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경기남부경찰청 기동순찰2대 2팀 고동수(37·왼쪽에서 두 번째) 경장이 팀장, 팀원들과 함께 지난 4일 성남 모란시장 오일장 도보순찰 중에 만난 상인과 대화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지난 4일 오후 오일장이 열린 경기 성남시 모란시장에서 제복 차림의 경찰관에게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두세 놈이 달려들어 내 얼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경찰에 신고했는데, 아직 오라 마라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노인의 두 손을 잡고 “얼마나 아프셨냐. 알아보겠다”며 연락처를 적은 경찰관은 경기남부경찰청 기동순찰2대 2팀 소속 고동수(37) 경장이다. SBS 공채 개그맨 14기 출신인 고 경장은 “기동순찰대 근무 중에 화를 내며 다가오는 민원인이 많은데 공감하고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웃고 있는 민원인을 볼 때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개그맨 시절 SBS 공개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에 출연하기도 했던 고 경장은 올해로 입직 4년 차를 맞았다. 교통 외근 경찰과 파출소 소속으로 근무한 뒤 지난 2월 기동순찰대에 자원했다. 고향인 성남시와 하남시 일대에서 범죄 취약지를 발굴하고 강력범죄를 선제적으로 막는 일을 맡았다.

경기남부경찰청 기동순찰2대 2팀 고동수(37·왼쪽에서 두 번째) 경장이 지난 4일 성남 모란시장에서 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시민과 악수하며 사정을 듣고 있다. 손성배 기자

고 경장에게 개그맨 활동 시절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고 경장은 “기동순찰대의 주된 업무가 도보 순찰을 하면서 범죄에 취약한 장소 등을 찾고, 범죄자의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를 꺾는 것”이라며 “국민 틈에 들어가 소통한다는 측면에서 공개 코미디를 하며 체득한 관객의 마음 벽을 허물었던 경험이 도움된다”고 말했다.

처음엔 개그맨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개그맨 시절은 실패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SBS 웃찾사에 출연했던 그는 1년간 ‘쎄씨봉 리턴즈’, ‘해석 남녀’ 등 코너를 맡았지만 이후 방송 활동을 이어 가지 못했다. 2017년 두 차례 지방공무원 시험을 봤지만 낙방했다. 이후 2년 동안 5번 순경 공채 시험에서 떨어진 뒤 6번째 만에 합격했다. 칠전팔기 끝에 2020년 1월 34세 나이로 경찰관이 된 것이다.

공감과 소통 개그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고 경장은 기동순찰대에서 날개를 달았다. 그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해 피의자에게 수갑을 채워 잡아 오는 역할 뿐 아니라 골목 골목을 다니며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빈틈을 메우는 접근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경기남부경찰청 기동순찰2대 2팀 김현경 팀장(오른쪽부터), 박진호 경장, 유재준 경사, 김회연 경위, 허범일 경장, 손준형 경사. 손성배 기자

사건이 발생했을 땐 재빨리 출동해 범죄자를 제압했다. 지난달 초 중원구 금광동 한 주택에서 흉기를 든 남성이 여성을 위협하는 ‘코드제로(긴급성이 가장 높은 단계)’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방검복과 방패를 들고 제압하기도 했다. 고 경장을 비롯해 기동순찰대 소속 8명은 함께 승합차를 타고 움직인다. 기동순찰대 한 팀을 ‘움직이는 경찰서’라고 김현경 기동순찰2대 2팀장이 말하는 이유다.

기동순찰2대 2팀에서 고 경장은 막내다. 나이는 적지 않지만 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하고 있다. 고 경장이 속한 팀은 출범 이후 지난달 말까지 성과 평가에서 경기남부청 46개 기동순찰팀 중 1위를 기록했다. 수배자 검거뿐 아니라 성남 권역 480개 폐쇄회로(CC)TV와 비상벨을 모두 점검해 고장 난 19곳에 대해 지자체에 개선을 요청하고 기타 형사사건 215건, 기초 생활 질서 단속도 162건 해냈다.

경기남부경찰청 기동순찰2대 2팀 고동수(37·왼쪽에서 두 번째) 경장이 경기 성남 계원예술중학교 강당에서 사이버 도박중독·마약 예방 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최근 고 경장은 잊고 지냈던 무대도 되찾았다. 학교 주변 순찰 중 중학생 아들을 둔 한 학부모가 “아이가 스마트폰 도박에 빠졌다”고 말했던 게 계기가 됐다. 주민들에게 기동순찰대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팀 안에서 나오자 고 경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고 경장은 관내 12개 초등·중학교 전교생 7800여 명을 대상으로 사이버 도박과 마약 예방 교육을 했다.

고 경장은 “개그맨으로 데뷔할 때 대한민국 최고의 MC가 돼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겠다는 꿈은 접었지만, 민생 치안 현장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국민에 웃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경찰관으로서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든든하고 행복한 웃음을 준다는 자부심을 갖고 근무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남부경찰청 기동순찰2대 2팀 고동수(37) 경장. 손성배 기자


중앙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2726 '막말 대사' 싱하이밍의 교체, 尹 '절친' 정재호 대사의 잔류[문지방]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25 트럼프, 전·현직 미 대통령 총격 11번째···4명은 사망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24 의대 정시 합격점, 서울대가 3위…그럼 1·2위 대학 어디야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23 중혼 숨기고 귀화 신청한 파키스탄인...法 "귀화 취소는 적법"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22 트럼프 총격범 어디서 쐈나… "유세장 바깥 고지대서 여러 발 발사"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21 CNN "FBI, 총격범 신원확인…펜실베이니아 출신 20세 남성"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20 “트럼프 피격 남성, 펜실베니아 거주 20세 백인 남성”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19 美 최대 통신사 AT&T, 해커에 고객정보 털려… 1억900만명 규모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18 테슬라 주가도 촉각…일론 머스크 “트럼프 강인한 후보…전적으로 지지”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17 트럼프 총격범, 120m 위치서 발포…경호 실패론 나와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16 트럼프 총격에 “민주당이 원했다”…모든 추문 날리고 지지자 결집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15 피격 직후 주먹 불끈 쥔 트럼프…"그가 이미 승리했다"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14 ‘트럼프 피격’에 與野 “민주주의 위협하는 정치 테러 규탄”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13 [트럼프 피격] "총알 날아오는 순간 고개 돌려 살았다"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12 이스라엘, 스스로 지정한 ‘인도주의 구역’ 공습…주민 91명 살해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11 국민의힘 "민주당, '상설특검'도 위헌적‥특검 선동"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10 인도 ‘재벌 막내아들’ 결혼식 찾은 이재용…“승부근성·절박함으로 역사 만들자”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09 삼성전자 노사협상 교착…커지는 '반도체 경쟁력 약화' 우려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08 “총격범은 펜실베이니아 출신 20세 男, 대량 살상용 총기 이용” new 랭크뉴스 2024.07.14
42707 트럼프 향해 “총성 5발 울렸다”…무단 월경 언급 중 피격 new 랭크뉴스 2024.07.14