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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박당한 인권, 정신병원
폭력적 관행 해결 대안은
비강박처치 건보수가 높여야
광주 천주의성요한병원 정신의학과 보호병동(폐쇄병동)의 보호실 내부 모습. ㅁ자로 된 병동 가운데엔 정원이 있었고, 병실을 비롯한 각종 공간은 충분히 넓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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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손과 발, 가슴을 단단히 묶는다. 환자는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침대에 결박되어 누워 있다. 299개 병상을 갖춘 작은 정신병원인 춘천ㅇ병원에서 환자는 구원받지 못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시시티브이 영상에서 환자는 매일 신음하고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다 서서히 죽어갔다. 의사도, 간호사도, 보호사도 적절한 구호조처를 외면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그 죽음의 동조자인 것처럼 보인다.

정신병원은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곳이다. 그러나 치료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꽁꽁 묶어놓고 방치하는, 고문에 가까운 일들이 지금도 어느 정신병원에서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한겨레는 3회에 걸쳐 정신병원의 격리·강박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치료자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화냈다는 이유로 나를 격리·강박한다. 더 이상 치료자들에게 치료받을 수 없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 왜 치료자들 마음대로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가? 분노가 치민다.” “그래 해보라지, 누가 이기나 보자. 갈 데까지 갈 거야. 어디 또 가둬봐.”

정신병원의 격리·강박과 같은 강압치료는 환자들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두달 전 이요한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출간한 책 ‘흥분 및 공격행동 환자에 대한 예방과 대처―안정화치료 매뉴얼’ 속에는 환자들이 무력함과 트라우마를 호소했다고 적혀 있다.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돼 격리·강박을 당한 적 있다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 역시 “묶여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수치스럽고 비참한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춘천ㅇ병원에 응급입원되자마자 격리·강박돼 입원 289시간20분 만에 숨진 김형진(가명·45)씨의 충격적인 사건이 알려지며 보건복지부가 정신병원 실태조사와 제도 개선 추진에 나선 가운데, 한겨레가 전문가들을 만나 강박, 즉 묶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살펴봤다.

■ 묶지 않고 치료하는 병원

보건복지부의 격리 및 강박 지침은 ‘환자가 자해·타해 위험이 뚜렷하게 높은 경우’ 각각 최대 4시간 강박, 12시간 격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환자를 가두고 묶은 뒤의 지침인 셈인데, 그보다 먼저 묶지 않고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압치료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병원에서 격리·강박이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측면이 있고 효과와 적절성 역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실제 일부 병원은 안정화 치료 등 비강압치료 노하우를 실천하고 있다.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이 ‘한국 최고의 정신병원’이라고 칭송하는 광주 천주의성요한병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976년 정신의학과를 개원한 뒤 국내 최초로 입원과 외래의 중간 개념인 낮병원을 운영한다. 앞서 언급된 책 ‘흥분 및 공격행동 환자에 대한 예방과 대처’ 역시 이 병원의 낮병원 센터장인 이요한(53)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쓴 책이다.

“우리 병원에는 끈이 없습니다.”

천주의성요한병원에서 국내 최초의 낮병원 그란데와 루치나 센터장을 겸하고 있는 이요한 정신의학과 전문의. 외래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고경태 기자

지난달 27일 광주시 북구 태봉로 천주의성요한병원 정신의학과 외래집무실에서 만난 이요한 전문의는 흥분한 환자를 힘으로 억제해 진정시키는 ‘강압치료’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요한병원에서 환자를 끈으로 침대에 묶는 일은 없다고 했다. 대신 대화로 환자를 안정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안전하고 인격적이며 환자의 트라우마를 최소화하는 ‘고도의 기술’을 개발해 사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요한 전문의와 함께 둘러본 천주의성요한병원 정신의학과 1층 보호병동(폐쇄병동) 내부의 보호실(진정실)에는 침대가 없었다. 침대를 두면 결박을 하게 되고, 또한 자살 시도 위험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보호실 벽과 바닥은 따뜻한 느낌을 주기 위해 나무 재질을 사용했다. 흥분한 환자는 처음에는 병실에서 나와 집중관리실에서 돌봄을 받다가 통제가 안 되는 극한의 경우엔 보호실에 들어가 정해진 시간 동안 나올 수 없다. 이럴 때 대개 환자는 벽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우는데, 대개 한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꺾인다는 게 병원의 설명이다. 보호병동의 병상 수는 40개로 많지는 않고, ㅁ자로 된 병원 가운데엔 환자들이 자연을 느끼며 산책할 수 있는 정원이 있다. 치료 및 생활 공간도 충분히 넓었다.

광주 천주의성요한병원 정신의학과 보호병동(폐쇄병동)의 보호실 내부. 진정이 되지 않는 환자를 홀로 들어가게 한 뒤 일정한 시간 나오지 못하게 한다. 보호실 안에는 침대가 없다. 대부분의 환자는 30분에서 1시간 동안 이곳에 머문다고 한다. 고경태 기자

광주시 북구 태봉로에 위치한 천주의성요한병원 정문. 1958년 아일랜드에서 광주로 온 천주의성요한의료봉사수도회 수사들이 세웠고, 정신의학과는 1976년 개원했다. 고경태 기자

이요한 전문의 역시 본인도 환자를 묶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원체 욕을 심하게 하고 폭력을 가하는 환자라 제압을 해야만 했어요. 네다섯명이 한참 몸을 잡고 있는데 간호사가 귓속말로 ‘꼬집어버려요’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화가 나면 그러겠어요. 저도 솔깃할 정도였죠. 그래도 참고 진정될 때까지 잡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환자가 주사를 한대 맞고 한풀 꺾였어요.”

그는 안정화 치료에 대한 강의를 할 때마다 “정신병원에서 묶지 않는 일(도구 억제)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했다. “저는 90% 가능하다고 답합니다. 환자를 적, 공격적이고 대화와 통제가 불가능한 사람으로 규정하면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어요. 진정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이해를 하려고 애쓰다 보니 어떻게든 강박하지 않고 해보자 하는 마음이 우리 치료진 공동체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병원이 우리나라 정신병원의 표준 모델이 되기는 힘들다. 천주의성요한의료봉사수도회 수사들이 설립한 병원은 수도회 철학의 영향으로 수익에 집착하지 않고 인력을 고용하지만, 그런 여력이 없는 병원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천주의성요한병원은 직원과 환자의 수가 거의 일대일에 이른다. “우리는 보호사를 끊임없이 교육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지만 다른 병원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을 거예요. 그러려면 보호사에 대한 복지나 연봉도 좋아야 하거든요.”

■강압치료, 오히려 더 고비용

김성수(54) 정신의학과 전문의도 비강압치료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온 인물이다. 그는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 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병원의 미션과 비전을 ‘인권’에 두었다고 했다. 지난달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의 한 정신과 의원에서 만난 김성수 전문의는 “당시 표방했던 인권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가두고 묶는 게 의학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환자가 의심과 오해를 하기 때문에 입원 과정에서 화를 냅니다. 초기에 환자를 잘 안심시키면 화를 낼 일이 줄어요. 환자에게 잘 반응할 수 있는 인력·기술·지침이 필요한 거죠.”

천주의성요한병원이 전문 정신병원이라면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은 공공 정신병원이다.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은 대학병원에 입원이 불가능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의뢰하는 응급입원과 행정입원 환자를 받는 기능을 수행했다. 2020년 한해엔 전체 경기도에서 발생한 응급입원 820여건의 25%를 소화했다. 그럼에도 김성수 전문의가 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이 병원의 강박률은 5%였다고 한다.

현재는 퀄리티라이츠(Quality Right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비강압치료 기술 개발을 하는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 사업 연구자로 참여하고 있다. 퀄리티라이츠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신건강 영역에서의 인권과 회복의 증진을 목표로 2030년까지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그는 국외의 연구 결과를 통해 “격리와 강박이 비싸고, 폭력적이고, 해롭다”고 이야기했다.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 원장을 지낸 김성수 정신의학과 전문의. 현재 퀄리티라이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비강압치료 기술 개발을 하는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 사업에 연구자로 참여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김 전문의가 말한 국외 연구는 2009년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물질남용과 정신건강서비스국’(SAMHSA)의 강압치료 부작용의 경제적 분석이다. 분석에 따르면 “강박을 시행하면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회복이 적어도 6개월 지연되며, 직원 부상의 50%가 강압 처치 중에 발생하고 직원과 환자의 부상 위험이 60% 증가”한다. 또 정신건강서비스국은 “총 업무 시간의 23~50%를 강압 처치에 할애하게 돼 돌봄 비용이 함께 증가할뿐더러 직원 이직률이 18~62% 높아져서 비용이 수십만에서 수백만달러 추가 소요된다”고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정신병원에서 격리·강박은 익숙한 일상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정신병원에서 전통적으로 써온 방식이기도 하다. 강박치료를 비강박치료로 전환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비강압치료의 건강보험 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성수 전문의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140개의 정신병동 중 24개가 물리적 강박을 줄여보자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14개 병동이 일정 기간 강박을 한번도 안 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례를 소개하며 “한국의 정신병원들이 이를 택하려면 무엇보다 비강압치료의 건강보험 수가가 매겨지고 격리보호료보다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정신병원들이 비강압치료를 선택할 동인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이요한 전문의 역시 같은 이유로 “비강압치료의 수가 문제를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통해 보건복지부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서 이요한 전문의는 △비강압치료 수가를 높게 책정하고 상대적으로 정신과적 응급처치료(물리적 제압 비용)를 낮게 책정해야 한다 △치료자의 위험 부담, 고도의 상담 기술, 많은 치료 인력의 동원 등 이유로 개인 정신 치료 요법보다 월등히 높은 수가가 책정되어야 한다 △건강보험 환자뿐 아니라 의료급여 환자에게도 동일하게 행위수가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요한·김성수 전문의 두 사람은 “우리나라 의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돌봄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주사나 강박 등 눈에 보이는 처치에만 수가를 책정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흥분한 환자를 붙잡고 한시간씩 옥신각신 대화를 나누거나 설득하는 일이야말로 고도의 심리치료 기술과 팀워크를 요구하는 급성기 정신과 치료의 꽃”이라고 보지만, 이는 아직 의료 행위로 인정을 못 받는 현실이다.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격리·강박된 채 죽음을 맞이한 일은 의료인의 윤리 문제와 직결된다. 더불어 근본적으로는 제도의 문제다. 이요한 전문의는 “국가가 나서 정신병원의 비강압치료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email protected]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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