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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제주도 역사(제주특별자치도 공공저작물)

한국 현대사의 비극으로 꼽히는 제주4·3사건.
확정된 인명 피해만 1만 4822명(2024년 3월 기준)으로, 추정 피해 규모는 2만5천명에서 많게는 3만여 명에 이릅니다.

수많은 4·3희생자 가운데 여성 비율은 26%를 차지하는데요. 4·3의 광풍을 피해 살아남은 제주 여성들은 폭도의 아내 또는 빨갱이 딸로 불리며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더욱이 4·3으로 희생된 아버지와 오빠의 부재를 대신해 제주 여성들은 가족 부양을 책임지며 배움에서도 배제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의 삶은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제주4·3 여성 유족의 아픈 상처를 보듬는 자리가 오늘(7일) 열린 제주4·3희생자유족부녀회 창립15주년 기념포럼을 통해 마련됐습니다. 포럼에 참석한 100명의 여성 유족은 4·3으로 인해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는 비극을 마주해야 했던 저마다의 신산한 삶을 증언했습니다.

"죽창을 피해 몸 숨긴 어머니가 날 낳고 길러"…흐느끼는 4·3 여성 유족들

1950년 제주시 한경면에서 태어난 강인화 할머니는 4·3 당시 어머니 뱃속에 있었습니다. 4·3으로 행방불명된 아버지에 대해 강 할머니는 "폭도들에게 가족을 잃은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 오겠다며 집을 나선 아버지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라며 "당시 결혼한 지 2~3개월 밖에 안됐을 때 벌어진 일로 아직도 아버지의 시신을 못 찾았습니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발표하는 강인화 4·3 여성 유족(우측)

강 할머니의 모친은 올해 97세인 4·3 고령 유족입니다. 4·3으로 남편을 잃고도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불안과 공포를 견뎌야 했던 모친의 경험을 강 할머니가 이날 대신 증언했습니다. 강 할머니는 "보초군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서 죽창으로 문과 벽을 쿡쿡 찌르며 '아무도 없네' 하며 나가는 모습을 어머니께서 창문 뒤에 숨죽이며 바라보고 공포에 질려서 잠도 못잤다고 합니다.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강인화 4·3 여성 유족

일흔을 넘긴 강 할머니의 소원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불러보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부재 속 어린 시절을 고난과 역경의 시절로 기억하는 강 할머니는 "우리집 일손이 모자랄 때면 주위에서 도움을 주던 제주의 수눌음 정신이 없었다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조심스럽게 털어놓던 가족 이야기를 마치며 강 할머니는 "우리 후손들이 4·3이라는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잊히지는 않을지 두렵다"고 했습니다. 강 할머니는 제주4·3유족부녀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4·3을 알리는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4·3여성사 다시 써야"…4·3 해석에 변화를 주는 중요 담론

오늘 포럼에는 강인화 할머니 뿐만 아니라 100명에 달하는 4·3 여성 유족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나누고 서로 공감했습니다. 가장의 부재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진 제주 여성들은 학교 대신 밭으로, 바다로, 일터로 나가야했습니다. 죽어간 가족들에 대해 억울하다 말도 못한 채 숨죽였던 지난 날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생존 여성 유족들의 4·3 증언 메모들.

강능옥 제주4·3희생자유족부녀회장은 "교육받을 기회와 재산 분배 등의 권리에서도 여성은 배제돼왔다. 여성들은 4·3역사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지만 기록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강 부녀회장은 "4·3 이후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해 그들이 겪은 고통과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라며 남은 4·3의 과제를 짚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제주도 역사(제주특별자치도 공공저작물)

김창후 제주4·3연구소 소장은 이날 포럼 주제발표에서 "성폭력과 강제결혼, 토벌대 잔일, 보초서기 등 제주 여성이 겪은 4·3 피해가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 소장은 "4·3 이후에도 제주 여성은 아픈 가족을 돌보며 육아와 집안일, 밭일, 물질, 장사 등 고된 노동을 감내했음에도 가부장제 아래 남성 중심의 지배적 기억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김 소장은 "여성의 구술은 ‘고생담’, ‘신세타령’, ‘개인적, 부차적 경험’이라는 인식의 틀을 넘어 4.3 역사 해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중요한 담론으로 만들어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도 "4·3 당시 제주 여성들에게 가해진 성폭력 피해도 묵인과 침묵 속에서 아직까지 조명되지 못한 채 묻혀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4·3으로 인한 여성의 피해는 전체 희생자의 20%라는 죽음의 숫자만으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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