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부가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개선하고자 도입한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이달로 시행 1주년을 맞이했다. 금융투자업계는 매년 수십조원씩 불어나는 퇴직연금 시장의 자금 흐름 일부를 실적 배당형(원리금 비보장) 상품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됐다며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실망스러웠다. 지난 1년간 디폴트옵션 가입자 10명 중 9명은 은행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을 선택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원금 보존을 좋아하는 것은 은행원 때문이 아니라 ‘민족성’이었던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높은 수익률보다 노후 생활비를 잃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상품 선택의 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제도 시행 당시 금리가 높았던 점도 원금 보장 상품 쏠림을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수익성 제고’라는 제도 취지에 맞춰 디폴트옵션을 미국·영국 등 금융 선진국처럼 실적 배당형 상품 중심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 목적인데… 90%가 ‘원금 보장’ 상품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2022년 7월 법 마련 이후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작년 7월 12일부터 전면 시행된 디폴트옵션은 이달 12일부로 1주년을 맞이한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DC)형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지시하지 않으면 퇴직연금 사업자가 사전에 약속한 방식대로 자동 운용하는 제도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디폴트옵션 가입자는 527만명이다. 지난해 말 479만명에서 48만명 늘었다.

문제는 디폴트옵션 가입자의 90%(422만명)가 원리금 보장 상품 100%인 ‘초저위험’ 등급에 몰려있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디폴트옵션 위험 등급은 ‘초저위험-저위험-중위험-고위험’ 등 4단계로 분류된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실적 배당형 상품은 2단계(저위험)부터 담을 수 있는데, 위험 부담을 조금이라도 감수하려는 가입자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한 대형 증권사의 퇴직연금 부문 고위 관계자는 “거의 모든 직장인이 은퇴하고 죽을 때까지 생활비로 쓸 노후 자금을 절대로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당연히 사전 지정을 할 때도 은행 예금, 보험사 이율보증보험계약(GIC) 등의 원리금 보장 상품을 선택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이어진 고금리 환경이 원리금 보장 상품의 금리를 높인 사실도 디폴트옵션 가입자를 초저위험 등급으로 몰고 간 배경으로 거론된다. 고용부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초저위험 등급의 1년 수익률은 4.56%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 가입자의 심리에서 보면 4%대 수익률은 그럭저럭 양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조선 DB

“원리금 보장 상품은 아예 배제해야”
예금 중심으로 흘러가는 디폴트옵션 시장을 바라보는 금융투자업계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현시점에선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성을 확 끌어올리겠다는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디폴트옵션 가입 동향과 수익률을 지켜본 만큼 앞으로는 제도 보완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고금리 상황에서 초저위험 상품이 1년간 4%대 수익을 냈는데, 같은 기간 중위험(10.91%)과 고위험(14.22%) 등급 수익률은 2~3배 더 좋았다”며 “하반기 중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초저위험 상품과 그 외 상품 간) 수익률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증권업계는 디폴트옵션 도입 국가 가운데 한국과 일본을 빼면 원리금 보장 상품을 제공하는 국가가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영국·호주 등 우리나라가 모델로 삼은 퇴직연금 선진국 대부분이 실적 배당형 상품만으로 디폴트옵션을 꾸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디폴트옵션에서 실적 배당형 상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TDF(Target Date Fund)는 은퇴 시기를 고려해 생애주기별로 주식·채권 등의 자산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상품”이라며 “리스크 분산을 바탕에 깔고 설계된 상품이므로 은퇴 자금 보존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위험 등급도 ‘저수익-중수익-고수익’이나 ‘안정형-중립형-수익형’ 등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 보장 상품을 배제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서 원리금 보장 상품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어 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은행 입김이 강력하다는 현실도 장애물이다. 어쨌든 고용부도 기획재정부 등과 함께 디폴트옵션의 수익률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각계 의견을 경청하며 여러 대안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4391 LG디스플레이, 3세대 車 탠덤 OLED 내후년 양산한다 [biz-플러스]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90 경희궁 일대, 서울광장 10배 크기 공원 들어선다…‘돈의문’도 복원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89 동부간선·내부순환 등 곳곳 통제‥이 시각 불광천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88 집중호우에 서울 곳곳 나무 쓰러짐·빗길 사고…인명피해 없어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87 "단일화 룰 세팅만 문제? 아니다"…나경원·원희룡 쉽지않은 이유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86 인천공항 미술품 수장고, ‘국가 보안구역’ 아닌 일반구역 된다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85 국민 37%가 토지 소유…보유자 64%가 60대 이상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84 [단독]수중수색 작업 중에도 댐 방류···채 상병 실종 3시간 만에야 방류 중단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83 장맛비에…북한 지뢰 떠밀려 올 위험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82 보호출산제 ‘쉬쉬’하는 정부…왜?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81 폭우 출근대란…동부간선 전구간 통제, 1호선 일부중단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80 [오늘의 운세] 7월 18일 목요일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79 “나뭇잎 아녜요, 만지지 말고 신고” 장마철 물길 따라 북한 ‘나뭇잎 지뢰’ 유실 우려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78 강한 장맛비 계속…'호우특보' 수도권 등 시간당 30∼60㎜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77 英 찰스 3세, 노동당 정부 국정 과제 발표…"서민 경제 활성화"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76 22일에만 인사청문회 3건…여야 정면충돌 지속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75 경기 북부 밤사이 '극한 호우'‥이 시각 연천 군남댐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74 국정원 요원 결제정보도 노출…美에 잡힌 아마추어 같은 첩보전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73 “태풍 ‘매미’ 때도 그런 작업 없었는데…” 빗물처럼 쏟아져 내린 추모객들의 눈물 new 랭크뉴스 2024.07.18
44372 1호선 덕정역∼연천역·경의중앙선 문산역∼도라산역 운행 중단 new 랭크뉴스 2024.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