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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상도례’ 헌법불합치 결정
바뀐 시대상 반영
[법알못 판례 읽기]


방송인 박수홍 씨가 3월 1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 된 친형의 속행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족 간 재산범죄는 법으로 책임을 묻지 않는 ‘친족상도례 조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7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대가족하에서 공동으로 재산을 형성하고 소비하던 과거와 달리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할 정도로 개인화된 현 세태에는 맞지 않는 낡은 제도라는 게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다.

헌재는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역사적·문화적 특징을 고려해 친족상도례가 유지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일률적 형 면제’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고 보고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일률적 형 면제’는 위헌”


헌재는 2024년 6월 27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친족상도례의 ‘형 면제’를 규정한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앞서 헌재는 2012년 친족상도례에 대해 헌법재판관 5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 12년 만에 다른 판단이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해당 조항의 적용은 즉시 중지되고 2025년 12월 31일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한다.

친족상도례 조항은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다. 형법 328조 1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절도, 사기, 공갈, 횡령, 배임 등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모든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한 조항이다.

예컨대 함께 살지 않는 아버지가 아들의 재산을 횡령해도 이 법에 따라 처벌할 수 없다. 배우자 간 사기 범죄도 마찬가지다. 헌재는 이 법의 적용 대상인 친족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현재 우리 사회는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등 가족 규모가 축소되고 단순화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일정한 친족 사이에서는 언제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공유될 수 있다거나 손해의 전보 및 관계 회복이 용이하다는 관점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실질적인 친소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형 면제를 적용하면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수 있다고 봤다. 헌재는 “취약한 지위에 있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형사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법관이 형 면제 판결을 선고하도록 획일적으로 규정해 대부분 사안에서 기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예외적으로 기소되더라도 ‘형 면제’라는 결론이 정해져 있는 재판에서 피해자의 형벌권 행사 요구는 실질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헌재는 심판 대상 조항의 위헌성이 친족상도례 그 자체가 아니라 ‘일률적 형 면제’에 있다고 판단,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피해자의 처벌 의사 표시를 소추조건으로 하는 등 여러 가지 선택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며 “입법자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그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헌재는 형법 328조 1항에 대한 위헌확인 소송 사건 4건을 병합 심리해 이날 이 같은 결론을 냈다. 청구인 중 한 명인 A 씨는 지적장애인으로 1993년부터 2014년까지 경남 창원의 한 돼지농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하자 삼촌 부부의 권유로 돼지농장을 떠나 동거하기 시작했다.

삼촌 부부는 A 씨와 4년 동안 지내며 그의 퇴직금·상속재산 등 약 2억3600만원을 빼앗았다. A 씨는 장애인 지원 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삼촌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검찰은 A 씨가 동거하지 않았던 기간에 빼앗긴 1400여 만원에 대해서만 피해를 인정했다.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친족상도례상 ‘동거친족’으로 인정돼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봤다.

또 다른 청구인인 B 씨의 남동생과 그 부인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재산을 관리했다. 2023년 6월 어머니가 사망하자 B 씨는 남동생 부부가 재산을 관리하며 임의로 소비했다고 주장하며 횡령죄로 그들을 고소했다.

이 경우에도 검찰은 어머니의 직계비속인 남동생에게 친족상도례가 적용된다는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B 씨는 “형법 328조 1항은 재판절차진술권 및 평등권을 제한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올해 2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골프선수 출신 방송인 박세리 씨가 6월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코엑스센터에서 부친의 사문서위조 혐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적용 범위 지나치게 넓고 악용 사례도 나와


친족상도례는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법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국가가 가정사에 일일이 관여하지 않아도 가정 내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가 담겼다. 일본, 독일, 프랑스 등 대륙법계 국가들에선 대부분 친족상도례 법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가부장적 대가족제도가 붕괴하고 1인 가구가 보편화하는 등 개인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친족상도례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른 나라에 비해 친족상도례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독일의 경우 친족상도례의 효과를 모두 친고죄로 제한하고 국내처럼 형이 면제되지 않는다. 다만 직계 친인척·배우자·생활동반자 등 혼인 관계에 있지 않더라도 주거 공동체로 인정될 경우 친족상도례의 대상으로 인정한다.

스위스는 형법에 따라 친족이나 가족 구성원에 대한 절도, 횡령, 배임, 사기 등 혐의에 대해 친고죄를 적용한다. 오스트리아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간에 발생한 재산범죄에 친고죄 적용과 함께 형을 감경하도록 정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친족상도례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방송인 박수홍 씨 친형의 횡령 사건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당시 박 씨의 부친은 큰아들이 아니라 자신이 횡령범이라고 주장했는데 일각에선 친족상도례를 악용해 처벌을 피하려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내 대표 골프 스타인 박세리 박세리희망재단 이사장도 부친의 사문서위조 혐의 및 채무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친족상도례가 다시 주목받았다.

[돋보기]

친족상도례 ‘친고죄’는 합헌 판단


같은 날 헌재는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또 다른 법 조항인 형법 제328조 제2항에 대해서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으로 결정했다. 이 조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을 제외한 친족이 저지른 재산범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로 정하고 있다.

청구인 C 씨는 2021년 2월 6촌인 D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으나 관할 경찰서는 “형법 제328조 제2항의 친족상도례가 적용되고 형사소송법 제230조의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의 고소 기간을 경과했다”는 이유로 불송치 결정했다.

검찰도 같은 이유로 D 씨의 사기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항고마저 기각됐다.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마저 연이어 기각되자 C 씨는 2023년 12월 “심판 대상 조항은 ‘친족으로부터 재산적인 피해를 입은 국민’을 다른 국민과의 관계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헌재는 “친고죄에 대해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면 고소하지 못하는 것은 형사소송법 제230조 제1항 본문에 따른 것일 뿐 심판 대상 조항에 의한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심판 대상 조항이 재산권과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는 청구인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심판 대상 조항은 일정한 친족 사이의 재산범죄의 소추조건에 관해 규정할 뿐 재산권의 내용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심판 대상 조항에 의해 피해자가 당해 사건 재판절차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견을 진술하는 등 법관으로 하여금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 줄 것을 청구하는 절차적 권리가 제약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또 “심판 대상 조항은 가정 내부의 문제는 국가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책적 고려와 함께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인해 깨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역사적·문화적 특징이나 형벌의 보충성을 고려할 때 그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며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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