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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25) 사이보그 비둘기 사건 2
비둘기가 한 건물 옥상 배수로에 고인 물을 먹으며 목을 축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스페인에 사는 비둘기가 한국으로 이민오고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비둘기 똥 때문에 도시가 엉망인데, 이게 무슨 말이랍니까? 당장 조사해주세요!” - 제보자 ‘한민족 평화의 비둘기’(☞24회에서 이어짐)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습니다. 지중해를 비추는 따뜻한 햇살에 비둘기들도 편안해보였지요.

도시의 여러 광장을 돌아다녔습니다. 한 광장에 이르렀는데, 오후 3시가 되자 성당의 종이 울리고, 쓰레기통처럼 보이는 원통형의 장치에에서 총알이 나오듯 옥수수알이 쏟아져 나왔어요. 비둘기가 몰려들었습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자동 급여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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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구… 이렇게 먹이를 주다니. 드디어 인간들도 평화가 무언지 깨달았군.”

왓슨이 가서 비둘기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불임약이 섞인 건 아세요? 이거 먹으면 당신은 알을 낳을 수 없어요.”

“정말요?”

반면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비둘기도 많았습니다.

“아, 오비스톱(Ovistop)! 벌써 3년이나 됐는 걸요. 난 여자친구랑 놀 때는 자동 급여기에는 얼씬도 않고, 애벌레 같은 자연 음식만 먹죠. 잘 조절하기만 하면 알을 낳을 수 있어요.”

그는 생식 능력을 지키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 비둘기도 있다고 했어요. 멧비둘기와 치열한 경쟁 때문에 힘들어한다고도 했죠.

기후변화로 늘어나는 비둘기들

하지만, 여전히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비둘기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노점상의 물건을 건드리는가 하면, 건축물에 똥을 싸대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죠.

불임 모이의 효과가 없는 걸까요? 바르셀로나시 당국이 비둘기에 불임약을 섞기 시작한 것은 2017년이었습니다. 과밀화된 비둘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포획 및 제거 방식을 동원했는데, 효과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었죠. 게다가 비인도적이라는 동물단체의 비판도 있었고요. 결국 시의회는 20016년 비둘기 번식 조절 프로젝트를 개시하기로 합니다. 이듬해 바르셀로나 34곳에 자동 먹이 급여기를 설치했죠.

조사반은 바르셀로나의 불임 모이 사업을 모니터링한 학자를 만나기 위해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에 갔습니다. 대학 광장에서 자동급여기를 틀어놓고 비둘기를 관찰하는 이가 있었어요. 관련 논문을 쓴 ‘비둘기맨’이었어요. 그가 설명했습니다.

“비둘기가 먹는 것은 나이카바진(Nicarbazin) 성분이 든 오비스톱이라는 약입니다. 원래는 닭이나 칠면조의 구충제로 쓰였는데, 가금류의 산란과 부화를 억제하는 기능이 알려진 거예요. 하루에 10g씩 닷새 이상 먹으면 피임이 시작돼요. 며칠간 안 먹으면 약 효과가 없어지고요.”

홈스 반장이 물었어요.

“그래서 바르셀로나 비둘기 과밀 문제가 좀 해결됐나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평가해 보니, 최대 55%의 개체수 감소 효과가 나타났어요. 어린 비둘기의 비중도 현저히 낮아졌고요.”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갑자기 성난 목소리가 들려서 뒤돌아보니, 장발의 젊은 남성이 서 있었어요. 그는 자동 급여기로 걸어가더니 전원을 껐죠.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그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비둘기에게도 권리가 있습니다. 불임 모이는 그 권리를 빼앗는 겁니다.”

비둘기맨이 반박했어요.

“이데올로기에 빠진 짧은 생각입니다. 불임 모이야말로 비둘기의 권리를 생각합니다. 도시에 너무 많은 비둘기가 살다 보니, 그들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졌어요. 먹이 경쟁이 치열해졌죠. 게다가 기후변화는 비둘기 과밀화를 악화합니다.”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고요?”

기후변화와 비둘기 개체수가 관련 있을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던 왓슨이 물었습니다. 비둘기맨이 설명을 이어나갔죠.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겨울이 온화해지면서 비둘기 개체 수가 급증했습니다. 부화율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똥도 많아졌습니다. 한해 12㎏의 똥을 쌉니다. 비둘기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모이 주던 사람들도 몰래 주는 형편이에요. 세계 많은 도시에서 길고양이도 중성화 사업을 하잖습니까? 동물단체도 거기엔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걸로 아는데, 비둘기라고 안 되는 이유가 뭐죠?”

비둘기맨의 말에 장발남이 피식 웃었습니다.

“비둘기가 줄어든 진짜 원인이 뭔지도 모르고, 기후변화로 둘러대는군요. 그리고 길고양이 중성화하는 사람들은 가짜 동물단체들이에요! 동물의 권리란 단순히 고통을 받지 않을 권리뿐만 아니라 동물이 즐거움과 평화, 경이로움 같은 감정을 느끼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까지 포함되는 겁니다. 새끼를 낳고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낄 권리가 비둘기에게도 있단 말입니다!”

장발남은 더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습니다. 왓슨은 장발남이 바르셀로나의 비둘기를 한국으로 이민 보낸 ‘진짜동물해방전선’ 활동가일 거로 생각했습니다. 홈스가 생각에 잠기더니 중얼거렸습니다.

“비둘기의 몸에 개입하는 것도 그들의 권리를 위해서이고, 비둘기를 놔두는 것도 그들의 권리를 위해서인 거군. 아주 중요한 철학적 난관에 빠진 거 같아.”

비둘기 중성화 사업은 세계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는 중입니다. 왓슨이 조사해 보니, 바르셀로나는 물론 이탈리아 제노바, 프랑스 파리의 일부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었죠.

장발남이 사라지자, 비둘기맨도 흥분이 가라앉은 듯했습니다. 그가 차분히 말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비둘기가 늘어나고 있어요.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에는 비둘기, 쥐 같은 청소부 동물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비둘기의 번식을 막아야 그들이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있어요. 불임 모이는 기존처럼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은 물론 길고양이처럼 포획해서 수술하는 것보다도 훨씬 인도적인 방식입니다. 그러니 여러 도시에서 앞다퉈 도입하고 있죠. 한국에서도 논의 중이라던데…”

동물 권리의 딜레마

한국의 비둘기는 2009년에 유해야생생물로 지정됐습니다. 비둘기 관리 전문업체가 수도권에만 20여 곳으로 추산됩니다. 비둘기를 직접 포획하기 보다는 건물 처마에 비둘기 접근을 방지하는 ‘비둘기 스파이크’(뾰족한 못) 같은 것을 설치하는 간접적인 통제를 하고 있죠.

그런데, 최근에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정부가 2024년 12월부터 비둘기에게 모이 주는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거예요. 지금까지 공원마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지 맙시다’는 현수막을 걸고 캠페인은 하고 있었지만, 아예 법으로 정해 비둘기를 돕는 이들에게 과태료까지 부과하기로 한 거죠.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먹이 주기까지 강제적으로 막는 것은 지나치다’며, 이번 기회에 비둘기 중성화 사업을 시행하자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을 이끄는 인천의 ‘비둘기 할아버지’를 한국에 돌아온 홈스와 왓슨이 만났습니다. 비둘기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내가 길고양이를 몇 년 동안 돌봤소. 그런데, 그걸 비둘기가 날아와서 빼앗아 먹는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비둘기 처지에서 한 번 생각해 본 거요. 도시에서 얼마나 살기 힘들까, 비둘기도 길고양이처럼 중성화를 하면 어떨까…”

왓슨은 장발남의 말이 생각나서 물어보았습니다.

“불임 모이는 비둘기의 권리를 침해하는 건 아닐까요? 비둘기도 새끼를 낳고 기르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텐데, 그것을 앗아가는 거잖아요.”

“그건 순진한 생각 아닐까요? 비둘기들은 어느새 혐오 동물이 되었어요. 하지만 비둘기 같은 청소동물은 인간을 떠나선 살 수 없오. 인간과 함께 잘 살려면, 혐오를 지워야 합니다. 개체수를 줄여야 해요. 그러려면 불임이 최선의 방법이죠.”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다른 관점에서 불임 모이를 반대했습니다. 환경부 야생동물과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남들이 한다고 무작정 따라 하면 안 됩니다. 비둘기들이 많이 사는 공원에는 다른 새들도 삽니다. 비둘기보다 몸집이 작은 직박구리나 참새가 불임 모이를 먹으면 어떻게 합니까? 생태계에 대한 지나친 개입은 우리가 모르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이 살펴보았더니, 불임 모이로 개체수 감소에 효과를 봤다는 연구 결과는 하나둘 나오고 있지만, 주변 도시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 연구는 나온 적이 거의 없었어요. 비둘기맨의 연구도 ‘자동급여기 근처에 다른 종의 조류가 일부 나타났지만 먹지 않았다’는 정도의 관찰을 기록한 수준이었죠. 왓슨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홈스 반장에게 물었죠.

“무엇이 정답일까요?”

“20만년 전에 출현한 호모사피엔스는 불과 몇백 년 만에 지구의 모든 종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유일한 종이 됐지. 그러니 동물의 권리가 무엇인지 직접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까? 아니면 자연 앞에 겸손해지기 위해 모든 판단과 결정에서 한 발짝 빠져 있어야 할까?”

한국에 이민 온 스페인 비둘기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비둘기에게도 각자의 생각과 판단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들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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