 위해 입원시키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박정근 한국조현병회복협회 부회장은 “인권적 측면에서 보호입원제는 원론적으로 폐지돼야 한다”면서도 “현 시스템 하에서 입원이 원활하고 치료가 잘 되도록 해놓고 폐지해야 하는데 보호입원제부터 없애버리면 오히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까 봐 많은 가족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입원 중심의 치료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에서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가족들은 말한다. 주기적인 치료와 심리적 안정을 통해 돌발행동 우려를 낮추고,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도록 돕는 시설이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정하 정신장애 인권단체 ‘파도손’ 대표는 “위기 시 지역사회 인프라가 있다면 가족과 환자가 강제로 분리되지 않아도 되고, 병원을 자의로 갈 수 있게 환자를 설득할 시간이 주어진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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